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에서 반나절
똘이네 가족은 성당을 다닌다. 똘이만 빼고. 모태신앙으로 유아 세례를 받았지만 중학생이 되면서 나가지 않았고 지금도 갈 생각이 없다고 한다. 모든 인간은 종교의 자유를 누릴 권리가 있으므로 똘이의 의견을 존중한다.
나는 좀 복잡한데 일단 우리 집은 불교다. 독실까지는 아니고 부처님 오신 날을 포함해 일 년에 서너 번 정도 절에 간다. 가족들 차에 차량용 연꽃 장식이나 염주가 달려 있다. 그런데 나는 미션스쿨을 나왔다. 중학교는 기독교, 고등학교는 천주교 재단이었다. 이런 환경 덕분에 몇 년 전 스님, 신부님, 목사님이 함께 나오는 프로그램에 이력서를 냈다가 바로 면접 보자고 연락받은 적이 있다.
시작은 똘이 부모님의 권유(라 쓰고 압박이라 읽는다)였다. 냉담자이긴 하지만 똘이도 엄연한 천주교 신자인데 비신자인 나와 결혼을 하게 됐으니 관면혼배라는 의식을 치러야 한다는 것. 여기서 관면혼배란 두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 흠이 있지만 정당한 이유가 있을 때 교회로부터 인정을 받아 이루어지는 혼인을 말한다. (출처: 표준국어대사전)
우리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에 이름도 낯선 관면혼배를 받기로 했다. 첫 번째 단계는 교육의 일종인 혼인 교리를 듣는 것이다. 바쁜 연말의 주말 하루를 통째로 비워서 명동성당에 신청했다.
오후 1시 시작이었으므로 일단 배를 든든히 채우기 위해 남산을 올랐다. 메뉴는 왕돈가스와 우동. 한 판 해치우고 명동을 향해 걸었다. 시간이 남아서 성물 가게에 들렀다. 똘이 부모님께 드릴 작은 선물을 고르고 나도 명동성당 로고가 박힌 연필 모양 샤프를 샀다. (나는 기념품을 정말 좋아한다) 혹시 당이 떨어질지도 모르니 편의점에서 마실 물과 초콜릿 몇 개를 샀다. 이럴 때만 철저한 우리들.
물어물어 강의실을 찾아가니 입구에 빵, 젤리, 사탕들이 잔뜩 준비돼 있었다. 단 걸 보고 기분이 좋아진 우리는 주섬주섬 또 간식을 챙겼다. 부자가 별건가. 50명 가까운 예비부부들 사이에 똘이와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결혼을 앞두고 있다니 동지를 만난 것처럼 반가웠다. 그중에는 외국인 커플도 있었다.
종교와 결혼 생활에 대한 강의가 진행됐다. 진지하게 듣는 경청 파와 좀처럼 집중을 못 하는 딴짓 파, 두 분류로 나뉘었는데 물론 우리는 후자였다. 똘이와 나는 아이스크림 내기 빙고를 했다. 숫자부터 시작해서 과자 이름, 나라 이름, 국회의원 이름 등등 25개를 쓸 수 있는 것들을 부지런히 적었다. (성당 관계자분들 죄송합니다) 너무 놀기만 하면 주님이 미워하실 것 같아서 간간이 젤리를 먹으며 강의를 들었다.
사람들 얼굴을 살피던 나는 우리보다 두 줄 앞에 앉은 커플의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포착했다. 어떤 사연이 있는지 서로 말도 하지 않고 신부님이 마주 보라고 시켜도 데면데면했다. 하필이면 오늘처럼 오랫동안 같이 있어야 하는 날 싸우다니. 내가 다 안타까웠다.
"똘아, 저 사람들 싸웠나 봐. 왜 싸웠지? 물어볼까?"
"참아."
둘이서 속닥거렸다. 길고 길었던 강의는 중반을 넘어서고 있었다. 신부님이 말씀하셨다.
"서로에게 편지 쓰는 시간을 가져볼 거예요. 편지지 나눠드릴 테니까 평소 못 했던 이야기를 한 번 써 보세요."
드디어 우리에게 소일거리가 생겼다. 어차피 보여줘야 하는데 똘이는 굳이 가려가면서 열심히 편지를 썼다. 이때만큼은 딴짓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다 쓰셨죠? 그럼 이제 바꿔서 읽어볼까요?"
똘이에게 봉투를 받자마자 말했다.
"이걸로 크리스마스 카드 퉁 치려는 생각은 하지도 마."
우리는 생일, 크리스마스, 연애를 시작한 날 등 각종 기념일에 편지를 쓰는 아름다운 풍습을 갖고 있다. 선물을 주고받을 때 편지가 없으면 영 섭섭하고 아쉬운 나의 주장에 따라 이어가고 있는데 내가 아는 똘이라면 곧 다가올 크리스마스 카드를 오늘 편지로 대신하려는 수작을 부릴 것 같았다. 내 말에 이는 크게 당황했다. 실제로 편지 끝부분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이 편지를 크리스마스 카드로 받아주면 좋겠어요. 헤헤헤.
무사히 혼인 교리가 끝나고 이수 증서를 받아 성당을 나왔다. KTX 타면 부산도 왔다 갔다 할 시간을 어떻게 앉아서 보내냐며 한걱정을 했는데 생각보다 즐거웠다. 모범적인 예비부부는 아니었지만 주님이 한 번쯤은 더 보살펴주시지 않을까 다소 양심 없는 기대를 하면서 어두워진 명동을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