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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이올렛 Jul 10. 2022

어느 부서로 배정받았니?

어떤 질문의 저의


인사팀 직원과 희망부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휴직할 땐 "퇴사같은 휴직이구만!"이라는 소리를 들어가며 과감한 결단을 내렸고, 중간엔 정말로 퇴사를 감행할 수 있겠다는 확신도 가졌었지만 어느덧 복귀 시점이 되자 현실적인 부분이 복직으로 나를 이끌었다. 그리고 내가 어느 자리에 있든 새롭게 가지게 된 내가 좋아하는 정체성을 가진 자아로 살겠다고 동시에 굳게 다짐해본다.



희망부서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서도 최대한 소상하게 이야기했다. 그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도 많은 준비를 했다. 책 준비를 하면서 편집자와 전화 통화를 하기만 해도 그날 하루는 너무 기력을 많이 소진하는 느낌이라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한참을 자고 일어나야 하거나 제대로 말하지 못한 것 같아서 끙끙 앓던 초창기 시절도 있었다. 인사팀 직원과 통화를 하고도 어느 정도는 비슷했다. 최대한 진솔하게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이야기를 했고 이제 부서 배치라는 결과만을 기다리고 있다.



직장인의 삶은 이렇게 수동적이다. 한 번의 결정으로 나는 또 몇 년은 그 상황에 잘 적응해나가야 할 것이다. 최대한 담담한 마음을 가져보려고 더욱 안정적으로 살아간다. 그러던 중 아버지께 카톡이 왔다.



"부서 배치 받았니?"

"아직이요. 기다리고 있어요."

"원하는 부서에 배치받아야 할텐데."

"결과가 나오면 바로 말씀드릴게요."



입사한  시간이 너무나 많이 흘러서 이젠 '조직에 적응하는 것이 힘들다.' 라고 말하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지지만, 이젠  감정에 대해 적어도 내가 꾸지람을 주는 일은 그만하려고 한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한 과정에 있다. 지금 하는 일도 모두 도움이   생각을 가지는 중이다.



아버지는 평생을 한 직장에 몸 바치셨다. 내가 이제 17년차 경력을 가지고도 여러 고민을 안고 사는데, 아버지는 그의 두 배 보다도 많은 44년을 일하며 사셨다. 내가 하는 많은 고민이 아버지께는 그렇게 크게 보이지 않는가 싶기도 하다. 하지만 아버지는 나의 고민을 가볍게 넘기지 않으셨다. 내가 내 방의 책상에서 이렇게도 적고 저렇게도 적으며 희망부서에 대해 골몰하는 사이, 아버지도 딸이 원하는 부서에 잘 배치되길 간절히 바라고 계셨나보다. 그걸 신경쓰고 계시는줄도 몰랐는데 아버지의 카톡 질문을 받고 팽팽한 긴장감이 탁 풀리는 느낌을 받았다.



내 가장 중요한 문제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 이 세상에 나 말고 한 명 더 있구나 하는 생각은 내게 큰 힘이 된다. 어릴 땐 아버지의 그런 질문이 기분 나빴다. 내가 어차피 잘 알아서 할 건데 왜 자꾸 물어보나 싶었다. 그냥 내버려뒀으면 좋겠고 차라리 몰랐으면 좋겠다고 여길 때도 있었다. 그런데 내가 자식을 키워보니 어쩌면 내 일보다도 더 애가 쓰이는 것이 자식 일이라는 걸 알아가는 중이다. 얼마나 애가 쓰이는지 모른다. 하지만 절대로 티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아이들이 모두 잠든 까만 밤에 남편과 둘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눈다. 학교에서 있었던 모든 일을 소상하게 이야기하는 첫째, 요새 인기 팡팡 올라가고 있다는 둘째의 이야기를 내가 들은 대로 전한다. 그 대화를 나누면서 나와 남편은 우리가 부모라는 사실을 각인한다. 그렇게 우리 인생을 열심히 살고 있지만 동시에 자식의 인생에도 그 못지 않은 애정과 깊은 관심을 가지며 살아간다.




그에 반해 어떤 질문은 받고나서 마음이 씁쓸해지는 때도 있다. 너 얼마만큼이나 했니? 그래서 결과가 어땠는데? 어쩌면 특별할 것 없는 질문일지도 모르지만 대답을 하다보면 이상하게 내가 참 부실하기 그지없는 사람이 되는 것 같은 때도 있다. 아마도 내가 숨기고 싶은 부분에 대한 질문이거나, 컴플렉스라고 여기던 것에 대한 물음에 내가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일테다.



하지만 점점 배워간다. 세상에 있는 거의 대부분의 질문에는 악의보다 선의가 더 진하다는 것을. 나도 관심있고 좋아하는 사람에게 마음을 담아 질문하는 날이 더 많다. 궁금하다는 건 좋아한다는 뜻이다. 그렇지 않으면 내 시간도, 내 마음도 주고싶지 않다. 궁금증 자체가 피어오르지 않는다. 어릴 때 아버지의 소상한 질문에 제대로 답을 하지 못했고, 그런 질문들이 불편하다고 여겨졌던 것을 마침내 극복했다. 이젠 고마움이 크다. 그러니 지금 일을 하면서 만나거나, 사회생활을 하면서 알게 된 사람들이 내게 던지는 어떤 뾰족한 질문에도 이제는 시간을 갖고 둥그런 마음을 먹을 수도 있을 것이다.



늘 옹송그려서 조금도 흠이 보이지 않게 살지는 않으련다. 대답하다보면 안해도 될 말도 딸려나오고, 모양새가 영 허술해서 참한 모습에서 벗어날 수도 있다. 걱정말자. 나의 부족한 면모가 혹시 질문과 대답 사이에서 흘러나올까봐 걱정말고, 내가 따뜻한 마음으로 아이에게 오늘 학교 생활이 어땠는지 묻는 것처럼, 살아가며 만나는 사람들에게 그와 비슷한 온기를 품은 질문을 해보자. 그리고 소탈하게 답하자.



뭐가 그렇게 두려운게 많았을까 싶다. 회사에 다시 돌아가려니 걱정이 새록새록 피어오른다. 하지만 겁내지 않으려고 한다. 그러기엔 내가 너무 많은 것을 경험했고, 많은 깨달음을 가지고 있다. 또박또박 뚜벅뚜벅 담담히 한 걸음씩 한 글자씩 연결하는 내 삶으로 굳세게 당차게 살아가자. 아버지의 따뜻한 카톡 하나에도 마음에 온기가 꽉 찬다. 나도 자식을 그렇게 키우고 싶다. 질문 하나에 사랑을 몇 배로 담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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