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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롱 Jun 03. 2020

치킨 좋아하세요?

저는 안 좋아합니다만

 큰집에는 지금도 외양간이 있는데 내가 놀러 갔던 어느 여름날 송아지가 팔려나갔다. 엄마 소는 움머움머 3일을 울었다. 그 소리를 들으며 당시 7살이었던 나는 결심했다. '소가 사람보다 낫구나. 앞으로 소를 먹지 말자.'

 엄마는 내가 고기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났다는데 그 뒤로 정말 소고기를 입에 대지 않았다. 꽤 시간이 흘러 언제까지 안 먹고 살 수는 없으니 이제 좀 먹어볼까, 했을 때는 먹을 수 없는 몸이 되었다. 그 특유의 냄새를 견딜 수가 없다. 돼지고기와 섞어놔도 귀신같이 찾아내는 능력은 덤.


 고등학생 시절, 우리 학교 급식실은 유달리 소고기 반찬이 후했는데 하루건너 한 번은 나왔다. 식판을 들고 서 있다가 소고기 반찬이 보이면 친구들은 나를 한 번씩 쳐다봤다. 나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지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소고기 반찬이 나온 것보다 그런 시선을 받는 일이 더 불편했던 것 같다. 어느 날은 반찬을 나눠주시던 조리사 분에게 뜻밖의 질문을 받은 적도 있다.

 "학생... 혹시 힌두교야?

 그냥 아니라고 하면 될 것을 지나치게 당황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나는 영양사 선생님께 소고기 반찬을 대신해 깻잎 장조림을 받았다. 원래 향이 센 음식도 싫어하는데 먹고살기 위해 깻잎 장조림에 정을 붙였다. 


 그래서 치킨을 좋아했다. 아니, 좋아한다고 믿었다. 소고기라는 대중적인 음식을 먹지 않기 때문에 다른 고기는 (기필코) 잘 먹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었다. 친구랑 둘이 치킨을 좋아하는 모임 '치키니치치'도 만들었다. 그런데 막상 만나면 치킨은 안 시키고 맥주만 꽐꽐 먹었다. 

 "치킨 먹을까?"

 "너 잘 안 먹잖아. 별로 안 좋아하는 거 아니야?"

 "아닌데? 잘 먹는데? 두 개 정도는 먹는데?"

 "그게 안 좋아하는 거야, 인마."

 뒤늦게 깨달았다. 나는 원래 고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걸. 어쩐지. 삼겹살보다 마늘이 더 맛있더라.


 요즘 비거니즘과 관련된 책을 읽고 있다. (치킨을 사랑하는 남편은 나를 불안한 눈빛으로 지켜보고 있다.) 본격 채식을 결심한 건 아니고 사람들이 어떤 이유로 고기를 멀리하는지 궁금해서 찾아보게 됐는데 꽤 유익하다. 그리고 이제 타인의 시선에 나를 맞추느라 일부러 치킨을 좋아한다는 말은 하지 않으려고 한다. 각자의 선택과 취향은 존중받아야 하니까.


사진 출처

https://www.thespruceeats.com/terris-crispy-fried-chicken-legs-30568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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