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응 장애 진단을 받고도 씩씩하게 사는 마음

by 바이올렛

10일전에 종합심리검사를 받고, 일주일이 흘러 다시 병원을 찾아 검사 결과를 들었다. 결과를 기다리는 일주일이 참 길었었다. 심각한 병에 걸렸을까봐, 마음이 도저히 다시 일어설 수 없는 상태가 되었을까봐 겁이 났다. 그래서 먹지 않고 가지고만 있던 약 알갱이들을 먹었고, 일주일을 가까스로 보내고 의사와 마주했다.


일주일간 나는 마음을 졸였으며, 사회적 가면을 쓰던 것을 집어치우고 우울하게 보냈노라고 이야기했다. 모니터를 내 쪽으로 돌려서 자세하게 설명해주었다. 병명은 '적응 장애'라고 했다. 굳이 진단서가 필요하다면 두어달은 써줄 수 있다고 했다. 병가휴직을 쓸 것이냐고 물었고, 그건 아니라고 했다.


일반적인 우울증 환자의 패턴과는 다르다고 했다. 환경이 바뀌어서,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적응의 장애 상태일 뿐이라고 했다. 쉬운 말로 풀이하자면 '부적응자'라는 말일 것이다. 속으로 그렇게 추측하며 설명을 들었다. 심각할 정도로 불안하고, 우울하고, 긴장 상태인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원래 그렇게 우울하고 마음에 병이 있는 사람은 아니라는 말에 안도했다.


의사는 나를 보고 '이상주의자'라고 덧붙였다. 꿈을 쫓는 것도 좋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 현실 또한 무조건 부정한다고 일이 해결되진 않는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보니 내가 얼마나 이상을 향해 그곳만을 바라보며 살아왔는지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현실이 미웠었는데 너무 그렇게 살면 안되겠다는 생각도 했다.


신기하게도 아이큐 검사도 포함되어 있었나보다. 나는 그것이 아이큐 검사인 줄도 모르고 있었는데 말이다. 나의 지능은 평균보다 높다고 했다. 하지만 시야가 좁은 편이라서 넓게 보는 사고는 갖추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목표한 것에 대해서 성과를 낼 줄은 알지만 일상의 대부분은 허술할 수 있다고 한다. 주변을 살뜰히 챙기는 눈은 좁다는 뜻으로 들었다.


또다시 긴장도를 낮추는 약을 받아들고 일주일 후에 찾아오라는 말을 듣고 병원문을 나섰다. 이제 병원에 들락거리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나의 정신상태에 대해 종합적인 검사를 하고 결과를 듣고나니 홀가분했다. 그리고 주말을 너무나 잘 보냈다. 토,일, 각각 식구들과 등산을 했고 오늘은 체력을 길러보겠다고 아이둘을 데리고 달리기를 하고 들어왔다. 더이상 남을 지나치게 의식하면서 행동거지를 조심해야겠다는 생각도 줄여보는 중이다. 조금 대충 살아보기도 하고, 또 남들처럼 직장생활의 꽃인 '승진'에 대해서도 생각해본다.


그러다보면 피식 웃음이 난다. 퇴사하겠다고 울먹거리던 사람이 승진을 신경쓴다는 것이 얼마나 덧없고 재미있는 상황인지 생각해본다. 나는 드디어 회사생활에 적응한 것일까? 영영 적응하지 못하는 '적응 장애'인 상태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반이고, 어서 적응해서 승진길에 올라서고 싶다는 생각이 반이다. 이렇게 결정을 못하는 것도 나의 특성이라고 의사가 이야기했었다.


결국 검사결과는 내가 이미 다 알고 있는 내용들이었다. 하지만 임상심리사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검증한 결과지를 받아들고나니 괜히 내가 지난 3개월간 걸어왔던 그 길이 얼마나 험난했는지 다시금 생각해보게 된다. 복직하자마자 꿈과 직장생활을 양립해보겠다고 겸업신청을 덜컥했고, 그것에서부터 모든 것이 꼬여서 나는 가시덤불 같은 시간을 보내왔던 참이다.


나에겐 꿈이 있었고, 그게 내 인생을 꽉 쥐고 흔들만큼 중요했다. 그런데 조금 느슨하게 두고보려고 한다. 나는 꿈 하나만 쫓기에는 애엄마이고, 직장인이며, 아내이고, 마흔 먹은 성인 여성이다. 흰 머리는 깜짝깜짝 놀랄만큼 늘어나고 있고, 온몸에서 성한 곳은 별로 없고 비실비실하기가 이루 말할 수가 없으며,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시간도 하루중 얼마 되지 않는다.


꿈은 꿈이고, 생활은 생활이라는 것을 잊지 말자. 점심 시간엔 <소설 쓰기의 모든 것>이라는 책을 붙들고 있었다. 3막을 구성하는 방법, 플롯이란 무엇인지, 이야기는 어떻게 전개해야 하는 지 같은 것들을 글로 배우고 있다. 읽긴 읽고 있지만 대부분이 기억 바깥으로 멀어져갈 뿐이다. 그래도 굳이 읽고 싶다. 놓지 않고 싶다.




아이들과 저녁에 숲길을 달렸다. 딸은 달리는 중간중간 '엄마, 사랑해요.'를 외쳤다. 이 늦은 밤, 엄마 혼자 운동하러 나가지 않고 남매를 데리고 함께 해줘서 고맙다는 표현일 것이다. 아들도 같은 마음이었을텐데 별달리 고마움을 표현하진 않았다. 그저 목에서 쌕쌕 소리가 날 만큼 열심히 뛰었다. 딸의 볼은 빨갛게 변했고 숨소리는 점점 커졌다. 걸쳤던 패딩점퍼를 둘 다 나에게 맡겼고, 나는 그 뒤를 말없이 뛰었다.


회사 후배가 추천해준 달리기 어플을 켜두고 우리 셋은 그렇게 뛰었다. 겨우 달리기를 시작한 첫 날이지만, 마음만은 커다랬다. 아이 둘과 이렇게 나이 들어도 서글픔은 없겠다는 생각도 잠시 했다. 굳이 내 꿈을 내세우지 않아도, 아이 둘의 어미로만 살아도 그리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까지도 해보았다.


오늘 만난 이전 팀의 팀장님께서 자식을 스카이 대학교에 보내는 것도, 명문 고등학교에 입학시키는 것도, 부모로서 큰 보람이라고 하셨다. 그 말을 듣고보니 초등학교 3학년부터 들어갈 수 있는 인근 대학교의 과학영재원 홈페이지를 들락거리는 내 모습이 겹쳐졌다. 그렇다. 나도 이런 쪽으로 욕심이 있는 것이다.


그렇게 잡고 싶은 몇 가지 욕망을 부여잡고 오늘도 나는 씩씩하게 살아간다. 내팽게쳐버리고 싶던 회사에서는 '승진'을 생각해보기도 하고, 건강하게만 자라길 바란다던 자식 교육에 대해선 '영재원' 홈페이지를 들락거리며 입학원서 날짜를 확인해보기도 하고, 여전히 마음 한 켠에서는 올해의 젊은 작가상 수상작품집을 열어보면서 '등단'의 꿈을 키워보기도 한다.


그 여러개의 욕망 사이에서 나는 '적응 장애' 진단을 받은 나약한 한 명의 인간일 뿐이다. 남편에게도, 부모에게도, 친구에게도, 동료에게도 기댈 수 없는 나만의 아픔, 좌절, 외로움의 지점에서 나는 토해내듯 글을 쓸 뿐이다. 이도저도 아닌 하루를 잘 살아냈다고, 너무 크게 좌절하지도 않았고, 오바한 것도 없이. 적당히 시간을 잘 흘려보냈다고 위로도 하고, 말없이 어깨도 쓰다듬듯, 하루를 마무리한다.


내일은 또 새로운 욕망이 싹틀 수도 있고, 얼마만큼 그것에 가까워지기 위해 노력하는 하루를 보낼 것이다. 그 과정에서 너무 나약하게 굴지 말자. 오늘 들었던 조언처럼 "뒤로 숨지 말자." 계속 쭉쭉 내 인생을 밀고 나가보자. 어느 곳에 멈춰서서 어떤 실수를 만들어낼 지라도, 이게 최선이라고. 지금 이 모습이 내가 만들어낼 수 있는 가장 멋진 모습이라고 생각하자.


오늘 도착한 겨울옷 몇 가지가 그런 내게 잘 어울렸으면 좋겠다. 아침에 마셨던 차가 마음에 들었었다. 그 차의 이름은 '윈터드림'이다. 이번 겨울엔 꿈 같은 일이 내게 많이 일어났으면 좋겠다. 그런 기대로 초겨울의 하루 하루를 씩씩하게 보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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