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에 한 번, 직장 건강검진으로 온몸을 샅샅이 훑어보는 검사를 받는다. 이번엔 나의 심리에 대해서 그런 검사를 받아보았다. 태어나서 처음 해 본 경험이라서 몇 글자를 남겨두어야겠다.
정신건강의학과의 문틀을 넘는 일은 여전히 버겁다. 우리 동네에 딱 한 군데 밖에 없기 때문에 혹여나 아는 사람을 만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든다. 복직을 앞두고 예뻐지겠다며 찾아갔던 피부과, 아이들의 출생 후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다니고 있는 단골 소아과와 같은 층에 자리한 이 병원에 가려면 괜히 마음이 두근거린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사람이 있으면 병원에 바로 들어가지 않고 옆에 있는 화장실에 먼저 들어간다. 그렇게 들키고 싶지 않은 장소이다.
지금껏 몇 번 가본 적이 있지만 한 번도 병원 인테리어가 어떻게 되어있는지 자세히 본 적이 없다. 색깔 구성, 가구 배치, 마감자재 같은 것에 마음을 둘 여유가 없을 때마다 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번엔 심리를 종합적으로 검사해본다는 명목이었기에 미리 풀어가야 할 설문지 같은 것이 많았다. 시간을 내어 모두 체크했다. 워낙 상세한 질문들이어서 그것에 답하다가 이미 마음이 일렁거렸다.
예약된 시간에 선생님이 나를 불렀다. 평소에 뵙던 주치의가 아니라, 심리검사만 전문으로 하는 선생님이었다. 약 2시간 반 동안 나의 마음에 대해 다방면으로 관찰하는 실험대상이 된 기분이었다. 나에게 질문 몇 가지를 하지 않았지만 나는 이미 목에 뭐가 콱 막힌 것처럼 대답을 잘 못 할만한 상태가 되었다. 특히 '아이들' 이야기만 하면 나는 그 상태가 되었다. 그리고 곧 '죄책감'이라는 단어가 입에서 나왔다. 그러자 선생님은 '죄책감'은 다른 어떤 감정보다 힘이 세다고 했다. 희망이나 긍정 같은 것들을 압도해버릴만큼.
그리고 물이 종이에 베어나오듯, 감정도 그렇게 우리에게 베어나오는 것이므로 지나치게 죄책감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꼭 아이들에게 반듯한 본보기를 보여줘야 한다는 죄책감, 압박감, 책임감 속에서 살 필요는 없다고 했다. 이 말이 기억에 남는다. 그냥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찾아 때로는 무모하게 사는 것도 역시 본보기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자신도 좋은 조건의 직장을 퇴사했다고 덧붙였다.
다음은 한 10가지 정도의 서로 다른 검사를 했다.
- 그림을 보고 큐브 맞추기
- 집, 나무, 사람(남,여) 그리기
- 데칼코마니 보고 보이는 형상 말하기
- 숫자 기억했다가 말하기(순,역방향)
- 상식 테스트(허난설헌을 설명하지 못했다.)
- 제한된 시간내에 숫자와 기호 통합시키기
- 카드를 보고 도형을 따라 그린 후, 바로 기억나는 것만 다시 그리기
- 규칙이 있는 색깔 도형 찾기 : 규칙을 못 찾겠을 땐 아주 불안했다. (그렇게까지 불안해하는 내가 의아할 만큼)
- 나열된 단어를 보고 설명하기
- 서술형 수학문제를 암산해서 대답하기
검사는 빠르게 진행되었고, '웩슬러'라는 단어를 본 것 외엔 이 검사의 이름들이 무엇인지 나는 모른다.
마지막에 궁금한 것이 있냐는 질문에 이렇게 물었다.
"혹시 오늘 검사해보시고 대략적으로 제 상태가 어떤지 알 수 있을까요?"
"정식 검사 결과가 나오려면 1주일이 걸리는데, 우선 오늘 검사한 것을 토대로 말씀드리자면, '긴장도'가 상당히 높습니다. 정식 병명은 원장님과 이야기해보아야겠지만 관리가 필요해보입니다."
그 말을 듣고 검사결과 받는 날을 예약하고 병원을 나오는데 그제야 병원 입구에 화단처럼 예쁘게 꾸며놓은 공간이 있었다는 것을 발견했다.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오갔다는 것이 신기했다.
'내가 긴장하면서 살고 있었구나. 그것도 몰랐네. 자꾸 예민한 사람이라고 나를 몰아세우기만 했었구나.'
그리고 감기 기운이 있어 약을 먹고 잠들었다.
괜찮다고, 덮어놓고 지내던 내 마음을 들춰서 뭘 어떻게 하려는 것은 아니다. 이번 검사도 사실 취소할까 생각하다가 그냥 한 번 해보자고 가볍게 덤벼들었는데, 나도 모르던 내 상태를 자세히 알게 됐다. 다음주에 어떤 결과가 나올까? 일주일간 내 마음을 더 보듬어주며 살아야겠다. 이렇게 마음을 꾹꾹 누르고 살다가 감정을 느끼고, 표현하는 부분이 고장나는 건 아니겠지? 불안, 긴장, 걱정과 함께 사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