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할 수도 즐길 수도 없는 그것
결혼을 앞둔 사람들이라면 거쳐야 하는 통과 의례 중 하나. 2년 전 결혼한 내 친구 재리군은 이렇게 말했다.
"난 정말... 상견례 때문에 두 번은 결혼 못 할 것 같아."
물렁물렁한 친구를 이렇게 단호박으로 만든 상견례란 대체 뭘까. 짐작이 안 되는 그것을 우리도 더는 미룰 수 없게 됐다. 결혼이 6개월 앞으로 다가온 어느 주말 드디어 양가 부모님이 만났다.
당시 어머님은 주변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듣고 결혼에 대한 의견을 적극적으로 내시는 중이었다. 하지만 앞서 얘기한 것처럼 우리는 뭔가 해보겠다는 욕심도, 여유도 없었기 때문에 다소 부담을 느꼈다. 가는 차 안에서 아빠한테 넌지시 말했다.
"똘이 부모님께 애들이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두자고 한 번만 말씀드려줘."
아빠는 별 반응이 없었다. 내 낯가림의 9할은 김씨 집안 내력이라 상견례 자리에서도 조용할 것 같았다. 대답을 포기한 나는 창밖만 하염없이 쳐다봤다. 차가 주차장에 들어서고 코트를 한껏 차려입은 똘이가 보였다.
"이야~ 좋은 옷 입었네에에~"
동네 건달처럼 아는 체하는 나를 재껴두고 똘이가 엄마, 아빠에게 90도로 인사했다. 역시 상견례 날은 평소 같으면 안 되는 건가. 다 같이 식당으로 들어가니 멋쟁이 아버님, 어머님이 일어나셨다. 두 분의 긴장이 멀리서부터 느껴졌다.
"처음 뵙겠습니다. 반갑습니다."
각자 카운터파트를 마주 보고 앉았다. 음식이 하나씩 나오는 중에 나무토막 같은 대화가 몇 번 이어지고 끊어지길 반복했다. 그리고 아버님이 말씀하셨다.
"애들이 오래 만났다는데 저희끼리는 인사가 너무 늦었네요. 먼 길 오시느라 고생하셨는데 약주 좀 하시겠습니까?"
"좋습니다. 소주 괜찮으신가요? 너희도 마실래?"
막 정오를 지난 시간이었다. 계속 어색하느니 조금 취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서 똘이와 나는 넙죽넙죽 술을 받아먹고 또 따라드렸다. 그런데 이상하게 마셔도 마셔도 취하지 않았다. 문득 아버님이 물으셨다.
"초롱이 괜찮냐?"
"그럼요, 아버님."
"쟤가 저랑 자주 마시는데 이 정도는 괜찮습니다."
"허허. 딸이 좋긴 좋네요. 아들놈들은 같이 술도 안 먹어주고 무뚝뚝하기만 한데."
한 병, 두 병 늘어날수록 무겁던 공기가 조금씩 가벼워졌다. 아빠와 아버님은 종사하고 계신 산업(?)의 현재(?)와 앞으로의 비전(?)에 대해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셨다. 서로 다른 분야를 어떻게 융합(?)할 수 있을지 큰 그림에 대한 의견도 교환하셨다. 예상과 달리 엄마와 어머님은 거의 듣기만 하셨다. 나와 똘이는 고개를 갸웃거리다 눈이 마주치면 웃었다.
"얘가 그래도 고등학교 때까지 공부를 곧잘 했어요. 원래 의대 가고 싶다고 했었거든요. 욕심이 있었어요."
아버님이 불쑥 똘이의 꿈 얘기를 꺼내셨다. 고3 때 수능을 크게 망친 똘이가 재수해서 의대에 가고 싶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하지만 그때 부모님이 크게 반대하셨고 결국 추가 합격한 대학에 들어가면서 꿈을 접었다고 했다. 아마 아버님은 우리 부모님께 큰아들 자랑을 하고 싶으셨던 것 같다. 똘이가 원하는 만큼 공부시켜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도 슬쩍 보여주신 것 같다.
"똑똑하고 착하고 성실하고 한결같고 제가 옆에서 보니까 요새 똘이 같은 아이가 없더라고요."
엄마의 똘이 칭찬에 아버님, 어머님 표정이 환해졌다. 자식이란 부모에게 어떤 존재인 걸까. 다 커서 이제 가정을 꾸리겠다고 나서도 품에서 내놓기 아까운. 잘해준 열 가지보다 못 해준 한 가지가 마음에 남는. 두 분의 얼굴을 보면서 어렴풋이 짐작해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