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어떻게 쓸 것인가

내겐 너무 어려운 청첩장

by 초롱

방송'작가'니까 청첩장 문구 쓰는 일은 내가 맡기로 했다. 똘이 앞에서 괜히 센 척을 해봤다.

"누나가 말이야. 어마어마한 걸 써올 테야."

보통 청첩장을 결혼식 두 달 전쯤 맡긴다고 하는데 나는 그보다 두 달 앞서, 그러니까 4개월 전부터 고민하기 시작했다. 누가 봐도 '이건 초롱이구먼' 싶은 초대 글을 쓰고 싶었다.

하지만 별 소득 없이 시간만 흘려보냈다.

'귀여운, 출정식, 행복...'

넣고 싶은 단어를 휴대폰 메모장에, 수첩에 몇 개 끄적여보았지만 문장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똘이에게 멋들어진 문구를 쉽게 쓴 것처럼 툭 보여주고 싶었는데 한 줄도 써지지 않았다.


굳이 분류하자면 나는 마감 형 인간이다. 쫄려야 움직인다. 보통 원고를 쓸 때도 불안‧초조해하면서 텅 빈 모니터를 보고만 있다. 모르는 사람은 대단한 구상이라도 하는 줄 알겠지. 게다가 마지막에는 꼭 출력해서 연필로 줄을 죽죽 그어가며 고친다. 합리성과 효율을 추구한다고 떠들지만 나는 비효율 그 자체다.

청첩장이란 상대방에게 귀한 시간을 내어 나의 결혼식에 함께 해줄 것을 청하는 글 정도로 정의할 수 있겠다. 이렇게 목적이 확실한데 왜 한 줄도 쓰지 못하는가. 자료 조사 차원에서 남들은 어떻게 쓰는지 검색도 해봤지만 크게 도움 되지 않았다. 급기야 이걸 쓰겠다고 나댄 과거의 나를 원망하며 안 그래도 나쁜 머리를 쥐어박았다.


마감 형 인간에게 마감의 시간이 오고 말았다. 더는 청첩장 주문을 미룰 수 없었던 어느 일요일 아침이었다.

"시사‧교양 작가로서 사실에 근거해서 썼어."

"얼른 해봐."

큰소리쳐놓고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읽기 시작했다.


IMG_0098.png 실제 청첩장


가만히 듣던 똘이가 활짝 웃었다.

"아유, 잘 썼네. 잘 썼네."

마침내 고통의 두 달이 끝났다. 함부로 나서지 말자는 값진 교훈을 얻었다.


+

청첩장에 대한 반응은 "너답다", '피식', "너무 뻔뻔한 것 아니냐" 등 다양했다는 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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