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초롱 Jun 21. 2022

토끼의 생일

축하해♥

 지금의 남편이 막 남친이 되었던, 그러니까 약 15년 전 남편은 당시 우리를 소개팅 시켜준 친구 슈니에게 이런 걸 물어봤다고 한다.

 "초롱이 뭐 좋아해?"

 슈니는 고등학교 3년 내내 같은 반이었던, 나만큼 나를 잘 아는 친구다. 슈니는 당연히 정답을 말했다.

 "음, 미피 좋아해."

 한동안 남편은 나를 만날 때마다 스터 자에 가자고 했다. (피자와 함께 무한 리필 샐러드 바가 흥하던 시절이다.) 그런데 나는 빵보다 밥을 좋아한다. 몇 번 거절하다가 대놓고 물었다.

 "피자 좋아해? 왜 자꾸 피자 먹으러 가자고 하는 거야?"

 "슈니가 너 미피 좋아한다고 해서..."

 "아... 그 미피가 아니야."

 "?????????"

 (문득 궁금해서 초록 창에 '미피'라고 쳐보니 지금도 미스터 피자가 나오긴 한다.)


미스터 피자 아니고 미피(miffy)


 친구들이 H.O.T, god 오빠들에 열광할  나는 미피가 그려진 연필, 스티커를 모았다. 심지어 중학교 3학년 때까지 미피 옷을 입고 다녔다.  크고 나서는 없어서  입었는데(?)    일본 여행을 갔다가 미피가 그려진 흰색 티셔츠를 보고 냉큼  왔다. 아끼느라 집에 고이 모셔두고 아주 특별한 날에만 꺼내 입는다. (그날은 절대 빨간 음식을 먹지 않는다.) 내가 이렇게 미피에 진심이다.


 일본에 가면 미피 캐릭터 상품이 참 많은데 미피의 고향은 네덜란드다. 작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인 故 딕 브루너 선생님이 쓴 그림책 시리즈의 주인공이 미피다. 나는 언젠가 네덜란드에 가고 싶은 꿈이 있었다. 아무리 미피가 나의 최애라고 해도 그렇게 멀리 갈 수 있을까 싶었는데 ★꿈★은 이루어졌다. 오로지 미피 박물관에 가기 위해 4년 전 네덜란드로 신혼여행을 다녀왔다. 미피가 미스터 피자인 줄 알았던 남편이 기꺼이 함께해주어 나는 성공한 덕후가 되었다. 고맙습니다, 남편.


미피 신호등이 있는 위트레흐트


 지금도 미피가 있는 곳이라면 부지런히 찾아다닌다. 컴퓨터, 아이패드 배경 화면도 미피, 시리얼 볼에도 미피, 미피들을 가지런히 세워둔 인형 장도 있다. 마흔이 가까워지는 나이까지 미피를 좋아할 줄은 몰랐다. 이 기세라면 환갑이 지나도 토끼에 사족을 못 쓰는 할머니가 될 것 같다. 이래도 되나 싶다가도 좋아하는 게 있는 인생이 더 행복할 거라고 합리화한다.


 오늘은 미피의 생일이다. 퇴근할 때 조각 케이크라도 하나 사가서 남편이랑 노나 먹어야지.


사진 출처

트위터 @Miffy_UK, @SoftnessDaily

남편 휴대폰 사진첩




 






매거진의 이전글 재택근무가 끝나서 좋은 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