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러포즈는 덤
똘이 부모님이 다니시는 성당에서 관면혼배를 받기로 했다. 신청만 하면 되는 건 아니고 혼인관계증명서, 가족관계증명서, 혼인 교리 이수 증서를 제출해야 한다. 증인도 필요하다. 그리고 신부님과 시간을 정하면 준비 끝.
성당으로 가기 전 똘이 부모님과 점심을 먹었다. 메뉴는 들깨 수제비였는데 생각처럼 먹히지 않았다. 식사를 마치고 성당으로 가는 길에 아버님이 말씀하셨다.
"천주교식으로 결혼을 하는 거니까 오늘부터 교회법으로는 부부인 거지."
"부부요?"
천주교 학교에 다녔지만 교인은 아니기 때문에 관면혼배라는 말도 이번에 처음 들었다. 조촐한 의식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결혼이라니. 전혀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나는 깜짝 놀랐다.
성당에는 미리 소식을 들으신 어머님의 대모님과 지인분들이 와계셨다. 의식에 앞서 신부님 면담이 있었다. 신부님이 지내시는 사저 문을 열었다.
"똘이 씨, 초롱 씨? 들어와요."
머리에 까치집을 지으신 신부님이 우리를 맞으셨다. 첫인상부터 프리스타일이셨다. 음료수병을 하나씩 받아들고 소파에 앉았다. 서류를 주시면서 작성하라고 하셨다.
"성당 안 나오는구먼. 왜 안 나와요?"
똘이는 그저 웃기만 했다. 다음 타깃은 나였다.
"절에 다닌다고? 1년에 몇 번?"
"서너 번이요."
"에이, 그럼 불교 아니지."
괜히 발끈했다.
"불교예요."
"얼른 적읍시다."
적은 서류를 살펴보시던 신부님은 다시 나를 보고 물으셨다.
"직업이 방송작가? 테레비에 이름 나와요?"
"예전에는 나왔었고요. 지금은 뉴스를 하고 있어서 안 나와요."
"뉴스?"
주님의 말씀을 전해주실 줄 알았던 신부님은 방송에 대해 궁금한 게 많으신 것 같았다. 아는 범위 안에서 친절하게 답해드렸다. 각자에게 결혼 서약을 받을 차례가 됐다.
"초롱 씨는 잠깐 저 방에 가 계시고. 우리가 무슨 얘기하는지 엿들으면 안 돼요."
강제 퇴장을 당했다. 작은 방에 앉아 음료수병을 만지작거렸다.
"나오세요."
이번에는 똘이가 방에 들어가고 내가 신부님과 마주 앉았다.
"평생 똘이 씨만 사랑한다고 약속할 수 있겠어요?"
이런 질문을 받아본 적이 없어서 잠시 웃었다.
"네. 똘이는 뭐라고 하던가요?"
"그건 말 못 해주지. 천주교 신자가 아니니까 궁금한 거 있으면 물어봐요."
잠시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혼인관계증명서를 받으시던데... 이혼한 사람은 관면혼배를 못 받나요?"
"아니, 뭐 그런 게 궁금했대. 똥글이랑 이혼하고 또 천주교 신자랑 재혼하게?"
"방송작가의 디테일로 봐주세요, 신부님."
"그럼 또 할 말 없지. 원래는 안 되는데 뭐... 전 배우자랑 깨끗하게 정리하면 받을 수 있어요."
똘이가 방에서 나오고 다시 나란히 앉았다. 갑자기 신부님이 질문을 던지셨다.
"프러포즈했어요?"
"아니요, 아직 고민 중이에요."
그렇다. 똘이는 반년째 청혼을 계획 중이었다. 그때 신부님이 탁자 위에 놓여있던 화분을 건네셨다.
"이거 우리 성당 나오시는 할머니 자매님이 만드신 거거든. 털실로 꽃을 뜬 거예요. 예쁘지? 뭘 고민해. 그냥 지금 해. 초롱아, 나랑 결혼해줘. 그게 뭐가 어려워."
똘이가 껄껄 웃으면서 화분을 받아들고 나를 향해 한쪽 무릎을 꿇었다.
"초롱아, 나랑 결혼해줄래?"
"어? 응응."
"아니, 뭐 그래. 그렇게 쉽게 대답해주면 어떡해. 이러니 10년 넘게 만났겠지. 죽이 잘 맞네. 둘이 서 봐요. 내가 사진 찍어줄게."
신부님의 카메라를 보고 활짝 웃었다. 면담이 무사히 끝나고 예배당에서 관면혼배가 시작됐다. 결혼반지를 맞추기 전이라 5년 넘게 낀 커플링에 성수를 뿌리고 신부님 말씀을 들었다. 다 끝나고 사진을 찍는데 신부님이 지켜보시던 분들께 크게 이야기하셨다.
"여기 아가씨가 테레비에 이름이 나왔다 그러네. 작가래."
"어머나, 그래요? 어쩐지 키도 크고 인상이 너무 좋더라고."
연관성을 알 수 없는 칭찬을 듬뿍 듣고 꽃다발도 받았다. 똘이 부모님이 흡족하게 지켜보시는 가운데 그렇게 부부가 되었다. 어떤 순간에도 믿음을 져버리지 말라는 말씀을 마음에 새겼다. 똘이와 먼 훗날 손잡고 성당에 다니기로 약속했는데 언제가 되려나. 막연했던 결혼이 조금씩 가까워져 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