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준생의 야구 과몰입
작년에 집을 샀다. 물론(?) 돈이 없으므로 은행님께 찾아가 읍소하고 요구하시는 서류도 다 갖다 드리고 제때 돈 잘 갚겠다고 사인도 수십 번 했다. 그렇게 내 집이 생겼다.
올해 초 방송작가를 때려치우겠다고 결심했을 때, 그래서 회사를 나올 때 마지막까지 걸렸던 건 당연히 대출이었다. 회사에 다니는 동안 월급날은 25일, 대출금 갚는 날은 26일이었다. 25일에 월급이 들어오지 않아도 26일에 대출금은 갚아야 하는데 회사를 그만둔 내 사정을 은행놈이 봐줄 리 만무했다. 남편에게 모든 부담을 지울 수도 없었다. 남들은 집 사고 차 사고 애까지 낳고 잘만 사는 것 같은데 난 그중의 하나 하는 게 왜 이렇게 힘든 걸까. 먼지처럼 스트레스가 차곡차곡 쌓였다.
그러니 급할 수밖에 없었다. 2월에 이어 6월에 또 한 번 퇴사를 하고 무슨 정신으로 살았는지 모르겠다. 이 회사는 아니라는 확신을 갖고 나오긴 했는데 그건 퇴사 전까지만 유의미하다. 퇴사를 하고 난 이후에는 '퇴사를 했다'는 사실만 남는다. 이상한 회사에 잠시 다녔다는 건 다음 취업에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다. 심지어 겨우 두 달, 이력서에서 빼는 게 더 나을 수도 있는 짧은 시간이었다.
닥치는 대로 이력서를 넣었다. 어떤 날은 하루에 네 개를 낸 적도 있다. (네 군데 모두 회사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 방송작가가 아닌 이직이 목표였는데 경력은 0에 가까웠으므로 탈락, 탈락, 또 탈락이었다. 초반에는 괜찮아, 다른 데 가면 되지 하고 껄껄 웃었는데 그것도 잠깐이었다. 왼쪽 어깨에는 박탈감, 오른쪽 어깨에는 자괴감이 들러붙어 떨어질 줄을 몰랐다.
그러다 어느 회사에서 면접을 보러 오라고 했다. 면접 이틀 뒤 출근하라는 연락을 받았다. 이 짓을 끝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그런데 가지 않기로 했다.
"면접 때 들어보니까 내가 생각했던 일이랑 너무 달라서. 다른 데 좀 더 기다려볼게."
가족들에게 덤덤한 얼굴로 얘기했지만 속으로 나는 내가 미쳤다고 생각했다. 내 발로 다시 취업 동굴로 걸어 들어가야 한다니 기가 막혔다.
취업은 취업이고 요즘도 야구를 열심히 본다. 야구를 보다 보면 종종 방망이 선수들이 '공을 참는다'고 말한다. 처음엔 그게 무슨 말인지 몰랐는데 투수가 던지는 모든 공에 방망이를 휘두르는 게 아니라 타자에게 유리한 공을 골라 쳐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기다렸던 합격 소식에 안 가기로 하고 혼자 책상 앞에 앉아서 마음을 달랬다. 이 공은 내 공이 아니야. 치면 안 돼. 기다려.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칠 수 있을 것 같은 공이 날아왔다. 방망이를 꽉 잡고 휘둘렀고 결과는 안타 정도. 좋은 분들과 좋아하는 일을 하게 됐다. 지난했던 취업 분투기를 옆에서 지켜본 나의 야구 선생님 남편과 소회를 나눴다.
"지난번에 안 가기로 한 건 공을 참은 거야. 근데 그때 너무 무서웠다. 이대로 망할 것 같더라고."
"그래봤자 원 아웃인걸."
"아냐, 거의 방출되는 기분이었어."
"야구를 너무 많이 봤네."
공을 쳤으니 이제 열심히 달려봐야지, 홈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