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재능
매일 새벽 숲을 걷는 것 말고도 나의 하루를 채우는 것은 또 있다. 바로 책을 읽는 것이었다. 책과 친해지기까지는 마치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것처럼 적응의 시간이 필요하다.
도서관에 가서 읽고 싶은 책을 한가득 빌려와서, 책상에 잔뜩 쌓아두고 조금씩 읽어나갔다. 처음부터 책장이 쉽게 넘어가고 머릿속에 내용이 새겨졌던 것은 아니다. 내가 하루 중 독서를 위해 만들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있는지? 내가 하루에 읽을 수 있는 책의 양이 얼마나 되는지? 나는 어떤 분야의 책을 좋아하고, 어떤 류의 책이 나에게 울림을 주는지? 막연한 것 투성이였지만, 그냥 읽었다.
그렇게 읽던 중, 나에겐 마중물 같던 책을 만나고는 책이 재밌어졌다. 처음 나에게 책이 재미있고, 유익하다는 믿음을 준 것은 육아서였다. 아이를 키우면서 만나는 어린 시절의 나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른 채 표류하던 중에 육아서는 괜찮다고, 모든 엄마가 그런 마음을 가진 채 하루하루 성장해 가는 거라고 다독여 주었다.
책을 읽고 있는 건 나인데, 저자의 마음이 나에게 따스하게 전해지며, 내 아픔도 저자에게 가 닿아, 그 아픔의 농도가 희석되는 느낌이었다. 누군가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이런 아픔이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는 생각만으로도 나는 책장을 넘길 기운을 얻었다.
그렇게 나의 독서는 계속되었다. 직장에 다니던 중에는 주말에 몰아서 읽었다. 모든 책이 다 나를 향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도서관 서가에 꽂힌 책 중 나에게 위안이 되고 나의 마음속 호기심과 열정의 불을 환하게 밝혀줄 책들을 아주 게걸스럽게 읽어치우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휴직이 시작되고부터는 독서가 나의 직업이 되었다. 도서관이 문 여는 시간에 맞추어 미리 준비하고 있다가, 마음에 꼭 드는 자리에 둥지를 틀고 앉아, 독서대를 펴고 편안한 자세로 한 장씩 읽어나가는 책 읽기는 그 자체로 달콤하고 고소했다.
책장을 펴고, 저자가 오랜 시간 갈고 닦아 반질반질해진 경험의 열매를 나는 편안하게 앉아서 받아먹기만 하면 된다는 게 감사했다. 그렇게 나는 매일 종교인, 교수, 디자이너, 경영인, 여행자와 새로운 만남을 가질 수 있었다.
그 날도 나는 숲을 걸었다. 그 날은 평소보다 더 빠르게 숲길을 향해 한 걸음씩 발을 내디뎠다. 가끔 하늘로 시선을 돌리면, 나의 빠른 걸음만큼이나 경쾌한 느낌으로 투명함을 머금은 초록 잎이 산들거리고 있었다.
그때 아련한 기억이 떠올랐다. 국민학교 시절, 춘천의 소양강댐 아래에서 한 학년에 한 개의 학급만 있던 작은 규모의 학교에 다녔다. 나는 힘차게 걸으면서도 그때 그 시절로 빠르게 옮겨가는 나의 생각으로 얼른 옮겨탔다.
춘천은 “호반의 도시”로 아름다운 호수가 늘 가까이 있었다. 그리고 그 호숫가에서는 각종 글쓰기, 그림 그리기 대회가 많았다. 작은 규모의 학교에 다녔기에 나에게도 학교 대표로 대회에 참가할 기회가 많이 주어졌고, 어린 마음에 대회에서 받은 상장과 선물이 너무 좋았던 기억도 생생하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위해 시간과 에너지를 쏟고 성취감도 맛보았다면, 그것은 나라는 사람을 지탱해주는 데에 아주 큰 힘을 가지게 한다.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자, 나는 한 번 더 용기를 낼 수 있었다. 그래, 나도 자연 속에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던 꿈 많던 어린 시절이 있었지? 그래 한 번 더 해보자. 할 수 있을 거야! 내가 빠르게 걷고 있어서였는지, 새로운 도전을 앞에 두고 두근거리던 심장의 박동이었는지 모를 설렘이 나를 감쌌다.
그리곤 그저 하루에 한 장씩 그려 나갔다. 내 책상, 내 차, 우리 집, 숲길, 여행길까지. 나의 시선이 닿는 곳은 언제든 내 그림의 소재가 될 수 있었다. 뭘 그려야 될지 고민하지 않아도 되었고, 스케치북과 펜 한 자루라는 단출한 준비물만으로도 그 시간을 충분히 누릴 수 있게 된 것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