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김없이 봄이 오고 있다. 추위가 물러갔다고 방심한 사이 감기 기운이 찾아왔고, 화장실 배수구엔 작은 날파리가 등장했다. 날이 풀렸다는 신호다. 남매는 한 학년씩 올라갔고 신기할만큼 씩씩하게 돌봄교실, 늘품교실, 방과후교실, 새학년 새교실에 무사히 안착했다. 나만 잘 다니면 우리집은 ‘이상무’다.
새로운 부서로 온지도 7주째에 접어들었고 업무에 적응하느라 시간이 빠르게 지나가던 새내기 시절도 지나서 이제는 골치아픈 장기과제도 하나씩 생기고 있고 미해결 숙제도 쌓이고 있다. 그렇게 직장생활도 중요하고 급한 것을 쳐내며 하루를 살아내다보면 정확히 하루만큼 늙은 모습으로 퇴근하기를 반복하는 것으로 정착되고 있다. 한 달이 지나면 달력에 동그라미 하나씩을 크게 치는 맛으로 산다. 시간 잘 가는 것을 최고의 덕목으로 삼으며 사는, 나는 직장인이다.
직장에서 업무차 여러 사람들을 만나다보면 상대방의 말과 행동에 상처를 받을 때도 있다. 반대로 나의 무심한 행동에 상대가 소리없이 상처받을 수도 있다. 어릴 땐 내가 받은 상처를 곱씹는 것만으로도 퇴근후 밤시간이 꽉 찼는데 나이가 들어보니 내 나이듦과 함께 찾아오는 무례함이 상대를 불편케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조금씩 자리잡는다. 이게 나이든 자의 위기의식일까 깨달음일까?
이젠 이리 둘러보고 저리 둘러봐도 나보다 젊은 사람들 천지다. 미혼인 사람, 이제 갓 결혼을 한 사람, 아이를 가지려는 사람, 어린 자녀를 키우는 사람 등. 20~30대의 젊은 직원들을 보며 그들의 표정과 무언의 끄덕임 속에서 곧잘 과거의 나를 만난다. 나는 상사가 이런 말을 하면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었는데, 따위의 상상을 하면서 내 앞의 젊은 직원이 맑고 투명한 표정을 지으면 남몰래 나의 부덕함에 볼이 빨개지기도 한다.
이젠 흰머리가 나기 시작한 사십대의 내 볼이 빨개져도 - 마스크 덕분이기도 하겠지만 - 그 누구도 내가 가진 쑥스러움이나 겸언쩍어함에 대해서 관심이 없다. 나만 알아채고 나만 재빨리 수습할 뿐이다. 그러면서 꼰대짓은 절대로 하지 말자고 다짐한다.
파트너사의 업무 담당자가 하루 아침에 바뀌었다. 그와는 업무상 날을 세우고 있던 참이었고 우리 부서의 입장이 있어, 나는 악역을 맡아 그 업무를 단호하게 처리하던 참이었다. 그런데 새로운 담당자가 기존의 업무를 이어받아 처리하기 위해 불쑥 나타난 것이다. 이전 담당자는 마지막 인사 없이 자세한 인수인계없이 다른 근무지로 홀연히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내가 지고 있던 불편했던 감정, 팽팽했던 신경 같은 것이 툭 끊어져버렸다. 남은 몫은 모두 내차지이다.
업무상 회의에 참석하여 여러 사람들을 만나다보면 불편한 상황에서도 살아남기 위해 몇 가지 스킬을 익히게 된다.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 센 척 한다거나, 발언권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상대방의 말을 잘라버린다거나, 부서의 입장을 대변하기 위해 다소 굳은 얼굴로 상대를 대해야만 한다거나 하는 것 말이다. 이렇게 글을 쓰며 고고한 척 하는 나에게, 그런 상황은 나와 하나도 어울릴 것 같지 않아, 라고 생각하고 싶지만 한 살씩 먹을수록 어쩌면 못된 어른의 모습을 겹겹이 견고하게 뒤집어쓰고 있는건 아닌지 모르겠다.
내가 업무상 만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결국 우리 아이들이 대학 졸업 후 취직할 회사의 선배들이 될텐데 나는 좋은 어른의 모습을 하고 살아가고 있는걸까?
이런 한가한 고민이나 하고 있는 것을 보고 주위에선 나보고 ‘순수하다.’라고 표현하지만 그게 과연 칭찬일까, 욕일까, 안타까움일까, 탄식일까?
나는 근데 직장생활에서 이런게 너무 중요한 요소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끼리 얼굴 붉히고 싶지 않고 누구도 마음 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유토피아적 환상에 사로잡혀서 살고 있으니 하루도 무결한 날이 없어서 퇴근후 내 머릿속은 그리도 바쁘게 돌아가는가보다. 이젠 꽤 많이 잊었다고, 무뎌졌다고 생각해봐도 조용한 밤에 일기장을 펼치면 내가 하루동안 뱉어냈던 무리한 말들, 지나치게 단호했던 행동들이 모두 한 꾸러미에서 터져나오듯 책상 위에 쏟아진다. 그러면 그거 하나 하나를 매듭짓느라 또 그 밤은 바쁘고 피곤하다.
나도 그러고 싶지 않다고 할 말 시원시원하게 하고, 하고 나선 두 번 다시 뒤돌아볼 일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건 아마도 죽기전엔 불가능할 것 같다. 남에게 했던 말, 남에게 들었던 말 하나하나를 잊지 못하고 차근히 녹여내느라 꽤 많은 시간을 들이고 있다는건 나만 아는 비밀로 남겨두고, 초예민한 성정임에도 보통 사람인척하며 직장생활 하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
소설쓰기는 답보 상태다. 두 페이지를 써봤는데 몇 문장 더 쓴다고 해도 도저히 마무리 지을 수 있는 상태가 안될 것 같다. 다른 주제로, 다른 문체로 써야지 하면서 구상만 하기를 벌써 몇 주째다. 지난 주까지는 유명작가들의 등단작, 문학상 수상작 위주로 읽고 감상을 나누었는데 이번 주부터는 수강생들의 습작 소설을 발표하는 차례다. 도망치고 싶고 소설 안 써도 되는 삶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도 해봤다. 하지만 이미 내 손가락은 심화반 수강신청까지 추가로 마쳐둔 상태이고, 나는 또 운명에 내 삶을 맡기고 마감에 쫓기며 겨우겨우 도저히 편안하게 읽을 수 없는 어떤 글타래를 제출할 것 같다.
글을 쓰다보면 대부분 아련하게 미소지으며 쓰지만, 한 번씩 별 것도 아닌 문장을 적는데 울컥할 때가 있다. 소소히 내 상황을 적다가도 그렇고 도저히 잡을 수 없을 것 같은 희망찬 지점에 대해서 쓸 때도 그렇다. 지금은 나의 첫 소설을 완성한다, 라는 문장을 적으면 그런 기분이 들 것 같다. 눈물이 핑 돌고 갑자기 이 세계에서 저 세계로 날아갈 수도 있을 것 같은 느낌.
현실은 매일 똑같은 시간에 출퇴근하면서 회사일과 집안일에 치여서 사는 중이지만 그래도 내겐 자꾸 내 마음의 어떤 지점을 아프게 만들고 찡하게 만드는 비밀 구간이 있다. 그 비밀을 회사 사람들에겐 말하지 못했지만 우리 가족은 잘 알고 있고, 일상의 나는 자꾸 모른척하지만 내 안의 참 자아는 확실히 알고 있다. 명예롭게 퇴직할 수 있는 날짜는 박혀있고, 그것을 데드라인 삼아 향후 몇 년은 꼼짝없이 직장인의 자아로 살아야 한다.
너무 깊이 생각말고, 자꾸 버티니 못 버티니를 따져보지 말고 그냥 하루씩만 충실하게 살아보자. 하루는 의외로 간단하면서 기쁜 조각일 수 있고 한 사람이 무너지지 않고 살아낼 힘을 만들어낼 충분한 시간이 될 수 있다. 직장, 월급, 좋은 집으로의 이사, 아이들의 성장, 좋은 차 같은 것을 생각하며 꼬박꼬박 성실하게 일하고 그런 내 하루를 토닥토닥 쓰다듬어주자.
주방일로 손이 부르트고, 빨래와 청소로 두 번 부르터도 여전히 고운 내 손.
그 손끝에서 얼마나 솔직하고 다정한 글이 나오려고
지금 내 인생이 이렇게 구조적인 틀속에서 빼도 박도 못하게 자리잡은걸까?
한순간에 훨훨 날아
가고 싶은 곳에 도착할 수 있게
생각과 상상만큼은 자유롭게 가져야지.
그러면서 내 삶이 조금씩 조금씩
꿈에 그리던 방향을 닮아갈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