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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이올렛 Jul 09. 2022

먼저 다가가 인사하는 사람으로 변하는 엄마들

아이 친구 엄마들과 잘 지내는 방법

아이를 낳으면 새로운 인간관계가 시작된다. 바로 아이를 중심으로 새롭게 알게 되는 사람들과의 만남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아이를 낳고 꼬박 1년을 아이와 나, 단둘이 집에서 지내다보면 어른들과 대화하는 법을 잊을만큼 어린이 지향 어른이 되어버린다. 남편과 짧게 나누는 밤의 대화로는 채워지지 않는, 마음을 헤아리는 수다가 필요하다.



그렇다고 해서 어린이집에서 만나는 모든 엄마들과 오랜 친구처럼 갑자기 절절한 관계가 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같은 반 엄마들이 모여있는 단톡방에서는 날씨에 따라 오늘 아이 옷을 뭘 입혀서 갈지, 선생님에 대한 불만을 어떻게 토로해야 할지와 같은 나와 거리가 먼 대화가 오고갔다. 수다를 떨려고 해도 인생관, 교육관이 어느 정도 일치해야 거기에서 오는 듬직한 믿음이 생기는데 무작정 맞출 순 없다.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 일하던 엄마들은 아껴두고 남겨두었던 육아휴직을 사용하곤 한다. 12시 전후로 끝나는 1학년 아이를 데리러 학교 후문에 가보면 엄마들은 단정한 차림새로 목을 빼고 아이를 찾는다. 병아리떼처럼 선생님 뒤에 붙어서 따라오는 아이를 보면 저절로 웃음이 난다. 그러면 그 참새같은 아이들은 모두 어미를 찾아간다. 그러다보면 알음알음 서로 알게되는 엄마들이 생긴다.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서로 친해지고 싶어하는 엄마들 대화의 문이 본격적으로 열리는 것이다. 그것도 여의치 않을땐 연락처를 주고 받은 다음 카페에서 만남이 이뤄지기도 한다. 모두 우리 아이 예쁘고 곱게 잘 키우고 싶은 마음은 똑같고, 엄마 혼자의 힘으론 때때로 부족함을 느끼는 때가 있으니 서로 도와주며 아이들 모두를 잘 키우는데에 도움을 주고 받고자 하는 마음이 크다. 그래서 만남도 훈훈하고, 다정하다.




주말엔 주로 아이들을 데리고 동네 도서관으로 향한다. 책 몇 권을 빌려서 바로 옆에 있는 공원으로 간다. 벤치에 앉아서 나는 빌려온 책을 읽고 아이들은 꼭 강아지처럼 나비나 잠자리를 쫓아서 잔디밭을 정신없이 달린다. 책에 푹 빠져서 읽는데 누가 공손하게 인사를 해온다. 누굴까? 얼른 마스크를 챙겨 쓰고 가까이 다가가보니 초등 2학년 아들의 단짝친구와 아이의 엄마다.



'건희'는 작년 하반기에 전학을 와서 우리 준이가 처음 생긴 단짝 친구라고 했다. 그 말씀을 하시며 고맙다고 하시는 거다. 나는 아이들의 학교 생활을 뒤에서 흐뭇하게 바라보며 늘 하는 이야기를 듣고, 응원하고 있는지라 아이가 제일 친하게 지내는 친구가 있다는 이야기를 하면 그저 귀엽고 좋았다. 꼭 나와 같은 마음을 건희 엄마도 느끼셨나보다. 내가 책에 빠져 있었으니 그냥 지나쳐도 이상하지 않았을 장면이었는데 가까이 다가와서 먼저 살갑게 말 걸어주시니 감사한 마음이 컸다.



헤어지고 돌아가는데에도 건희에게 공손히 예쁘게 인사하자며 아이를 다독이신다. 그 모습에선 어른들께 눈 마주치고 인사하는 것이 힘들었던 어린시절의 내모습도 겹쳐보인다. 그리고 몇 번이고 꾸벅 인사하고 돌아가는 건희 엄마의 모습에선 내가 보인다. 나도 우리 아이가 친구 이야기를 하면 어떤 땐 편안하게 듣지만 어떤 땐 속상한 상황은 없었나 노심초사 하는 때도 있다.



그렇게 아이를 키우다보면 우리 아이 좀 잘 부탁드린다는 말도 하게 되고, 우리 준이, 우리 서랑 사이좋게 지내서 고맙다는 말도 꼬마 친구들에게 하게 된다. 나는 못해본 특별한 경험도 아이에게는 시켜주고 싶고 나는 못 누려본 혜택도 아이에게는 누려보게끔 해주고 싶어진다. 그게 자식가진 부모의 똑같은 심정이다. 그리고 그 심정은 자세히 설명하지 않아도 누가 말하는 모습을 볼 때, 돌아서는 뒷 모습을 볼 때에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아이들에겐 내가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을 주고 싶은 마음은 똑같다. 그렇게 아이를 낳기 전에 가지고 있던 온갖 서툴고 부족했던 면을 아이 낳고나서 아이를 보며 그 안에 깃든 내 모습을 발견하고 치가 떨리게 부끄러워도 해보고, 나보다 훨씬 잘해내는 아이를 보며 자랑스러워도 하며, 나를 꼭 닮아가는 아이 앞에서 결연한 다짐도 하는 것이 부모고, 어른이다. 그 위대한 과정을 매일 겪어나가는 이 세상의 모든 엄마들과 깊은 연대감을 느낀다. 그러니 아이 친구 엄마라며 생판 모르는 나에게 그토록 다정하게 건네주시는 인사를 나는 더욱 마음깊이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 똑같이 꾸벅 절을 하듯 인사한다. 인사하는 두 엄마를 보며 두 아이의 우정이 더 깊어지길 바라며, 엄마도 그러면서 공손함과 예의를 배워나간다. 고마워 아이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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