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분께 하고 싶었던 이야기
방송국에서 10년 넘게 일할 줄은 몰랐습니다. 때려치우겠다는 소리를 매주 하다가 매달, 요즘은 분기별로 한 번씩 하는 정도가 됐습니다. 말처럼 때려치울 수 없다는 걸 깨닫기도 했고 작가로 일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해서 그렇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보는 걸 '쓰고 싶어서' 방송 작가가 됐습니다. 좋아하는 게 일이 되니 회사 밖에서는 잘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펜을 잔뜩 사놓고 손에 쥐지 않았고요. 일기 한 줄도 쓰기 싫어서 다이어리가 텅텅 비었습니다. 작가라는 직업이 무색하게 쓰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방송 원고가 아닌 글을 '쓰고 싶어서' 브런치를 시작했습니다. 해가 바뀌어 벌써 3년째, 일주일에 한 편씩 쓰고 있습니다. 초반에는 조회 수에 일희일비했는데 지금은 어느 정도 적응이 됐습니다. 그래도 누군가 읽어주시면 신나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4년 전, 제 인생에서 지우고 싶은 두 사람에게 직장 내 괴롭힘을 당했습니다. 1년 가까이 폭언, 협박 등에 시달렸고 급기야 잘렸습니다. 선배라는 자격으로 퍼부은 막말과 악담은 지금도 가슴에 남아 있습니다. 작년까지는 꿈에도 종종 나왔는데요. 꿈에서도 못된 그 사람들을 만나고 눈을 뜨면 가슴이 뻐근하고 숨쉬기가 힘들었습니다.
브런치를 하면서 세운 목표가 있습니다. 구독자 100명이 되면 지금도 방송작가로 일하고 있는 그 사람들이 누군지, 얼마나 악랄하게 괴롭혔는지 여기 쓰고 싶었습니다. 나한테 왜 그랬는지 묻고 싶었습니다. 복수하고 싶었습니다. 구독자 100명이라는 조건을 단 건 닿을 수 없는 숫자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인생은 알 수 없습니다. 누가 내 글을 읽어줄까 싶었는데 한 명 두 명 늘던 구독자가 100명을 넘었습니다. 목표를 이룰 수 있게 됐는데 마냥 기쁘진 않았습니다. 내가 그런 걸 쓴다고 상처가 다 나을까. 의미가 있을까. 요 며칠 누가 시키지도 않은 고민을 했습니다.
언젠가 울면서 그들에 관해 얘기했을 때 남편이 말했습니다.
"이제 그만 놔줘. 계속 안고 살면 너만 다쳐. 그럴 가치도 없어."
그땐 자신이 없었는데요. 이제 있습니다. 없던 일로 만들 수는 없겠지만 제가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면요.
불순했던 목표를 이쯤에서 털어버릴 수 있도록 전환점을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글을 읽어주시고 다정한 마음을 남겨주시는 분들의 이름, 아이디를 보다 보면 수족냉증인 제 손끝이 따뜻해집니다. 덕분에 그치지 않고 계속 쓰고 있습니다.
끝으로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엄마와 남편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오래오래 우리의 기억을 기록하고 싶습니다. 지금처럼 지켜봐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