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초롱 Sep 26. 2022

나에게 주는 목욕 선물

수고했어 오늘도

 올해 초 이사 온 우리 집에는 욕조가 있다. 10년 동안 6평짜리 원룸에 살았던 나는 욕조가 신기하면서도 딱히 쓸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반년이 훌쩍 흘렀다. 그리고 지난 주말, 드디어 욕조를 개시했다.     

 최근에 2년 가까이 준비해온 자격증 시험을 보고 왔다. 재미로 시작한 공부였지만 시간이 길어지면서 이제는 붙어야 한다는 부담감에 시달렸다. 부담감 정도를 넘어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생각처럼 안 되면 허벅지를 찰싹찰싹 때렸다. 벌겋게 남은 손자국을 보면서 이게 맞나 싶었다. 급기야 머리도 꽝꽝 쥐어박았다. 시험이 일주일도 채 안 남았던 어느 날, 남편과 저녁을 먹다가 하소연을 했다.

 "내가 자꾸 나를 때려. 아까는 머리를 너무 세게 때린 거야. 너무너무 아팠어."

 가만히 듣고 있던 남편은 굳은 얼굴로 말했다.

 "너 이번 시험까지만 해. 이제 그만 해."

 "..."

 "그렇게 자기가 소중한 사람이라면서 왜 때려? 그럴 거면 하지 마. 이제 못하게 할 거야."

 나는 삼겹살을 우물우물 씹다가 울고 말았다.     


 스스로 괴롭혀가면서 준비한 시험을 망치고 왔다. 지난번 시험보다 더 긴장하고 몸이 굳었다. 시험의 절반이 끝났을 때는 이럴 거면 괜히 열심히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보는 눈이 없었으면 또 머리를 때렸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다 끝나고 시험장 밖으로 나와서는 열심히 하길 잘했다 싶었다. 열심히 했으니까 후회 되지 않았다. 그러니까 이제 나를 그만 좀 괴롭히자고 결심했다. 

    

 회사에 휴가를 냈다. 자연인 못지않은 머리도 정리하고 병원에도 다녀왔다. 엄마랑 부산에 가서 바다도 보고 시장에서 떡볶이도 먹었다. 낮잠도 자고 너무 오래 방치해둔 동물의 숲에 들어가서 바퀴벌레도 잡았다. 휴가 마지막 이벤트는 목욕이었다.


 뜨거운 물을 반쯤 채우고 단지 욕조가 있다는 이유로 사다 놓은 입욕제를 조금 풀었다. 가만히 있기가 심심해서 만화책을 몇 장 팔랑팔랑 넘겼다. 어른이 돼서 좋은 점은 엄마 손에 빡빡 때를 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때 타올로 살살 문지르다가 남편이 지난봄 선물로 받아 온 고오급 보디 워시로 샤워를 하고 나왔다. 보디 워시와 세트인 보디 크림을 듬뿍 바르고 새 잠옷을 입었다. 손목에 코를 대고 킁킁 냄새 맡다가 가만히 보니 크림에 펄이 들었는지 팔이 반짝거렸다. 이렇게 잘 돌보고 마음을 쓰면 반짝반짝 빛날 수 있는 사람인데 그동안 내가 나에게 너무했다. 휴가는 끝났고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나를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은 그치지 말아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주말의 귀여운 순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