#01. 결혼의 서막

거절을 거절한다

by 초롱


이의 긴긴 취업 준비 생활이 끝나고 우리는 날아다녔다. 발끝이 땅에 닿지 않는 사람들처럼 둥실둥실 떠 있었던 것 같다. 첫 출근을 며칠 앞둔 주말, 짜장면에 탕수육을 먹고 부른 배를 두드리며 카페에 마주 앉았다. 타이밍을 노리고 있던 나는 무심한 척 입을 열었다.

"올해 결혼하자."


갑자기 꺼낸 얘기는 아니었다. 서른을 훌쩍 넘긴 아들이 합격하자마자 어머님께서 기다리셨다는 듯이 결혼 이슈를 던지셨고 똘이는 차곡차곡 스트레스를 모으고 있었다. 그 마음을 이해 못 하는 것도 아니었기에 상황을 지켜보면서 고민했다. 10년이 넘은 우리 연애의 다음 스텝은 언제 밟아야 하는가.

일을 시작하고 3년 정도는 돈을 모아야 하지 않겠냐고 막연하게 이야기한 적은 있었다. 하지만 막상 부모님 입에서 결혼 이야기가 나오고 보니 우리 계획은 그다지 힘을 갖지 못했다. 그렇다고 등 떠밀려 결혼할 수는 없어서 뒤늦은 선빵이라도 날려본 것.

"응, 아니야."


똘이는 결정을 잘 못한다. 얼마나 못하냐면 혼자 밥을 먹으러 나갔다가 메뉴를 정하지 못해서 그냥 집에 돌아오는 일이 종종 있다. 눈에 띄는 것 중에 아무거나 먹으면 안 되는 거냐고 물으면 "딱히 먹고 싶은 게 없으니까..." 하면서 말끝을 흐린다. 반면에 성격이 불같은 나는 똘이 대신 울화통을 터뜨린다. 대체 밥 한 끼 먹는 게 뭐라고!

그런 똘이의 대답치고는 너무나 의외였다. "싫어!"도 아니고 "못해!"도 아니고 "아니"라니. 테이블 위에 짧은 침묵이 내려앉았다. 내 표정을 살피던 똘이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내가 취업 준비를 오래 했잖아. 제대로 된 사회생활은 처음 해보는 건데 걱정도 되고 잘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지금은 결혼까지 생각할 여유가 없어. 그래서 그래."


방송작가는 이직을 생활화해야 하는 직업이다. 언제 프로그램이 없어질지 알 수 없고 그게 아니어도 워낙 이동이 잦기 때문에 이 바닥에서 오래 버티려면 첫 출근의 압박에 무뎌져야 한다. 그런데 나는 n 년째 이 직업을 갖고 살면서도 적응을 못 했다. 지금도 새로운 곳에 가기 전날 밤이면 잠을 설치고 초조해한다. 평소 무던하고 걱정 없는 성격의 똘이지만 내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종류의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았다.


일단 출근해서 회사 생활을 해보고 3개월 뒤에 다시 이야기하기로 했다. 하지만 그날의 합의는 불과 며칠 만에 없던 얘기가 되고 말았는데 똘이가 일주일에 3일은 밤 10시에 퇴근하는 부서에 배정되었기 때문. 1보 전진이 목표였건만 2보, 아니 5보쯤 후퇴한 기분이 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