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이 한 뜻밖의 제안 04.16
여느때처럼 동생이 잘 자라고 인사를 하러 내 방에 찾아온 순간 일어로 말을 걸어보았다.
나 : 나..JLPT 봐도 될까?
동생 : 안될게 뭐가 있어. 시험 봐.
나 : 근데 자신이 없어...
동생 : 자신 없어도 그냥 해. 나라고 일어 자신 있어서 시험 봤나? 단어랑 한자 진짜 모르는데.. 그냥 본거지.
나 : 흠...
동생 : (내 방 서가를 뒤적이더니) 언니 이 JLPT 문제집 예전에 산건가? 그냥 나랑 공부하자. 내가 도와줄게.
나 : 나 일어 엄청 못해서 화날텐데?
동생 : 언니가 일어 못하는 거랑 내가 화나는 거랑 무슨 상관이야. 화 안내.
나 : 너 천사야?
동생 : 천사 아니고, 언니 내일부터 퇴근길에 무조건 일드 보면서 와. 일어는 무조건 죽어라고 들어야 돼. 그리고 주4일 밤 11시마다 공부하는걸로 하자.
나 : 정말???
동생 : 대신 나 영어로 해리포터 읽는 것 좀 도와줘. 당장 내일부터 시작이야.
그렇게 해서 동생과 매일 일어를 공부하게 되었다는 소식. 물론 나도 동생 영어를 봐주긴 할 거지만 어딘가 모르게 내가 더 덕을 보는 느낌이다.
생각해보면 일어는 항상 내 마음 한 켠을 불편하게 했던 존재였다. 잘하는 건 아니지만 중고등학생 시절 죽어라고 해서 이제 어느 정도 기본기를 다져놓은 영어나 러시아어와는 달리, 찔끔찔끔 공부하다보니 실력이 쌓일 틈이 없었다. 한자랑 히라가나/가타가나만 어느정도 해 놓다 보니 읽어서 무슨 말인지는 아는데 정작 듣고는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대답도 못하는 상태로 그렇게 몇 년을 보냈다.
그러다 진짜 안 되겠어서 작년에는 일어 과외를 1주일에 한 번씩 받았었다. 하지만 그땐 'JLPT 3급을 따겠다' 외에 일어를 공부해서 무엇이 되겠다, 무엇을 하겠다는 명확한 목표가 없었다. 습관을 어떻게 형성해야 하는지도 잘 몰랐고. 결국엔 참가에 의의를 두는 올림픽 정신으로 JLPT를 봤고 내 점수는 장렬하게 산화해버렸다(...
나와 반대로 동생은 흔한 과외나 학원 없이도 일어를 마스터한 경우인데, 초등학생 때부터 투니버스를 붙들고 살더니, 중학생이 되어서는 만화책과 온갖 일본 애니메이션을 탐독하고 고등학생 때에는 그 영역이 일본 드라마로까지 확장되었다. 대학생이 되니 이제 그냥 애니메이션과 드라마를 자막 없이 보더라. 그게 더 편하다고.
애니메이션 전공자이니 일본어를 잘 하는게 당연해 보일수도 있지만(오덕..?!) 동생이 일본어 듣기에 투입한 절대 시간의 양과 자막 없는 애니메이션과 번역 안 된 만화책으로 '의도적 수련' 을 해온 시간을 합하면 그 노력의 양은 정말 어마어마할거란 생각이 들었다. (대신 영어는 잘 못하는데, 지금은 자기가 좋아하는 해리포터 원서 읽기와 미국 드라마, 토크쇼 보기로 절대적인 공부 양을 채워가고 있다. 본인 스스로는 공부란 생각도 잘 안한단다. 볼 때마다 정말 대단한 친구라고 생각한다.)
사실 지금도 일본어로 이루고 싶은 목표가 바로 그려지진 않는다. 바라는 거라면 가족들이 일어로 수다를 떨 때 나도 그 사이에 껴서 할 말 다 하는 것. 일본 여행 갔을 때 어려움 없이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 (일본은 일본어 못해도 여행 잘 다닐 순 있지만 동생이랑 가보니 일어를 잘 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정보나 도움의 질이 못할 때와는 확연히 달랐다.) 그리고 POPEYE 같은 일본 잡지나 일본 신문을 폼나게 읽는 것.
뭐 아직 명확한 목표는 아니지만, 목표가 막 뚜렷하진 않더라도 동생이 일어를 마스터하고 나보다 먼저 JLPT를 딴 과정을 하나하나 쫓아가면서 공부를 해 보는 것 자체가 꽤나 재미있고 알찬 경험이 될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번 7월에 동생의 방식대로 공부해서 JLPT 3급을 따고, 12월엔 2급을 따면 금.상.첨.화!
요즘 뭔가 더 나아져보겠다고 결심을 하니 코딩이며, 기획 공부며, 습관 형성이며 일어까지 도와주겠다는 분들이 전부 나타나셔서 몸둘 바를 모르겠다 :) 여튼 무엇이든 즐겁고 신나게 했으면 좋겠다는 오늘 엄마의 격려를 생각해보며 내일도 열심히 임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