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후원처의 대부분은 뉴스나 영화를 보고 끓어오르는 분노를 못 이겨 '홧김에' 후원을 시작했고,
어떤 책들은 (예를 들면 이경미 감독의 <잘돼가? 무엇이든>) 500ml 맥주를 두 입에 털어넣고 홧김에 사서 홧김에 다 읽었고,
스시우미도 감당할 수 없을만큼 힘들었던 날에 '홧김에' 예약을 했고 오늘 다녀왔다.
노쇼 없었고 다 찼다. 간판도 없고 상가 구조가 꽤나 미로같아서 좀 헤맸다.
오마카세가 처음이라 모든 기물이 다 낯설었다. 오늘은
오마카세가 처음이라 모든 기물이 다 낯설었다. 오늘은 밥이 좀 늦게 되었다고 처음 자리 앉아서 츠마미를 기다리기까지의 시간이 좀 걸렸다. 그동안 아는 사람 없이 혼자 온 나는 애꿎은 녹차만 들이켰당.
처음으로 나온 차완무시(계란찜).
콩이랑 튀긴 대파, 새우가 들어갔다. 국물이 진해서 가볍게 잘 먹을만 했다.
앙소스를 끼얹은 광어와 도미 튀김. 붉은 것은 무에 고춧가루 섞은 것이다. 뒤에 있는 건 튀김 다 먹고 입가심 할 수 있는 꽈리고추.
츠마미 끝나고 니기리 시작.
첫 점은 참돔이었다. 네타 밑에 깔린건 지금보니 파인가.. 여튼 파를 굉장히 고명으로 많이 쓰시더라.
두번째는 광어. 사람들은 보자마자 어떤 부위인지 다 맞추던데 나는 아직 못하겠다. 물어볼걸. 근데 셰프님도 나도 마스크를 쓰니까 말이 잘 안들려서 서로 몇번씩 물어보는 사태가 벌어졌다 ㅋㅋㅋ 그래서 방어랑 헷갈림..
짚불에 훈연한 삼치. 집에서 구워먹는 일반 삼치보다 큰 대삼치로 회를 뜨셨다고 한다. 비리지 않고 고소하고 녹진하니 좋았다.
(진짜) 방어 ㅋㅋㅋ 사실 어제 부모님이랑 방어를 먹었는데 그 방어보다 맛있었다. 뭔가 상큼한 맛도 살짝 도는게 뭔가를 하신 것 같았는데 그게 뭔지는 알 수 없었다.
중간에 나온 미소시루. 생선뼈로 만들었다고만 하시던데 나중에 다른 분들 블로그 포스팅을 찾아보니 도미뼈라고 한다.
유자 제스트를 올린 연어알. 접시에 약간 흔적이 남긴 했는데 셰프님이 엄청 열심히 접시 다 닦아 주셨다.
네기토로. 대파랑 참치살을 섞은 것이다. 큰 임팩트는 없었지만 나쁘지 않았다.
새끼참치(메지마구로). 일반 업장에서 쓰는 참치가 60~120kg정도 된다면, 이 친구들은 5~6kg정도라고. 겨울이라 물이 올라 맛있다고 하셨다. 참치의 지방 잔뜩 오른 맛은 덜하고, 산뜻한 맛이 났다.
아카미즈케. (참치속살간장절임) 후하게 두 점씩. 그렇게 짜지 않아서 좋았다.
사바보우즈시(고등어봉초밥). 사실 이 전에 안키모(아구간)을 김에 싸서 주셨는데 손으로 냅다 받아먹느라 못 찍었다. 외갓집에서 아구찜할때 먹어본 것 빼곤 처음이었는데, 굉장히 녹진하고 부드러운 맛이 크림처럼 입안을 꽉 채우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김 때문에 풍미가 가리웠던 점은 좀 아쉬웠음... 여튼 안키모 말고 고등어봉초밥은 탑이었다. 진!짜! 맛있음. 숙성을 했는지 부드럽진 않고 굉장한 탄력이 느껴졌는데 그래도 살살 녹는다.
아나고가 나오면 거의 끝나간단 얘기라던데.. 여튼 아나고(바다장어) 는 식감이나 첫 맛이 썩 내 취향은 아니었다. 찐 것 같았는데 나는 구이나 튀김이 더 잘 맞는듯 ㅠㅠ 흑흑
후토마키. 다른 곳들보단 속재료가 약간 빈약하다. 그래도 가볍게 먹기엔 나쁘지 않았다. 흰살 생선 구운게 기분좋게 씹혀서 괜찮았던.
교꾸(계란구이) 꽤 달달했다. 식사보다는 디저트 느낌처럼 먹었다.
대망의 마지막 배 셔벗. 탱크보이 맛 날줄 알았는데(ㅋㅋㅋㅋ) 배 향이나 식감이 고급져서 더 먹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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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반적으로 첫 오마카세 경험으론 나쁘지 않았다.
그동안 다른 분들의 리뷰로만 보던 스시야를 직접 경험해보는 것도 좋았고, 평소 잘 먹던 마트나 배달 초밥과는 달리 만든 시점에 바로 먹고, 재료도 좋으니 맛이 꽉 차는 느낌도 좋았다.
스시우미는 청담 스시시미즈의 세컨 브랜드인데, 시미즈는 안 가봤지만 이 계열이 원래 샤리(밥) 간이 세다고 한다. 양도 많고. 그래서 밥의 존재감이 좀 센 편이다. 배도 일찍 불러오는 편.
(그래서인지 밥 양 조절해주신다는 말씀을 자주 하신다)
안 그래도 다 끝나고 셰프님이 간은 괜찮았냐고 물어보시던데, 이미 사전 정보를 알고 오기도 했고 네타와의 밸런스가 깨진다는 느낌은 아니라서 내 입맛엔 괜찮았다고 말씀드렸다.
여긴 참고로 생맥주가 없다. 옆에서들 맥주며 콜라며 시켜 드시길래 고민하다 안 마셨는데 생맥주가 있었다면 유혹에 굴복했을지도 모르겠다.
오마카세를 더 다녀봐야 이게 어땠고 저게 어땠고 평을 더 해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오늘은 어리버리하게 주시는 대로 열심히 집어먹느라 정신 없이 끝난 것 같아서 아쉬웠다. 언젠가 좀 더 여유있는 마음으로 먹게 되면 좋겠다. 하지만 이런 경험들을 늘 새롭게 받아들일 수 있다면 더 좋겠다. 문득 이런게 우스워질 나이가 되면 좀 슬플 것 같아서.
여튼 전반적으로 나쁘지 않았다.
평점 3.5/5 정도?
담번엔 디너도 꼭 먹으러 와보라고 하셔서 디너도 언젠간 먹으러 가보려 한다. 그땐 혼자 말고 둘이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