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성장서사

내가 그것을 보지 못하더라도

예언자들 - 2022.05.24

by 치슬로

선한 능력으로


원래도 좋아했지만 '선한 능력으로' 라는 찬양을 요즘 매일매일 듣고 있다. 마음으로부터 넘어질 일이 많기 때문에, 또 내 마음에 불안이 몰려들때 듣고 있으면 이 찬양이 주는 고요함과 다할 수 없는 평안이 다시금 내 마음에 임한다. 나무엔의 10번 반복 버전이 참 좋더라 나는.


이 찬양은 독일의 디트리히 본회퍼 목사님의 시를 찬양으로 옮긴 것이다. 공교롭게도 이 찬양은 선함과 평안함이란 전혀 느끼지 못할 것 같은 곳에서 쓰여졌다. 목사님은 독일인으로서 나치 독일에 맞서 '고백교회' 운동 등으로 악과 맞서 싸웠지만, 결국에는 나치에게 잡혀 감옥에서 생의 마지막을 보내야 했기 때문이다. 이 찬양의 가사는 그가 처형되기 전, 사랑하는 가족과 약혼녀에게 보낸 새해 편지의 일부다.


그 선한 힘에 고요히 감싸여 그 놀라운 평화를 누리며
나 그대들과 함께 걸어가네 나 그대들과 한 해를 여네
지나간 허물 어둠의 날들이 무겁게 내 영혼 짓 눌러도
오 주여 우릴 외면치 마시고 약속의 구원을 이루소서
그 선한 힘이 우릴 감싸시니 믿음으로 일어날 일 기대하네
주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셔 하루 또 하루가 늘 새로워

주게서 밝히신 작은 촛불이 어둠을 헤치고 타오르네
그 빛에 우리 모두 하나 되어 온누리에 비추게 하소서
선한 힘이 우릴 감싸시니 믿음으로 일어날 일 기대하네
주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셔 하루 또 하루가 늘 새로워

이 고요함이 깊이 번져갈 때 저 가슴 벅찬 노래 들리네
다시 하나가 되게 이끄소서 당신의 빛이 빛나는 이 밤
선한 힘이 우릴 감싸시니 믿음으로 일어날 일 기대하네
주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셔 하루 또 하루가 늘 새로워


대부분의 사람들은 유대인들과 나치 세력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이 시기에 어떻게 죽어갔는지 잘 알고 있다. 그리고 디트리히 본회퍼 목사님은 독일이 2차 세계대전에서 항복 선언을 하기 바로 한 달 전에 목숨을 잃었다. 거의 모든 상황이 평안과 선함을 꿈꾸고 바랄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희망이 없는 교도소 생활과 나치 패망을 보지 못한 자의 죽음. 그런데도 가사에서는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을 누리는 이의 모습이 그려진다. 물론 그에게도 인간적인 절망과 두려움이 있었겠지만,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개죽음과 세례 요한


20대 초의 일기를 읽다 보면 세례 요한에 관한 대목이 나온다. 아마도 그 날 교회에서 세례 요한에 대한 설교를 들었던 것 같은데, 모든 구절이 기억은 안 나지만 나는 일기 마지막을 이렇게 적었다. "교회에서는 세례 요한을 예수님의 길을 미리 보고 예비한 사람이자 겸손한 자라고 칭송한다. 하지만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고생만 하다 갔다. 마지막은 이세벨과 살로메의 별것도 아닌 악한 소원 하나로 인해 참수당하고 희롱당한다. 이거 완전 개죽음 아닌가. 사람들은 칭송하지만 이 삶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지."


사실 따지고 보면 세례 요한 뿐만 아니라 많은 성경 인물들은 대부분 소위 고생만 지지리 하다가 세상을 떠난다. 모세도 약속된 땅을 보지 못하고 광야에서 고생만 하다 죽었고, 사도 바울도 결국에는 로마로 붙잡혀 가서 죽었고, 수많은 예수님의 제자들도 순교했다. 예레미야는 그의 생 대부분을 애통해하고 눈물 흘리다가 죽었고 많은 '하나님의 사람' 들에겐 평안한 삶이 허락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얻을지도 모르는 땅을 가지고 이야기했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평안, 그리고 그가 자신의 백성들에게 내려주는 약속을 늘 이야기했다. 그것을 새겨 듣는 사람들이 별로 없어 그들은 그 생 내내 고통받았지만 그 예언과 약속은 어쨌든 그들이 고통받으며 죽어간 뒤에 성취되고 실현되었다. 그것이 받아들여지던 말든. 디트리히 본회퍼 목사님의 시도 결국에는 하나의 예언이었고, 그것은 진짜가 되었으니.


예언자들


이제 더 이상 하나님께 직통으로 계시를 받는 예언자는 세상에서 나오지 않는다고 교회에서는 말한다. 하지만 하나님의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예언자적 사명' 이 허락되고, 의무처럼 주어지는 것 같다. 물론, 세상에는 하나님의 뜻을 예언한다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속이고 온갖 재물을 받아 챙기는 사람들이 있지만... (당장 한국에만 자칭 '재림예수' 가 50명이 넘는다고 하지 않은가!) 진정으로 미래를 볼 줄 알았던 이들은 애통함과 자신이 발붙이고 사는 땅에 대한 사랑, 사람들의 고통을 온몸으로 짊어지고 갔다. 그러면서도 외부의 상황에서는 전혀 꿈꿀 수 없는 선한 뜻과 평안을 전하려고 애썼다.


모든 하나님의 사람들이 수많은 믿음의 선배들처럼 평생을 저러한 고통 속에 살아가지는 않겠지만, 허무하고 고통스러운 인생사에서 희망을 찾는 일은 허락되는 것 같다. 사람은 변하지 않고, 세상은 악하다. 하나님은 응답하지 않으시지만... 그래도 하나님은 나와 함께 하신다. 그러니 언젠가 세상은 변하고, 저 사람에게도 평안이 임하고, 선이 승리할 것이란 믿음. 내가 뿌린 씨앗을 거둘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내 뒤의 누군가는 그것을 거두리란 희망. 성취와 성공, 한탕주의가 판을 치는 세상에서 예언자의 후예들은 미련하고 답답하다. 도대체 통하지 않는 말을 계속 하기 때문이리라.


삶의 의미


성경에서는 믿음의 중요성이 몇 번 씩이나 되풀이되어 나온다. 누가 세어봤더니 백 몇번이랬나...? 하지만 그 누구도 그 믿음이 성취되는 것을 바로 볼 수 있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변화는 빠르게 오지 않는다. 그는 갈 지자 걸음으로 느릿느릿, 수많은 돌들에 걸리고 넘어지면서 겨우 온다. 그럼에도 보이지 않아도 믿는 것, 내가 바라는 선한 뜻이 이 땅에 성취되리라는 믿음, 하나님이 일하실 것이라는 믿음이 우리의 하루를, 또 내가 죽고 난 다음 펼쳐질 세계를 꿈꾸고 의미있게 하는 것 같다.


여전히 세례 요한과 디트리히 본회퍼, 그리고 전세계에 흩어진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의 삶이 전부 이해되지는 않는다. 사실 나에게 성경을 읽을 때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예언자들이 화를 내며 도대체 못해먹겠다고 하나님에게 폭발하고 슬퍼하는 장면들이다. 나 역시도 하나님께 화를 낸다. 도대체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에 대하여, 계속 내 마음을 슬프게 하는 일을 바라보면서. 얼마 전에는 기도만 하면 자동으로 쌍욕이 튀어나와서 기도를 포기하거나 기도 내내 욕만 하다 끝난 일도 있었다. (아마 지금이 구약 시대였으면 난 골백번은 고쳐 죽고도 남았겠지....?)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보고 기뻐하는 일은 너무 어렵다. 하지만 그것을 보고 꿈꿀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다면... 회복과 평안, 기쁨을 생각하게 된다면 내 삶은 이전과 참 많이 달라지지 않을까 싶다. 비록 처음부터 내 의지는 아니었지만, 나를 여기까지 이끈 그 분에게 이뤄질 선할 일들을 좀 더 상상할 수 있도록 지경을 넓혀달라고 기도하고 있다. 우리의 매일이 새로워질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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