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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롱 Jan 20. 2021

팔굽혀펴기 도전기

절반의 성공

 아빠는 체형에 비해 팔이 약간 긴데 나는 그것마저 아빠를 닮았다. 이걸 안 건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교복을 사러 갔을 때. 연예인 브로마이드를 받으려고 이른바 메이커 교복 전문점에 갔는데 하나 같이 손목이 훤히 드러났다.

 "따님이 팔이 좀 기네요. 기성복은 안 될 것 같은데요?"

 그럴 줄 알았다는 엄마와 달리 나는 충격을 금할 수 없었다. 내가, 내가 팔이 길다니... 결국 중, 고등학교 내내 맞춤 교복을 입었고 브로마이드는 못 받았다.


 이래서 옷을 고를 때 팔 길이가 중요하다. 팔 때문에 한 사이즈 크게 살 때도 있다. (그렇다고 막 오랑우탄을 생각하시면 오해입니다.) 사진 찍을 때 친구들이 셀카봉으로 써준다는 게 유일한 장점. 가장 큰 단점은 힘이 없다는 것.

 30년 넘게 살면서 턱걸이, 팔굽혀펴기를 한 번도 못 해봤다. 작고 왜소한 내 친구 슈니한테 매번 팔씨름을 진다. 병뚜껑도 잘 못 연다. 팔은 긴데 왜 힘이 없을까. 나는 좀 억울했다. 그러다 2020년이 100일 남은 날 결심했다. 올해가 가기 전에 팔굽혀펴기를 하겠다고.


 SNS에서 '운동하기 싫으신 여러분'에게 권하는 '완벽에 가까운 전신 운동'을 보고 아침마다 따라 하기 시작했다. 동작 중에는 팔굽혀펴기가 여러 번 포함돼 있었다. 처음엔 무릎을 땅에 대고도 팔을 덜덜 떨었다. 잘하고 싶다는 것보다 그냥 한다는 데 의의를 두고 아침마다 요가 매트를 깔았다. 그리고 대망의 2020년 12월 31일.


 장렬히 실패했다. 삼십몇 년을 못 하고 산 걸 해내기에 100일은 부족했나 보다. 그렇게 놀랍진 않았다. 안 한 것보다는 낫겠거니 하면서 해가 바뀌고도 아침마다 운동하고 있다. 그리고 며칠 전, 무릎을 안 대고 팔을 굽혀봤는데

 "어, 어, 어, 어, 어, 어, 어!!!!!!!!!!!!"

 팔이 굽혀졌다! 내가, 내가 팔을 굽히다니! 그날 저녁 남편에게 요란하게 자랑을 했다.

 "나 이제 팔굽혀펴기 할 수 있어!"

 "오오, 해봐!"

 "지금은 안 돼."

 "... 왜?"

 "팔이 아프거든. 그리고 굽히는 거만 했어. 펴지는 못해."

 "팔굽혀펴기가 아니라 팔굽히기 한 거네?"


 다음 날 아침 일어나니 물구나무서서 달리기한 것처럼(?) 팔이 아팠다. 이게 이럴 일인가 싶었지만 왠지 아프고 나면 멋진 근육이 생기지 않을까(?) 내심 기대하고 말았다. 꾸준히 운동해서 팔을 굽히고 무려 펼 수도 있는(!) 멋진 30대가 돼야지.


+ '운동하기 싫으신 여러분'에게 권하는 '완벽에 가까운 전신 운동'은 수리야나마스카라A, B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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