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성장서사

세련되게 때려부수기

최근의 악기 얘기들 09.05

by 치슬로

돌아보면 주구장창 피아노만 쳤다. 소위 피아노 교육 수준을 판단할 때 "체르니 몇 까지 쳤냐?" 를 묻는데, 나는 40까지는 쳤던 것 같고 중 2까지는 계속 피아노 과외도 받고, 합창대회 반주도 어찌저찌 했던 것 같다.


현이나 관에 대한 동경은 항상 있었다. 짝이 가지고 온 고급 연주자용 플룻에 대한 종알거림이라던가, - "쟤는 어떻게 악기까지 못하는게 없냐." - 고등학교 오케스트라에서 봤던 선배의 첼로, 사회에 나가서는 개발자 친구의 바이올린 오디션에 대한 고민을 들으며, 난 왜 피아노 말고 딴 것도 배우겠단 얘기를 못했더라? 생각을 해 봤다.


교회 찬양팀을 거쳤으니 드럼이나 기타도 덤으로 배워갔을 법 했건만, 20대의 방황으로 그 계획은 무산되었다. 나는 찬양하는 마음과 한국 기독교에 대한 실망감은 양립할 수 없는 것이라고 그때엔 굳게 믿었었기 때문이다. 2년 전, 결국 이직 최종면접 결과를 기다리던 주간에 저 찬양팀 하면 이 회사 붙여주시는 걸로 하자고 하나님과 딜을 하고 다시 돌아오긴 했지만. 나는 사실 건반만 잘 하기도 벅차다는 사실을 그제서야 깨달았다.



친구 K가 예술의 전당이 코앞인 동네로 이사가더니 악기에 대한 마음이 다시금 피어오른다고 얘기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동네는 소위 '악기거리' 라고, 악기상과 연습실, 바이올린 현과 그 현에 들어가는 털만 전문으로 하는 곳이 가득찬 곳이었으며 언제든 연습실에서 새어나오는 악기 소리를 일상적으로 들을 수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K가 요즘 하고 싶은 것은 드럼이라기에 함께 좀 더 뽐뿌를 넣자며 나눴던 얘기는 '세련되게 때려부수자' 는 이야기였다. 나는 사실 개인적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거나 성질이 나면 록이나 헤비메탈을 튼다. 그 곡들은 보통 베이스라인이 인상적일때가 많지만 그 뒤로 긴박하게 움직이다가 화산처럼 폭발하는 드럼 역시 몸을 전율하게 하는 일이 많다. 그 연주자들은 얼마나 신이 날까? 그리고 내가 저대로만 칠 수 있다면 나는 또 얼마나 신이 나고 재밌을까? 하는 생각들을 매번 하곤 했다.


한편 난 개인적으로 일하다 힘들면 거실에 나가서 피아노를 치는데, 사실 실력이 일천하고 연습이 부족해서 혼자 쳐도 그다지 흥이 나지 않을 때가 많다. 비슷한 경우로 뭔가를 '때려부수어야만' 할 때, 리듬과 주변 음과 조화가 없는 때려부숨은 소음이자 내 자신을 소진되게만 할 때가 많다. 흥이 안 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드럼과 리듬, 악기들과의 조화를 배운다면 때려부술때도 좀 더 세련되게, 내적 흥을 가지고 때려부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세련되게 때려부수어야 하니 드럼을 배우자!' 라고 말했다. K도 이 표현을 마음에 들어 했다.



리치 코젠(미국 록밴드 Mr.Big의 기타리스트)의 노래를 듣다 보면 일렉이 미친듯이 하고 싶어지고, CCM을 듣다 보면 건반도 빨리 더 잘하고 싶고, 일본 3인조 어쿠스틱 카페의 노래를 들으면 바이올린과 첼로를 너무나 다루고 싶어진다.


배우고 싶으면 배우면 되지! 란 말을 할 수도 있지만 악기를 향한 마음에 대해 자꾸 말이 길어지는 걸 보면 세련됨과 흥에 이르기까지의 그 과정을 내가 잘 참고 넘어갈 수 있을까? 에 대한 두려움이 커서일지도 모른다.


친구들에게는 네가 다루는 현도, 건반도 네가 무얼 하던 상관없이 너를 사랑할 거라고 말했지만 막상 나는 일요일 아침마다 교회 키보드인 MODX7 앞에 앉으면 황송한 마음이 제일 먼저 든다. 아직 이 친구를 세련되게 사랑하고, 세련되게 두들기기엔 내가 너무 부족하단 걸 매번 자각하게 해 주기 때문이다.


탑 클래스 연주자들도 매일 연습에 엄청나게 매진을 하듯, 악기란 것의 어떤 경지에 도달하는 것은 꽤나 고행에 가까운 일일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해봤다. 하지만 - 내가 고민하고 가끔은 미스터치로 잔소리를 듣는 순간과 코드 진행에 자신감이 사라지는, 어쩌면 새로운 악기를 퉁겨보다 겁먹고 내려놓는 이 모든 순간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나아가 새로운 악기도 더 사랑해보기를 시도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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