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초롱 Dec 10. 2019

no 커피 no 어른

커피 한 잔에 담긴 어른의 세계

 커피를 하루에 석 잔 이상 마시지 않으면 기운을 못 차리는 엄마와 반 잔만 마셔도 심장이 벌렁대는 아빠 사이에서 태어났다. 극단적인 두 유전자 중 나는 아빠의 것만 고스란히 물려받았다.     

 

 수년 전, 막내 작가가 되고 처음 취재를 나간 곳은 노동운동을 하는 시민단체였다. 멀리서 온 우리가 자리에 앉자마자 대표님이 물었다.

 "커피 한 잔 드릴까요?"

 "좋죠. 고맙습니다."

 피디님과 메인 작가님이 인사를 하는 동안 혼자 우물쭈물했다. 잠시 후 믹스커피가 가득 담긴 종이컵이 탁자에 놓였다.

 "따뜻할 때 마셔."

 "저... 커피를 못 마셔서요, 선배님."

 "그래도 주시는 건 마셔야지. 그래야 어른이야."

 나에게 커피는 주면 마시고 안 주면 안 마시는 음료가 아니지만 입을 다물었다. 식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꿀꺽 삼켰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심장이 쿵쿵거리는 소리를 서라운드로 들었다. 맥주를 사랑하고 소주를 아끼지만 커피 덕분에 술 못 먹는 사람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한다. 절대 다른 사람에게 술을 권하지 않는다.     


 그래도 종종 커피가 있는 삶이 궁금하긴 하다.

 "단 걸 마실까~ 쓴 걸 마실까~"

 일이 잘 안 풀린다며 커피를 고르는 동료의 뒷모습이, 숙취엔 이거만 한 게 없다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들이켜는 동무의 얼굴이 부럽다. 보리차, 핫초코, 오렌지 주스로는 따라잡을 수 없는 미지의 세계랄까.


 엄마가 손톱만큼 남긴 믹스 커피에 에이스를 찍어 먹던 어린이는 무럭무럭 자라 커피 보기를 사약같이 하는 어른이 되었다. 혹시 다시 태어날 때 선택할 수 있다면 역시 커피 한 잔 정도는 즐길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메밀차를 마시면서 씁니다.


사진 출처     

https://www.inc.com/geoffrey-james/he-drank-47-cups-of-coffee-a-day-what-happened-was-beyond-amazing.html


매거진의 이전글 치킨 좋아하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