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어쩌다 웨딩촬영

목표: 스튜디오 탈출

by 초롱

목적은 결혼식이 아니라 결혼이었으므로 안 할 수 있는 건 하지 말자고 똘이와 여러 번 이야기했다. 그중 하나가 웨딩촬영. 어차피 결혼식에서 입을 드레스를 굳이 미리 입어야 하나. 평소에도 싫어하는 사진을 작정하고 찍으면 얼마나 스트레스일까. 우리의 할 일 목록에서 일찌감치 제외됐던 웨딩촬영은 어느 날 갑자기 밀고 들어왔다.

계기는 이랬다. 내 친구 니니가 모바일 청첩장을 하나 보내왔는데 학교를 같이 다녔던 나도 이름을 아는 언니가 결혼한다고 했다.

-사진이 왜 이래?

-언니가 웨딩촬영을 안 했거든.

-그래서?

-모바일 청첩장을 만들어야 하는데 사진이 없으니까 급하게 동네 공원에서 찍었대.

-세상에.

신랑 신부 뒤로 아파트가 보였다. 대체 왜 웨딩촬영을 안 하려는 거냐고 여러 번 잔소리했던 니니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내가 졌다.


예식장 패키지에 포함돼 있던 스튜디오 목록을 훑어서 한 곳을 정했다. 결혼식만큼이나 멀어 보였던 그날은 생각보다 금방 찾아왔다. 후기를 찾아보니 촬영 중에는 물도 마시기 힘들다길래 아침부터 유부초밥을 만들어 먹었다. 나는 배고프면 말수가 줄고 얼굴이 어두워지고 울컥울컥 화도 낸다. 남들은 디데이 정해놓고 다이어트도 한다는데 이래도 되나 싶었지만 이미 너무 멀리 온 우리들이었다.

토요일 아침, 24인치 캐리어를 끌고 압구정동을 걸었다. 강남에 왔으니 이 정도는 마셔줘야 하지 않겠냐며 스타벅스에서 음료도 한 잔씩 들고나왔다. 세련된 건물들이 그런 우리를 촌놈 나들이 왔다고 비웃는 것 같았다. 헤매다가 지각하고 말았다.

"추운데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어요. 짐 주세요. 제가 오늘 두 분 담당이에요. 잘 부탁드려요."

인상 좋은 이모님이 반갑게 맞아주셨다. 외투를 벗고 거울 앞에 앉았다. 화장부터 머리 손질까지 20분 만에 끝난 똘이가 뒤에 앉아 깐죽거렸다.

"오늘 안에~ 다 하려나~ 모르겠~네~"

6개월 전부터 자르지 않았는데 머리가 너무 짧다며 붙임머리를 써야 한다고 했다. 순식간에 머리가 허리까지 길어졌다. 거울 속 내 얼굴도 점점 변해갔다. 난생처음 속눈썹을 붙여봤다. 눈이 무거워서 누우면 바로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그럴 시간은 없었다.

다음은 드레스를 고를 차례. 웨딩 피치 드레스, 인어공주 드레스, 미니 드레스, 색깔 있는 드레스 네 벌을 골라야 한다고 했다. (개떡 같은 설명이지만 찰떡같이 알아들으시겠죠?) 펼쳐놓은 드레스 안으로 들어가는(?) 방식이었다. 이모님이 내 배를 가리키며 물었다.

"여기 애기 있어요?"

"아니요. 없어요. 살만 있어요."

"그럼 좀 당길게요. 핫!"

이모님이 기합과 함께 있는 힘껏 드레스 뒤에 달린 줄을 잡아당겼다.

"엌!"

비명이 절로 나왔다. 아침에 먹은 유부초밥이 입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

일관성 있게 결정을 못 하는 이와 미적 감각이 없는 내가 드레스를 네 벌이나 고르는 건 역시 무리였다. 전부 사진을 찍어서 엄마한테 보냈다. 금방 답장이 왔다.

-우리 딸 진짜 시집가나 보네.

엄마의 감상에 장단 맞출 여유가 없었다. 성질 급한 나는 바로 전화를 걸어 재촉했다.

"아니야, 엄마. 지금 그런 말 할 때가 아니야. 빨리 골라줘야 끝나. 숨을 못 쉬겠다고."


사진작가님과 배경을 고르는데 대체 이 작은 스튜디오에 이런 데가 어디 있나 싶었다. 나중에 보니 벽을 돌리거나 커튼을 치거나 소품을 갖다 놓으면 순식간에 다른 곳이 됐다. 여러 커플이 빈 곳을 찾아다니며 사진을 찍는 시스템이었다.

"웃으세요. 웃으셔야 빨리 끝나요. 어깨 내리시고. 팔 살짝 들고. 빵끗~"

처음에는 입꼬리가 부들부들 떨렸다. 하지만 배경이 세 번 정도 바뀌고 나니 여길 벗어나려면 시키는 대로 하는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아서 뻔뻔하게 포즈를 취하는 경지는 그리 멀지 않았다.

마지막 드레스를 갈아입었을 때 니니와 슈니, 쮸니가 왔다. 친구들이 오니 훨씬 덜 인위적으로 웃을 수 있었다. 이제 정말 끝이 보이는 것 같아서 힘이 났다.

"작가님, 저희가 다 같이 옷을 준비했는데 혹시 찍어주실 수 있을까요?"

"그럼요. 천천히 입고 오세요."

추가 촬영에는 보통 한복을 많이 입는데 우리는 그 대신 단체 사진을 찍기로 했다. 다섯 명이 옷을 입고 우르르 몰려가자 스튜디오에 있던 직원분들이 너무 귀엽다며 잘 찍고 오라고 응원해주셨다. 대체 뭘 입었길래? 이럴 때는 열 줄의 문장보다 한 장의 사진이 낫다고 배웠습니다.


IMG_0090.JPG 동물 대잔치


살면서 가장 많은 사진을 찍은 하루였다. 아마 이런 날은 앞으로 다시 없을 것 같다. 그래서 웨딩촬영을 하나 보다. 지금도 가끔 사진을 꺼내 본다. 그리고 이제 사람들이 카메라를 꺼낼 때 그 순간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조금은 이해한다. 어쩌다 한 웨딩촬영이었지만 잊지 못할 추억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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