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어린 시절

상처에 아파하는 나에게 스스로 연고 발라주기

by 바이올렛



엄마의

상처


아이를 키우다 보면 나는 분명 아이를 쳐다보고 있는데 자꾸만 거기에서 내 어린 시절이 투영되는 때가 있다. 그 어린 시절의 기억 중에는 곱게 꺼내서 소중하게 대하며 보고 또 보고 싶은 게 있는가 하면, 전혀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내 속을 쓰리게 만드는 못난 기억들도 같이 고구마 줄기처럼 줄줄이 딸려 나오기도 한다.


그렇게 나의 어린 시절은 아이를 키우며 한 번 더 나에게 찾아와서, 내가 진짜 어른이 될 배경을 만들어준다. 그리고, 내가 아파하던 그 실체를 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 그렇게 나는 어린 시절의 ‘내’가 되기도 하고, 아이 둘 엄마인 지금의 ‘내’가 되기도 한다. 그 둘은 때때로 정신없이 뒤섞이고, 눈치채지 못할 속도로 20년을 훌쩍 뛰어넘어 이쪽에서 저쪽으로 빠르게 옮겨가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나는 내가 두려워하던 것, 지워버리고 싶은 기억을 어린 시절의 미성숙했던 시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아이 둘을 키우면서 얻은 성숙하고 깊어진 지금의 내 눈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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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용기


아이를 키우고 정신을 가다듬어보니, 어느덧 삼십 대의 끝자락에 와 있다. 외형적으로는 어른이 되었지만, 이따금 상처로 얼룩진 그늘에서 아직 떨고 있는 어린 내가 되기도 한다. 그럴 때면 털이 잔뜩 곤두선 고슴도치가 된 기분이다. 나를 지키려고 더 내 가시를 바짝 세워서 그 누구도 나를 쓰다듬지도, 안아주지도 못하게 더욱 긴장을 늦추지 않는다.


이렇게 마음이 미워지는 날은, 정작 가슴 한가운데에 딱딱한 아픔은 애써 외면한 채, 내 아픔을 가릴 수 있는 다른 핑곗거리를 찾기 바쁘다. 그런 날에는 말없이 숲을 걷는다. 나는 그 날을 기억한다. 새벽의 축축한 공기와 어스름한 하늘의 빛, 마치 나를 꾸짖는 듯한 새 소리, 어두운 녹색의 이파리들. 나는 걷고 또 걸었다. 그렇게 숲 걷기는 나를 조금씩 내가 있어야 할 편안한 마음의 자리로 안내했다.


그건 나의 잘못이 아니었어. 그리고 그 아픔을 나 자신이 어떻게 받아들이냐는 순전히 자신의 선택이야. 그것을 끌어안고 웅크리고 울든, 혹은 그 모든 아픔, 일체의 행위들을 다 인정하고 다시 일어서기로 마음먹든, 내가 선택한 대로 내 마음가짐을 바꿔나갈 수 있는 거야.


나 자신에게 밝은 빛이 드는 행복의 길을 선물하고 싶다면, 숲을 걸음으로써 내가 있어야 할 자리를 찾고, 그 자리에서 열정적으로 살자.”


나는 매일의 숲에서 내 나약한 점들을 또렷하게 인식할 수 있었고, 그 과정에서 내 마음이 어디로 가는 것이 편안한지 끊임없이 길을 묻고, 답하며, 마침내 찾을 수 있었다. 이런 시간을 통해 나의 취약한 점은 물론, 내가 좋아하고 잘 하는 것들로까지 생각의 폭을 넓혀갈 수 있었다.


숲에서의 시간은 그토록 만나고 싶었던 내 마음 한가운데로 나를 빠르게 데리고 가 주었다. 항상 바쁘다거나 마음의 여유가 없다는 핑계로 외면했던 내 마음은 어쩌면 풀어야 할 숙제를 하지 않은 것처럼 아픔이라는 한 뭉치의 털실을 그냥 꼭꼭 뭉쳐서 깊은 곳에 숨기고만 있었는지 모른다.






그런데 이제는 그것을 풀 시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십 대, 이십 대, 삼십 대의 끝자락에 와보니 꼭꼭 숨겨둔 그 털실 뭉치가 사실은 어디 간 것도 아니고, 없어진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종종 발견한다. 특히 그 털실 뭉치는 내가 힘들 때 자기도 한 몫 거들어보겠다고 불쑥불쑥 튀어나온 경험이 몇 번 있다.

아마 내가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아니었다면, 어쩌면 나는 그 털실 뭉치를 조금 더 늦게 풀어야겠다고 마음먹거나 아니면, 아예 내 한평생 사는 내내 절대 열지 않겠다고 굳게 마음먹고 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엄마가 되어보니 그게 그렇지가 않더라. 엄마는 두 아이를 대할 때, 마음의 티끌이 없어야겠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참 희한한 일은, 내 가슴 속에 응어리가 있거나 밖에서 속상한 일이 있어서 기분이 안 좋을 때는 가정에서 가장 약하고 보호받아야 할 아이들에게 미운 눈빛으로, 미운 말로 나쁜 영향을 미치는 나 자신을 보았다.


아이들은 아무 죄가 없다. 작정하고 엄마를 괴롭혀야겠다거나, 엄마를 불편하게 만들어야겠다고 몹쓸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저 엄마가 너무 좋고, 오늘 하루 어린이집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엄마 만나자마자 다 풀어놓고 싶을 뿐이다. 오늘 만들었던 아이들만 해석할 수 있는 예술작품들도 엄마한테 제일 먼저 보여주고 싶을 뿐이다.

그런 순수한 두 영혼 앞에서 나는 솔직해지고 싶다. 그래서 내 마음속 아픔이나 풀지 못한 섭섭함, 안타까움 등 감정의 잔재들을 아이들이 더 크기 전에 다 꺼내서 하나씩 들여다보며 마음을 깨끗이 하고 싶다는 용기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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