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알 수 없는 인생

즐거운 생일잔치

by 초롱

이는 다행히 큰 무리 없이 회사에 적응해 나갔다. 원래 성격이 둥글둥글해서 잘할 거라고 생각은 했는데 가끔 "나 때는 말이야~"를 시전하며 나보다 사회생활 선배인 척할 때도 있었다. 약간 매를 버는 스타일이다.

물거품이 된 줄 알았던 '3개월 뒤 재협의' 약속은 똘이가 여유를 찾을 즈음 우연한 계기로 지켜지게 됐다. 똘이의 생일을 맞아 가족들이 식사하는 자리에 나도 초대를 받았는데 결혼 이야기가 나올 것이 불 보듯 뻔한 상황이 된 것. 우리는 몇 차례 대책 회의를 통해 육하원칙에 따른 합의안을 도출해냈고 이 안을 식사 자리에서 관철하기로 마음먹었다. 이렇게 말하니까 굉장히 있어 보이지만 우리가 결혼하고 싶은 시기와 장소, 방식 등을 정한 것뿐이다.

그 내용을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먼저 시기는 어차피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프리랜서의 일정을 고려하는 것은 의미가 없음으로 전적으로 똘이에게 맞췄다. 똘이의 업무량이 비교적 적을 것으로 예상되는 때를 골랐다. 시기보다는 장소 선정이 어려웠는데 서로 생활권이 다르다 보니 어디서 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참고로 나와 똘이의 근무지는 차로 2시간이 넘는 거리에 떨어져 있다) 지역마다 결혼을 여자 쪽에서 해야 한다, 남자 쪽에서 해야 한다는 풍습이 있는데 우리는 그보다 효율성을 우선순위에 두고 지도를 살폈다. 그래서 평소에도 우리가 자주 만나는 중간 지역을 선택했다. 치킨과 맥주가 윤활유가 되어 두뇌 회전을 도왔고 무난하게 의견을 모을 수 있었다. (이때까지는 굉장히 즐거웠습니다)


긴 연애를 했지만 똘이 부모님을 뵌 것은 다섯 손가락에 꼽을 정도다. 멀리 계시기도 했고 어렵기도 하다 보니 교류가 거의 없었다. 하지만 결혼이 화두가 된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기 때문에 합의안을 되뇌며 집을 나섰다.

생일은 똘이가 태어난 날이기도 하지만 어머님이 처음 엄마가 되신 날이기에 의미 있는 선물을 드리고 싶었다. 결혼, 인사, 선물 같은 단어를 조합해가면서 검색을 해봤지만 눈에 들어오는 것이 없었다. 고민 끝에 '꽃차'라는 것을 샀는데 동그란 환 같은 것을 잔에 넣고 뜨거운 물을 부으면 꽃이 활짝 피는 모양으로 풀어지는 신기한 아이템이었다. 일하면서 체득한 자료 조사 스킬이 오랜만에 빛났다.

근사한 한정식집에 똘이 가족들과 둘러앉았다. 마지막으로 뵀을 때는 똘이가 '또' 탈락의 고배를 마시고 마음을 추스르지 못할 때였는데 몇 년 만에 이렇게 웃는 얼굴로 마주하니 참 좋았다. 원래 입이 짧지만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서 부지런히 젓가락을 움직였다. 부모님께서 사 오신 생크림 케이크에 불을 붙이고 생일 축하 노래도 불렀다. 똘이가 초를 후 불고 박수를 칠 때 어머님께만 들릴락 말락 하게 말씀드렸다.

"똘이 낳아주셔서 감사해요."

함께 보낸 여러 번의 생일 중에서도 참 좋은 날이었다. (이때까지도 굉장히 즐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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