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랑하는 노동요
내 돈 내고 내 손으로 예매해서 내 발로 음악회에 가본 건 처음 아닌가 싶다. 콘서트에 두어 번 가본 적은 있지만 공연이라니, 그것도 재즈 공연이라니 낯설면서도 설레는 마음으로 한 달 넘게 기다렸다. 며칠 전 드디어 공연에 다녀왔고 감동을 잊지 않기 위해 후기를 남겨 본다.
공연장 입구로 들어가는데 어떤 남자가 노래를 흥얼거리며 지나갔다.
"토토로~ 토토로~"
공연 제목이 <지브리, 재즈를 만나다>였으니 그 정도 흥이 날 만도 했다. 지브리라면 사족을 못 쓰는 나는 공연을 더 재미있게 보기 위해 애니메이션 몇 편을 다시 보며 열정을 불태웠다. <이웃집 토토로>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꼭 보고 갔어야 했는데 시간이 없어서 결국 포기한 게 지금도 아쉽다.
빈자리가 거의 없는 객석에 앉아 두근두근 공연 시작을 기다렸다. 일본의 재즈 연주 그룹 카즈미 타테이시 트리오가 무대에 올랐고 <이웃집 토토로> OST를 연주했다. 첫 곡을 마치고 카즈미 타테이시 씨가 마이크를 잡으며 활짝 웃었다.
"캄사함니다! 3년 만에 왔어요. 그동안 못 와서 슬펐어요."
2011년부터 매년 내한 공연을 해온 트리오는 코로나로 2020년, 2021년을 건너뛰고 3년 만에 한국 무대에 섰다고 한다.
"마음을 다해 연주하겠습니다. 즐겨주세요."
일할 때 듣는 노래, 나에게도 노동요가 있다. 지금은 귀를 막고 일할 수 없어서 노래를 안 듣지만 4년 전 뉴스팀에서 일할 때 나의 노동요는 카즈미 타테이시 트리오가 연주한 '바다가 보이는 마을'이었다. 일하는 동안 무한 반복 모드로 하루에 서른 번쯤 들었던 것 같다. 연주곡 순서에 나의 노동요도 포함되어 있어서 너무나 반가웠다.
3천 번은 넘게 들었을 '바다가 보이는 마을'이 시작되자마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리고 이명박 전 대통령 구속, 김경수 전 경남지사 검찰 출석 등 2018년 굵직했던 사건들이... 왜죠. 왜 떠오르는 거죠. 꼬리에 꼬리를 무는 엉뚱한 생각을 끊으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서로 눈을 맞추며 연주하는 멤버들을 보고 있자니 나까지 가슴이 벅차올랐다. 이 한 곡을 듣기 위해서라도 다시 공연에 올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나라 만화 주제가를 같이 부르기도 하고 박수도 실컷 치며 2시간을 즐겁게 보냈다. 나오면서 CD를 사서 집에 오자마자 플레이어에 걸고 '바다가 보이는 마을'을 또 들었다. (다행히 이명박 전 대통령, 김경수 전 지사가 또 생각나진 않았다.) 누워서 잠들기 전에 남편과 짧은 감상도 나누었다.
"카즈미 님, 진짜 행복해 보였어."
"그치, 표정 너무 좋더라. 재밌었어."
이제 조금 덜 긴장하고 새로운 공연에 도전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정말 행복한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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