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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롱 Feb 18. 2023

나홀로 집에

있었던 그 새벽


 퇴사를 앞두고 불면의 밤을 보내고 있다. 내 발로 나가는 건데도 이게 맞나, 이래도 되는 건가 자꾸만 뒤를 돌아보는 중이다. 며칠 전 새벽에도 한참 잔 건 같은데 눈을 떠보니 1시가 조금 넘어 있었다. 일어나서 뭘 하기엔 너무 이른 시간이라 눈을 감고 오지 않는 잠을 기다렸다. 남편은 회사 워크숍을 가고 집에 없었다. 


 이리저리 뒤척이고 있는데 거실에서 큰 소리가 들렸다. 웬 남자가 영어로 뭐라고 막 떠들었다. 이 시간에 나 혼자 있는 집에서 왜 이런 소리가 들리나. 무서워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이불을 붙들고 자기 전에 현관문 안전 고리를 걸었나 되짚어 봤는데 기억이 안 났다. 아니, 안 걸었어도 저런 소리가 나면 안 되는 거 아닌가. 


 계속 가만히 있기에는 소리가 너무 컸다. 거실 쪽으로 고개를 쭉 빼보니 빛이 번쩍번쩍 나고 있었다. 대체 뭘까. 그냥 두면 아래위 집에도 시끄러울 것 같아 어쩔 수 없이 일어나서 거실로 나갔다. 시퍼런 바다가 TV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더욱 어이가 없었던 건 하필이면 내가 지금 일하고 있는 채널이었다. 주변을 두리번 거렸으나 당연히 아무도, 아무것도 없었다. 탁자 바구니에 가지런히 놓여 있는 리모컨으로 얼른 TV를 껐다. 다시 방에 누워 또 TV가 켜지면 어떡하나 걱정하다 아침을 맞았다. 


 우리 집은 TV를 거의 보지 않아서 기껏해야 주말에 한두 시간 켜놓는 정도다. 자동 켜짐 이런 기능이 있는지도 모른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범인은 남편 같았다. 냉장고, 세탁기, 청소기 등 가전은 모두 남편 휴대폰에 깔린 앱에 연동이 돼 있다. 해가 뜨자마자 득달같이 연락을 했다. 

 -새벽에 TV 켰어? 그 시간에? 나 엄청 깜짝 놀랐어. 

 -무슨 TV? 

 -TV가 갑자기 켜졌다구. 네가 앱으로 켠 거 아니야? 

 -TV는 연동 안 해놨는데? 

 -... 뭐야 무서웡


 그날 회사에 가서 동료에게 새벽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저 아무래도 회사 귀신이 붙었나 봐요."

 "그러니까 왜 그만둔다고 해서! 귀신 붙었대요~ 귀신 붙었대요~"

 그때는 같이 깔깔 웃지만 요즘 집에 오면 자꾸 TV 눈치를 보게 된다. 내가 자주 볼테니까 새벽에 혼자 켜지진 말아줘.  

 

사진 출처

https://sports.khan.co.kr/entertainment/sk_index.html?art_id=201812250000053&sec_id=54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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