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성장서사

전 감정 없이 살고 싶었어요

조너선 하이트 <바른마음> 1-2장

by 치슬로

대학생때부터 늘 생각해왔던 건 감정 없이 이성만 남은 존재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지금 와서 보면 치기 어린 발상이 아닐 수 없겠으나 정말로 많이 절박했던 소원 중 하나였다.

정치와 사회 현안, 많은 것들이 나의 분노의 대상이 되었고, 삶에 끼어든 크고 작은 일들로 화를 내거나 한참을 울고 나면 정말 나에게 중요한 걸 해야 할 에너지는 남아있지 않았다. 그리고 그때마다 침대에 가만히 누워 생각했다. 감정은 왜 있을까, 정말 쓸데없다. 사람을 이렇게 힘들게나 하고. 감정 없이 이성만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고통도 없을테니, 내게 중요한 일들을 수없이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나는 훌륭한 사람이 되고...


그리고, 세상의 윤리 도덕이란 것들은 대개 '거룩한 분노' 로부터 온다고들 말하지만 방점은 앞에 찍혀 있다. 분노가 거룩해지려면 가슴보다는 머리가 앞서야 하지 않을까. 합리적인 추론과 생각, 적절히 제어되는 감정과 이로써 보존되는 거룩한 일들을 위한 에너지...


잘 몰랐지만 한참 과거의 사람들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바른 마음에 따르면... 플라톤의 <티마이오스>에서 말하길, 신은 완벽한 합리성을 담은 제 1의 영혼을 머리에 담았고... 어쨌든 머리만으로 물리적 세상을 살기엔 애로사항이 꽃폈으므로 제2의 영혼이 담긴 몸을 주었다고 언급했다.


... 그다음으로는 고통이라는 것이 있어 우리를 선에서 멀리 달아나도록 했다. 여기에 무모함과 두려움도 자리하고 있는데, 둘은 모두 어리석은 조언자이다. 거기다 쉽게 억눌러지지 않는 분노심, 쉽사리 어긋나버리는 기대도 자리잡고 있다. 신들은 이것들을 가져다 한데 녹이면서 추론할 줄 모르는 인식 감감꽈 어디든 날뛰고 다니는 열망도 집어넣었다. 그리하려 어쩔 수 없이 언젠가는 죽고 마는 영혼이 만들어졌다.

- 플라톤 <티마이오스> 중


어쩔 수 없이 갖게 된 감정이란 '악', 저 문장만 봐도 고대 그리스인들의 고뇌와 절망이 느껴져서 어느 시대나 사람 사는 게 다 똑같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감정을 완벽히 제어한다면 불멸의 영혼이 완성될 터이지만, 결국 이 세상에 죽지 않은 존재란 없었고 앞으로도 (어쩌면) 없을테니, 그것은 영원한 미개척지로 남을 것이다.


<바른 마음> 은 뒤이어 토머스 제퍼슨의 소위 '공동통치론' 을 내세운다. 이성과 감정이 머리와 가슴의 대변자이자 몸의 공동통치자로 기능하며, 그 균형을 맞춰 가는 것이라고. 토머스 제퍼슨이 유부녀와의 뜨거운 사랑을 했다는 건 처음 알았는데 ㅋㅋㅋㅋ 그는 소위 '도덕' 에 어긋나는 유부녀와의 사랑을 이런 식으로 애써 정당화하고, 또 애써 정리하고자 했던 것 같다.


그러면서 도덕과 감정, 합리성의 관계를 규명하고자 하는 시도들은 계속됐다고 한다. 80년대에는 플라톤의 논거처럼 (여성인권에 대한 의견은 상당히 다를 테지만) 도덕의 기원을 고도로 합리적인 사고 속에서 찾는 것이 대세였다 한다. (PC함이 곧 지적수준을 입증하는 것이다- 라는 그 당시의 흐름은 지금도 어느정도 적용되고 있는 것 같긴 하다. 이 편이나 저 편이나. )


그러나 안토니오 다마지오의 뇌 손상 환자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도덕과 합리성은 결국 '감정' 으로부터 기인한다는 결과를 내놓았다. 감정을 좌우하는 뇌 부분인 vmPFC가 손상된 환자들은 IQ에도 문제가 없고, 도덕적 추론 능력에도 문제가 없었으나 삶에서 중요한 결정을 내리고 인간 관계를 맺는 데에 많은 문제가 생긴 것이었다.

플라톤의 말대로 이성이 감정의 방해를 받지 않고 제 스스로 서게 되었으나 결과는 예상과 달랐고, 이대로라면 제퍼슨의 말대로 머리가 대변하는 합리성의 세계를 잘 살아내야 하는 것이 맞는데, 그것도 역시 그렇지 못했다. 결국 감정이 중요하다는 당혹스러운 결과가 도출되고...그 뒤에도 이를 입증하는 실험 결과들이 이어지는 것을 보면서 이 부분에서 알 수 없는 약간의 패배감(?) 을 맛봤다. "음하하하, 결국 넌 나 없이 살 수 없지?" 란 감정의 말이 들리는 듯 했다.


사회를 살아가다 보면 얼굴에 치미는 화를 애써 이성으로 잠재워야 할 때도 있고,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뒤로 한 채로 컴퓨터 화면 위에는 무미건조한 텍스트를 써내려가야 할 때도 자주 있다. 서양의 감정을 배제한 합리주의가 아주 오랜 시간 이 세상에 지속되었기 때문일까, "감정적이다" 라는 말은 부정적인 평가로, "이성적이다" 라는 말은 긍정적인 평가로 판단된다. 누가 그랬지, 공감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면서 이에 대한 개선책조차 찾지 않으려는 사람에게는 "공감 능력도 지능이다." 라는 말을 하라고. 굉장히 아이러니한 말이지만 우리에겐 늘 '머리', '이성' 이 강조되어왔다. 정치/사회적인 논점을 두고 둘로 갈라져 싸울 때에도 서로를 모욕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상대의 '지능과 합리성'을 운운하는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우리의 '합리적 삶'을 추동하는 것이 진정 이성이 아닌 감정이고, 나와 내가 바라보는 '옳음' 을 규정하는 것도 감정이라면, 사람들의 감정은 어떻게 생겨나 발달해가고 어떤 식으로 추동되며, 때로는 경도당하는 것일까 더 많이 궁금해졌다. 대개의 인간은 엇비슷한 감정 상태를 갖고 태어날 텐데, 난 어떤 감정 상태를 갖게 되어 낙태죄 완전 폐지와 차별금지법 통과를 외치는 크리스천이자, 때로는 시장 논리를 외치는 스타트업 사람 (이미 여기까지 썼는데 인지부조화 가득ㅋㅋㅋㅋ)이 되었나... 풀리지 않는 의문을 하나씩 풀기 위해 지금부터라도 더 읽어봐야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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