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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롱 Feb 04. 2020

다단계 다녀왔 습니다

上 두유노 네트워크 마케팅?

 -스타일리스트 H   

 자주 보지는 않았지만 잊을 만하면 소식을 주고받던 사이였다. H는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헤어, 메이크업을 배웠고 대학을 졸업하기 전에 스타일리스트 일을 시작했다. TV에 나오는 연예인을 내 친구가 꾸며준다니 마냥 신기한 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H에게 연락이 왔다.

 "알바 안 할래? 전시회 준비 도와주는 건데 한 이틀 정도 우리 집에서 자고. 어때?"

 당시 먹고 노는 대학생이었던 나는 덥석 H의 제안을 물었다. 따라다니다 보면 연예인을 볼 수 있지 않을까, 헛된 기대도 있었다. 여벌 옷을 싸 들고 암사역에서 기다리는데 멀리서 H가 화려한 선글라스를 쓰고 왔다.

 "안 헤맸어?"

 "우와 너 엄청 서울 사람이다~"     

 

 점심을 먹고 차를 마시는데 H가 잠시 생각하는 얼굴을 하더니 입을 열었다.

 "내가 얘기했던 일이 조금 바뀌어서 교육 듣고 사람들이랑 프로젝트 준비하고 그런 건데 괜찮지?"

 "무슨 교육?"

 "간단한 건데 가보면 알아."

 그때 알았어야 했다. 뭔가 잘못됐음을.     


 -칭찬은 고래도 혼을 빼놓는다     

 어떤 건물 3층으로 들어갔다. 넓지 않은 공간이 파티션으로 나뉘어 있고 둥그런 탁자 몇 개에 정장을 차려입은 사람들이 둘러앉아 있었다. 서른 명도 훨씬 넘는 그들 사이에서 나는 너무나 이방인이었는데 당시 내 옷차림이 지금도 생생하다. 단정한 청바지에 다양한 인종의 어린이들이 손에 손잡고 있는 분홍색 티셔츠.     

 

 "H 씨 친구죠? 어서 오세요~ 기다렸어요! 밖에 많이 덥죠? 가방은 이리 주세요~"

 입구에서 여자가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러면서 내가 가지고 있던 짐을 가져갔다. 백팩과 옷 보따리를 내주고 얼이 빠져 있는데 H가 속한 그룹으로 안내되었다.

 "어쩜, 얼굴이 너무 하얗네요."

 "대학생이라고 했죠? 너무 좋겠다."

 뭐라 할 말이 없어서 그냥 웃었더니 칭찬은 더욱 거세졌다.

 "OO 씨, 봤어요? 초롱 씨 웃는 거? 너무 귀엽지 않아요?"

 "어, 나 못 봤는데. 한 번만 더 웃으면 안 돼요?"

 혼이 빠져나가는 소리가 들릴 때 알았어야 했다. 뭔가 잘못됐음을.     


 -알고 보니 천재     

 잠시 면담을 하자며 불려 나왔다. 지금 내 나이쯤 됐을 것 같은 여자와 마주 앉았다. 사무실은 허술해 보였는데 방음이 잘 되는지 시끄럽던 바깥소리가 먼 듯 아득하게 들렸다. 

 "만나서 반가워요. 저는 OOO 실장이고요. H 씨한테 이야기 듣고 궁금했는데 인상이 참 좋으시네요."

 "아... 고맙습니다."

 "아직 학생이라 우리 업체 이름은 들어보신 적 없겠죠? H 씨한테 어디까지 얘기 들으셨어요?"

 "교육받고... 프로젝트 같은 거 한다고요."

 "그래요. 자세한 건 제가 지금부터 설명해드릴게요. 혹시 네트워크 마케팅이 뭔지 아세요?"

 알 리가 있나, 경제학 시간에 너무 잤나, 뭐 그런 생각을 하다가 더듬더듬 말했다.

 "조직적인 영업 전략 같은 건가요?"

 "세상에! 이렇게 정확한 답은 초롱 씨가 처음이에요! H 씨가 인재, 아니 이 정도면 천재를 데려왔네요."

 하얗다, 귀엽다는 칭찬은 칭찬도 아니었다. 칭찬에 거의 얻어맞다시피 한 나는 할 말을 잃었다. 교육 열심히 받으라는 격려와 함께 실장에게서 풀려났다.      

 

 사무실에서 나오니 내 가방을 가져갔던 여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좀... 혼자 있고 싶었다.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같이 가요. 제가 기다려드릴게요."

 거절할 틈도 없이 팔을 붙잡혔다. 불과 스무 걸음도 안 될 것 같은 화장실에 나란히 들어갔다. 문을 잠그고 휴대폰을 열어 문자를 보내기 시작했다. 여자는 밖에서 쉴 새 없이 말을 걸었다.

 -슈니, 나 이상한 데 온 거 같아. 어떡하지?


사진 출처

http://benbutler.net/the-4-ps-of-network-marke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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