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꾸꾸
태어나서 처음 가보는 해외여행을 패키지로 한 건 잘한 선택이었을까. 세부는 자유여행 하기에는 위험한 지역이라-실제로 가이드 없이 호텔 밖에는 나가지 말라고 했다-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었다. 다만 나는 말 안 듣는 청개구리 과라서 패키지여행이 잘 안 맞았을 뿐. 그걸 세부 가서 알았고 이후 신혼여행을 포함한 모든 여행은 '자유'를 고집했다.
일정은 빡빡했다. 나는 집이든 밖이든 잘 움직이지 않는데 뭘 자꾸, 개중에는 역동적인 것까지 해야 한다고 하니 영 심기가 불편했다. (쓰다 보니 좀 진상 같네요.) 게다가 전날 3일 치 술을 먹고 속도 안 좋았다. 이런 내 사정 따위 상관없이 둘째 날 첫 일정은 시워크(Sea Walk)였다.
원래는 스쿠버다이빙이었는데 현지 날씨가 안 좋아지면서 취소됐고 시워크가 차선이었다. 대체 뭘까. 바다 걷기? 바다를 왜 걷지? 어떻게? 이해를 못 한 채 바닷가에 도착했다.
시워크는 너무나 정직한 네이밍이었다. 진짜 바닷속으로 들어가 걷는 것. 배를 타고 바다 한복판까지 나가서 바지선에 잠시 내려 산소가 공급되는 헬멧을 쓰고 바다 아래까지 내려간다. 물론 절로 내려가 지진 않고 건장한 아저씨들에게 거의 끌려 내려가다시피 해서.
"혹시 힘들면 손드세요, 손~"
나는 바닷물이 닿자마자 손을 들었다.
원래 물을 무서워하고 수영도 못 한다. 아빠에게 고혈압도 물려받았다. 머리까지 물에 잠기는 순간 헬멧 안으로 산소가 들어오는데도 숨을 쉴 수 없었다. 열심히 손을 들었지만 나를 끌고 내려간 아저씨는 내가 인사하는 줄 알았던 것 같다. 그게 아닌데요, 아저씨. 이럴 거면 손은 뭐하러 들라고 한 거예요.
가쁜 숨을 몰아쉬다 보니 발이 바닥에 닿았다. 바지선에서 봤던 사람들이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올라가고 싶어도 안 올려줄 것 같아서 그냥 포기하고 정승처럼 가만히 서 있는데 친구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그런데, 니니가 의자에 앉아 있었다. 바닷속 한복판에.
그냥 앉아 있으면 몸이 뜨니 니니를 데리고 내려온 아저씨가 뒤에서 누르고 있었다. 쟤가 대체 왜 저기 앉아 있는 걸까. 다리 아픈가. 근데 너무 웃긴데. 나는 한참을 웃었다. 아까 안 올라가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마워요, 아저씨. (나중에 들으니 아저씨가 굳이 의자에 앉으라고 권했다고.)
2015년 세부 여행 이후 바다 한가운데 앉아 있던 니니는 내 인생의 명장면이 되었다. 아마 죽을 때까지 그때 그 모습만 생각하면 언제든 웃을 수 있을 것 같다. 앞으로 니니가 뭐 하자고 하면 말 잘 들어야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