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에서 찾은 희망의 씨앗
아름다운 섬, 영종도에 사는 것은 참 행운이다. 영종도에 사는 장점 중에 손꼽을 수 있는 것은 공항이 가까이 있어서, 여행을 좋아하는 나에겐 출발하는 길이 간소하다는 큰 장점이 있다. 또 하나, 내가 영종도에 사는 것에 감사하는 이유는 바로 ‘세계평화의 숲’으로 통하는 길이 우리 집 바로 옆이라는 사실이다. 나는 숲을 알기 전과 숲을 알고 난 후의 삶이 너무나 달라졌다.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함께 나누고 싶다.
우리 집은 영종도 공항신도시의 남쪽 끝에 있다. 그 덕분에 공항신도시를 엄마처럼 포근하게 감싸고 있는 ‘세계평화의 숲’ 끝자락이 우리 집 거실에 앉아서도 보인다. 숲은 나에게 손짓 한다.
“어서 와. 숲길 한 번 걸어볼래? 진짜 좋아.”
그래도 내가 숲으로 향하지 않으면, 숲은 나에게 고라니를 보낸다. 내 집 거실에서 창밖으로 보이는 고라니를 보았을 때의 기분이란? 아이들과 나는 얼른 냉장고 속의 배춧잎을 뜯어서, 고라니를 향해 흔들었지만 고라니는 놀라서 달아난 뒤였다. 그 겨울, 고라니는 우리 집 앞에 두 번을 찾아왔다.
고라니의 방문에도 나는 숲으로 가봐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계절이 바뀌어 여름이 된 어느 날, 나는 숲에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파리하게 시든 내 일상이 숲을 통해 다시 생기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한낱 희망을 품고 숲으로 향했다. 그렇게 시작된 ‘세계평화의 숲’과의 인연은 오늘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그 날도 평소와 다름없이 새벽에 눈을 뜨자마자 나는 숲으로 나아갔다. 숲은 아무런 말이 없다. 대신 새들이 노래할 뿐이다. 새벽 6시에 누가 숲에 있을까? 아무도 없어서 너무 무섭지 않을까 염려했던 나의 걱정이 무색하게도 하루를 숲에서 시작하는 사람들이 이미 있었다.
숲은 늘 그 자리에서 변화가 없는 듯 보인다. 나도 처음엔 그런 줄 알았다. 하지만 내가 매일 새벽 숲을 찾은 지 몇 달이 지나자 나는 놀라운 사실들을 발견했다.
숲을 찾는 시간에 따라 숲은 다른 옷을 입고 나를 기다리고 있다. 그 나무가 그 나무지 했다간 그 매력을 다 못 보고 올 수 있다. 주로 내가 찾는 새벽의 숲은 정말 포근하다. 마치 밤 사이 동물과 곤충 외에는 아무도 찾아와주지 않아서 그리웠다는 듯, 숲은 맑은 공기를 나에게 아낌없이 뿜어내준다. 그야말로 이슬을 잔뜩 머금은 이파리 하나하나가 그냥 다소곳이 그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나는 왠지 모를 안정감을 느낀다.
우리는 매일 그야말로 정신없이 살아간다. 가끔은 우리가 시간을 조율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우리를 끌고 다니며 산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런데 매일 새벽 숲을 찾기 시작하자, 숲이 “지금이 초여름의 첫째 날이야. 오늘은 초여름에 들어선 지 둘째 날이야.”, 혹은 “이제 모든 잎은 투명에 가까운 연두색에서, 점점 힘 있는 짙은 초록으로 바뀌는 중이란다”라며 차근히 설명해주는 느낌이다. 매일의 날씨가 다르듯 매일의 숲도 그 나무들과 곤충들, 새들의 움직임으로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숲이 이렇게 매일 다른 모습으로 그저 묵묵히 하루하루 더 푸르르게 자라고 있다는 걸 깨달았을 때, 나는 참 부끄러워졌다. 나는 사계절 내내 불평하는 사람이었다. 봄에는 미세먼지와 꽃가루에 불평했고, 여름엔 끈적이는 더위와 모기에, 가을엔 갑자기 허락도 없이 서늘해져 버린 아침저녁의 차가운 공기로 감기를 달고 사는 아이들에, 겨울엔 말도 못 하게 추운 날씨에. 이렇게 사계절을 계절 탓을 하며 불평을 하던 사람이었는데 그게 얼마나 부끄러운 마음가짐이었는지 숲에서 깨닫게 되었다.
사람들은 숲에 왜 오는 것일까? 특히 새벽 시간에 숲을 찾는 사람들은 숲이 좋아서 오는 순수한 사람들이다. 좋아하지 않는 장소에서 하루의 시작을 보내고픈 사람은 없다. 가끔 벤치에서는 숲을 찾은 할머니들의 인생 이야기도 들을 수가 있다. 속 썩이는 남편 이야기, 자신을 지극히 돌봐주는 막내딸 이야기 같은 가족 이야기를 맛깔나게 해주시는 할머니들의 이야기는 지금 삼십 대의 내가 어느 것에 가치를 두고 살아가야 하는지 진한 물음을 갖게 하기도 한다.
또 이따금 아이들과 이른 아침 찾는 숲에서는 아이들을 향해 따뜻한 시선과 미소를 보내주시는 분들이 참 많다. 요즘 세상에 천방지축 아이 둘을 데리고 다니면 눈총을 받지는 않을까, 다른 사람한테 피해를 주지는 않을까 늘 염려하며 더욱 긴장하기 마련인데, 숲은 다르다. 숲을 찾는 따뜻한 마음의 사람들은 아이들이 활기차게 움직일수록, 그 푸르른 생명력을 더 따뜻한 미소로 감싸준다. 아이들은 그 따스한 기운을 받고 더욱 긍정적이고 바른 아이로 자랄 거라 믿는다.
숲을 걷는다는 것은 나의 속도로 발걸음을 옮기고, 나의 시선으로 숲을 감상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나의 몸과 마음의 속도로 숲을 걷는 것은, 내가 하는 모든 것이 이미 그대로도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따뜻한 위로를 받는 기분이다. 세상은 가끔 한 사람의 인생을 두고, 속도가 너무 빠르다거나 느리다고 충고를 하지만, 실은 자기 인생을 걷는 자기 자신만이 그 속도와 방향을 아는 게 자연스러운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