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결혼에 관하여

왜, 누구와, 어떻게

by 초롱

-'왜' 해야 하나


결혼해야겠다고 결심한 건 십수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리가 연애를 시작한 해였는데 계기는 똘이가 아니었다.

오래 아프셨던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누구나 부모를 여읠 때 가슴 아픈 사연 하나씩 갖게 되는 것처럼 우리 엄마도 그랬다. 그날 엄마는 할머니를 만나러 가겠다고 약속했다. 할머니의 병원 생활은 이미 몇 달째 이어지고 있었고 엄마는 여러 번 봤던, 그래서 이미 너무 잘 알고 있는 아픈 엄마의 모습을 볼 자신이 없었다. 우리 가족은 병원에 가는 대신 고깃집에 가서 저녁을 먹었다. 원래 술을 먹지 않는 엄마를 빼고 아빠와 나, 동생이 쓴 소주를 몇 잔 마셨던 것 같다. 다들 말은 하지 않았지만 마음이 불편했으리라.

집에 와서 각자 쉬고 있는데 전화가 울렸다. 수화기를 든 엄마가 주저앉았다. 술을 마신 아빠를 대신해 엄마가 운전대를 잡았는데 차가 여러 번 휘청거렸다. 1시간 반을 달려 장례식장에 도착했고 차에서 내린 엄마는 다리가 풀려 다시 한번 주저앉고 말았다.

긴 밤이 두 번 지나갔다. 대부분의 시간을 엄마 옆에 있었던 건 아빠였다. 할머니를 보내드리기 위해 선산으로 올라가던 엄마와 옆에서 엄마의 어깨를 잡고 걷던 아빠의 뒷모습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그때 막연하게 나도 언젠가 결혼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세상이 무너진 것 같을 때 누군가 옆에 있었으면 하는, 다분히 이기적인 마음이었다.


-'누구와' 해야 하나


처음 만났을 때 똘이는 군인, 나는 휴학생이었다. 똘이는 (내가 아는 한) 두 번째, 나는 첫 연애였다. 똘이는 신중했고 나는 즉흥적이었다. 함께 열 몇 살을 먹었다. 똘이는 어엿한 직장인이 되었고 나는 n년차 방송작가가 되었다. 똘이는 여전히 신중하고 나는 지금도 즉흥적이다.

연애 초반, 나는 결혼에 들떠있었다(?). 3일에 한 번, 일주일에 2회 정도 결혼 노래를 불렀고 똘이는 그저 웃었다. 우리가 금방 결혼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땐 그랬다. 하지만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이런저런 얘기를 주워들으면서 '굳이 결혼해야 하나. 연애만으로도 좋은데' 생각하던 시절도 있었다.

그래도 결혼을 한다면 이 사람이어야 했다. 나와 다르면서도 비슷한 사람. 늘 시간에 쫓겨 다니던 나를 천천히 걷게 한 사람. 함께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게 얼마나 기쁜 일인지 가르쳐준 사람. 자신을 지킬 줄 아는 사람. 처음 만났을 때와 지금, 조금도 변함이 없는 사람. 언제나 내 편인 사람.

결혼은 이 사람이다 싶을 때 하는 게 아니라 누구와도 살 수 있을 때 하는 것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누구와도 결혼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혼자서도 충분히 잘 살 수 있다. 그런 경우라면 굳이 결혼하지 않아도 된다. 결혼은 놓칠 수 없는 사람을 만났을 때 해야 한다. 나에게는 똘이가 그런 사람이었다.


'자, 그럼 이제 결혼을 해보자'는 얘기 없이 언제부턴가 우리는 영수증 뒷면에, 버스표 구석에 있지도 않은 '우리 집' 평면도를 그리면서 놀았다.

"이 방에 벽은 책장을 짜서 넣고 내가 책이 더 많으니까 여기부터 여기까지 내가 쓸게. 놀이방이랑 옷방은 분리해줬으면 좋겠고 너는 정리를 못 하니까 방은 따로 못 줘. 거실에 청테이프로 한 평 표시해 줄게."

"(깜짝 놀란 얼굴로) 뭐라고?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제정신이야?"

입으로 방을 나누고 집을 꾸미면서 똘이와 함께 '사는 일'을 그렸다.


-'어떻게' 해야 하나


꼭 '식'을 해야 할까. 나는 지속하지 않는 것에 돈을 쓰는 것을 굉장히 아까워하는데 이를테면 똑같은 디자인의 볼펜과 샤프가 있으면 샤프를 고른다. 심만 넣으면 계속 쓸 수 있으니까. 그런 맥락에서 봤을 때 (필기구 고르기와 결혼식을 같은 선상에 놓고 비교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결혼식은 너무나 불필요한 (심지어 고비용의) 일회성 이벤트 아닌가. 그보다는 시청에서 혼인신고하고 맛있는 밥이나 한 끼 먹고 잘 살자고 결의를 다지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나. 내가 상상한 결혼은 이 정도였다. 물론 너무나 나만의 꿈이었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그렇게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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