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성장서사

꿈꾸고 바라온 것

22.06.01

by 치슬로

작년 10월, 꿈꾸던 용산 집에 전세계약을 할 때만 해도 내 꿈은 명확했다. 퇴근하고 나면 모교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려 읽는다. 충분한 공부와 독서, 운동 시간을 갖는다. 미국에서 해먹었던 것처럼 밥도 잘 해먹는다.


하지만 그 꿈은 오래 가지 않아 모교 도서관의 꿈은 연체료 700원이라는 허무한 숫자를 남겼고, 운동도 한 달 하고는 두 달 치를 모두 날리고, 밥은 해먹을 때도 있었지만 배달 어플에 상당수 의존했고 냉장고에선 상한 식재료를 정리하는 것이 다반사였다. 내 본가행이 결정된 후 용산 집엔 저런 미완의 흔적들만 가득했으리라.


본가에 와서 야심차게 시작한 건 '런데이' 달리기 어플이었다. 이틀에 한 번 꼴로 탄천에 달리기를 하러 나갔고 도합 5km씩을 달리기와 걷기로 채웠다. 10년 넘게 쓴 매트리스도 바꿨다. 그러던 와중 생전 걸려본 적 없는 위경련이 왔고, 생각보다 위장이 아픈 건 많은 기력을 소모하게 만들었다. 다시 내려놨다.


오늘 문득 잘 안 낫는 몸을 데리고 산다는 걸 생각해보면서, 왜 나는 여지껏 무언가를 '맘 편하게' 해 본적이 잘 없는지 의문을 던져봤다. 재수 시절이 사실 현역 때보다 행복했던 건 '울지 않고 집중해서 공부할 수 있어서' 였고, 미국 생활이 행복했던 것 역시 그러한 이유에서였다. 내가 꾸준히 하고자 하던 공부, 글쓰기, QT들이 자꾸만 미뤄지고, 동력을 잃어버리는 건 대체 왜일까? 나는 뭘 하려면 자꾸 아프고 힘들까?


본디 예민하게 태어난 내 몸과 마음, 거기에 덧붙여 온 몸의 촉수를 곤두세우고 살게 한 나의 성장배경은 이제 와서 뭐 어쩔 수 없는 부분이지만, 과연 나는 내게 행복하고 편안하게 살 자유를 얼마나 허용했는지에 대해 생각해봤다. 불안하지 않아도 되는 삶이 있고, 행복하기만 해도 되는 삶이 있다. 그런 삶이 존재한다는 걸 29살에 처음 알았으니까, 그 삶의 감각을 자꾸 일깨우고 허용하지 않으면 내 몸은, 내 마음은 으레 그랬던 것처럼 다시 아프고 힘든 상태로 되돌아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고개를 끄덕여봤다.


온몸이 스트레스로 굳다 못해 딱딱해졌다고, 제발 여기 와서라도 누굴 욕하든, 속 얘길 다 해서 스트레스를 풀라고 걱정스레 말하던 얼굴 경락 원장님의 말씀을 되새겨보며... 그래서 좀 오늘은 아프고 힘들지 않기 위해 많이 울었다. 울고 나니 속이 좀 편해졌던 건 기분 탓이었을까?


조금만 해도 잘하는 사람들이 득실거리는 회사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렇게 자신을 쥐어짜지 않아도 된다고 다시 스스로에게 말해본다. 사람이 싫어지고 진심을 다할 힘도 없을 땐 그냥 그래도 되고, 이 모든 것은 또 지나갈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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