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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롱 Sep 06. 2022

주말의 귀여운 순간

안 써놓으면 까먹으니까


 토요일


 2년 가까이 준비 중인 자격증 시험 기간이 다시 돌아왔다. 이번에는 꼭 붙어야 한다는 압박 때문에 요즘 잠도 설치고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다. 그래도 되도록 말이라도 자신감, 자존감 쩌는 척하려고 "내가 떨어지면 누가 붙냐" "이번에는 막 해도 붙을 듯" 이런 소리를 떠들고 다닌다. 

 남편과 점심을 먹으러 가면서 시험 끝나면 하고 싶은 것들을 이야기하다가 간만에 귀여운 마우스 패드를 샀다고 자랑했다.

 "그냥 춘식이만 있었어도 샀을 텐데 옆에 내가 짱이라고 쓰여 있는 거야. 와, 이건 그냥 나 사라고 만든 거잖아? 나는 짱이니까."


나는 짱~!


 가만히 듣고 있던 남편은 고개를 갸웃했다.

 "짱이 아니라... 짱구 같은데?ㅎ"

 남편은 본인의 센스에 감탄하며, 나는 기가 막혀서 깔깔 웃었다. 너 딱 기다려라. 누나 시험 끝나면 진지하게 얘기 좀 하자. 



 일요일


 저녁 먹고 산책이라도 하려고 나갔는데 비가 후두두둑 쏟아졌다. 어쩔 수 없이 들고 나간 쓰레기만 버리고 다시 현관으로 뛰어 들어왔다. 앞에 무뚝뚝하게 생긴 아저씨가 강아지와 함께 걸어가고 있었다.

 엘리베이터에 같이 탄 강아지는 아저씨 뒤에 숨어 우리를 빤히 쳐다봤다. 하얀 털이 보송보송한 강아지가 너무 귀여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너무 귀엽다."

 남편이 조그맣게 말했다. 나도 고개를 끄덕이며 강아지를 한참 쳐다보았다. 잠시 후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아저씨가 강아지한테만 (그런데 우리한테도) 들리게 말씀하셨다.

 "인사하고."

 우리는 잠시 어리둥절하다가 냉큼 아저씨한테 인사를 했다.

 "안녕히 가세요."

 "네, 가세요~"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자 꽉 깨물고 있던 어금니에 힘을 풀고 깔깔 웃었다.

 "아저씨 너무 귀여우시다."

 "아, 그니까."

 잘 간직하고 싶은 귀여운 순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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