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초중반에 직장생활을 시작해서 이 개념을 익히는데에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다. 상호 대등한 계약이 체결되어 계약상대자간에 입장이 평등한 줄만 알고 일을 처리하려고 했었다. 내가 갑의 역할인지, 을의 역할인지 파악해야 된다는 생각을 잘 못했고 그런게 있다는 것도 몰랐다. 어떤 날은 상대 업체와 식사를 하다가 내가 전골 냄비의 국자를 휘휘 젓고 있자 나의 상사가 그걸 내려 놓으라고 했었다. 나는 나이가 가장 어려서 습관적으로 수저를 놓고 물을 뜨고 국자를 잡았던 것인데 그 자리에서 그 행동은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대접받는 자리였던 것이다.
그 반대의 경우 또한 차고 넘친다. 어느 기관에 가서는 회의 시간이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고 전국에서 담당자들이 모이는 회의인데 오후 시간으로 지정해주면 좋겠다고 얘기를 했다가 훗날 그럴만한 성격의 자리가 아니었다는 걸 알고는 얼굴이 화끈거렸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업무 상대자라고 해서 언제나 발언권이 주어지는 건 아니라는 걸 아주 늦게 후회하며 배워갔다.
지금 근무하고 있는 부서는 예전 부서들과 성격이 많이 다르다. 만나는 사람들이 아주 다양하다. 이번엔 참신한 계층사다리를 발견했고 내가 겪어보기 전에는 무의식중에 하던 나의 무례함이 얼마나 상대방을 아프게 했었을지 깨닫는 체험을 하고 돌아왔다. 업무상 만난 그는 자신만만했다. 열 명 가량의 사람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느지막히 나타난 그는 어떤 이유로 늦었노라며 아주 당당하게 등장했다. 신선했다. 머리를 조아리며 늦어서 죄송하다고 하는 장면을 그리고 있었던 나는 속으로 무안함을 느꼈다.
설상가상으로 업무 대화를 하는데에 은근한 반말을 사용했다. 순간 ‘아랫사람’이 된 기분을 느꼈다. 슬슬 모욕감이 느껴졌다. 상대방의 말을 자르거나, 큰소리로 말을 덮어버리는 상황이 연출되었다. 그의 무례함에 차츰 고개가 절레절레 저어졌고 입을 꾹 다물게 되었다.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이 비즈니스 매너를 장착하고 꾹 참고 있었지만 직위의 고하를 떠나서 모두가 불쾌감을 느끼고 있었다.
이처럼 내가 누군가에게 그런 취급을 당하고 나면 불쾌감에 목욕을 하고 몸이 축축하게 젖는 느낌을 받는다. 하지만 곧바로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나 또한 짧은 시간내에 박력있게 추진해야 되는 업무가 있을 땐 그것을 핑계로 남에게 무례하게 행동한 적이 있다. 내가 잘 모르는 내용이지만 그 사실을 꼭 감추고 회의를 주관해야 할 때 나는 나의 무식함이 들통나지 않도록 얼버무리며 대충 뭉게버리거나 아는체를 하며 상대방의 말을 끊어본 적이 있다. 그때 상대방의 허탈한 감정을 목격하고도 다음 주제로 넘어가며 나의 무안함을 가린 적도 있다. 그때 상대방의 마음이 얼마나 얼음장처럼 차갑게 식었을지는 오늘 내가 느껴보고 확실히 알았다.
그렇게 누군가에게 갑질을 당하고 나야 비로소 내가 얼마나 남에게 무례한 인간으로 살아왔는지, 무심결에 얼마나 자신을 정당화하며 살아왔는지를 비로소 알게 된다. 내가 그런 취급을 당하지 않았더라면 이런 일에 대해서 고찰할 일도 반성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쑥대밭이 된 마음을 추슬러 사무실로 돌아와서 또 다른 기관의 담당자와 전화통화를 했다. ‘나는 당신과 길게 대화하고 싶지 않습니다.’라는 팻말을 이마에 붙이고 있을듯한 상대방의 목소리에 나는 점차 흥분했다. 오죽했으면 내 말을 수시로 잘라먹고 자기 할 말을 이어가는 사람에게 “저기요, 저도 말씀 좀 드리겠습니다.”라고 했을까! (탄식) 그렇게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와보니 온몸이 아팠다. 그처럼 사람의 말은 사람을 다치게 만들 수 있다는걸 나는 배웠다. 내가 당해보지 않고는 몰랐을 것이다.
아이들 저녁을 차려줘야 하는데 쌀을 씻어 밥솥을 올려놓고 타이머를 맞추고는 그대로 누웠다. 그리고 잠이 들었다. 뻗은 것이다. 아이들은 몸이 자라는 것만큼 마음도 머리도 자라는 중이라 수시로 욱하는 마음을 달래지 못하고 서로 다투거나 나에게 짜증을 쏟아내곤 한다. 하루종일 여기저기에서 시달리고 있지만 다행히 마음속 깊은 곳의 심지는 단단해지는 느낌이다. 이 모든 것이 나를 내면이 강한 사람으로 만들고 있구나, 그런데 버티기가 힘들다. 조금만 더 심해지면 나도 폭발할 것 같아.
사무실 일도 정신없이 바쁘고, 아침 출근길과 등굣길도 그렇다. 남매는 아침 밥상에서부터 전쟁을 벌이고 나는 폭발한다. 아이들을 혼내며 차를 몰아 교문 앞에 내려주자마자 눈물이 후두둑 떨어졌다. 꺽꺽 울면서 신호대기를 했고 휴지를 꺼내 닦으며 운전을 했다. 내가 욕심이 많아서 아이들을 고생시키는 건 아닐까? 강의 한다고 밖으로 돌아다녔더니 가족 돌봄에 구멍이 생긴 건 아닐까? 엄마의 빈자리가 그렇게 큰 걸까? 같은 생각을 하면서 사무실로 향했다.
눈물 자국 없이 닦고 차를 뒤로 하고 사무실로 걸어갔다. 다른 직원들과는 활짝 웃으면서 인사를 한다. 마치 무슨 일이라도 있었냐는 듯. 그런 일상이 쭉 이어지고 있다. 그속에서 최대한 나를 살리려고 여러가지 노력들을 한다. 점심시간엔 러닝 머신 위를 빠르게 걷고 샤워를 한다. 스트레스가 조금 내려간다. 사무실에 스케치북 하나를 가져다두고 하루에 하나씩 그림을 그린다. 오피스 아이템 중 내 눈에 띄는 것을 그리고 짧은 글을 쓴다. 스케치북을 넘기며 매일 평범하지만 사실은 무지하게 노력하며 쌓아가고 있는 하루씩을 내심 칭찬한다. 오늘도 크게 무너지지 않았구나 수고했어. 핸드크림을 짜서 손에 바른다. 인공눈물을 짜서 눈에 넣는다. 흑염소즙과 홍삼액을 먹는다. 쭉쭉 들이킨다.
업무를 하며 갑을병정, 여러 계층 사다리 사이에서 분위기 파악을 잘 해서 사다리 칸에 맞는 인간이 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점점 그런 눈치를 보지 않고도 민주적으로 직장일을 할 수 있는 곳으로 바뀌면 좋겠다. 우리 세대에서 이렇게 진통을 겪고 우리 자식 세대에서는 평등하고 친화적으로 일하는 기업문화가 보편화됐으면 좋겠다. 아이들에게는 물려주고 싶지 않은 문화, 나도 버리고 싶은 문화다.
남에게 받은 불친절을 되갚는 사람이 되지 말자. 그럴수록 더 세상을 가슴에 품듯 남에게 친절을 베풀고, 그러는 과정에서 헤집어지는 가슴은 스스로 치유하고 가족에게서 위로받는 우리집 문화를 만들자. 아이들 자는 모습을 보고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와야겠다. 그리고 잠들기 전에 내 머리도 좀 쓰다듬어줘야겠다. 오늘도 수고했어. 돈 벌기가 원래 그렇게 어려운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