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가 희끗희끗한 할부지가 되신, 나의 이전 상사를 공항에서 만나 뵈었다. 인품과 능력을 고루 갖추신 그분은 최고위직으로 회사생활을 마무리하고 다른 회사에서 경력을 살려 일하고 계신다. 나보다 높은 곳, 넓은 곳을 경험하고 확장된 시야를 가지고 내 현 상황에 대해 여러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궁금해서 와봤어."
나는 이미 이 말을 듣기 전부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여기 공항인데, 업무 하는 장소인데, 업무적으로 아는 사람도 많은 곳인데... 그런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눈가가 뜨거워졌다. 20대에 상사로 모시던 분은 60대가, 나는 40대가 되었다. 20년의 세월이 흘렀다, 공항에서.
유학휴직계를 제출하고 타국으로 가야겠다고 했을 때에도 새하얀 종이 한 장을 꺼내서 내 말을 듣고 받아 적으시던 그 모습이 생생하다. 그때에도 내가 공부하는 분야, 가고자 하는 나라에 줄이 닿는 인맥을 찾아 연락처를 알려주시며 공부할 때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했었다. 내 삶에 도움 하나라도 주고자 했던 그 마음으로 이번에도 끙끙거리며 살고 있는 나에게 여러 가지 질문과 제안을 하셨다.
"작가 활동은 계속할 거야?"
"이제 20년 됐는데 어떻게 할 거야?(그만둘 거야?)"
"지금 하고 있는 일 하면서 에피소드를 글로 써보면 어때?"
"공항에 대한 칼럼을 써보면 어때?"
"홍보실에서 일해보는 건 어때?"
"대학원 전공 살려서 000 일 해보는 건 어때?"
마음속으로 저항감을 느끼고 있었다. 전부 못하겠다, 안 되겠다, 그런 건 안될 거다,라는 마음만 들었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그 방향으로도 가능성을 열어두겠습니다, 한 번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겠습니다,라고 답했지만 말이다.
회사일 말고 다른 것을 하고 있다는 것은 호기심을 가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일이 많고, 그로 인해 회사일에 소홀하다는 이미지와 감내해야 할 손해 또한 본인의 몫이라는 것을 변명하듯 읊었다. 안 되는 이유, 쭈그러들고 의기소침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말하면서 초라하다는 생각도 했다. 단단한 소라게 껍질처럼 지금 불행은 당연합니다,라고 당당히 말하고 보니 사실 여리디 여린 몸체에서는 매일 눈물이 나고 있다는 얘기는 쉽게 하기 어렵구나 싶었다.
나의 현재 상사와도 통화하여 "00이를 잘 봐달라"는 부탁을 하고, 함께 근무하는 직원들의 음료를 내 손에 들려주며 작별인사를 했다. 함부로 그만두지 않도록, 회사 밖은 춥고 힘들다는 말씀도 잊지 않으셨다.
긴 휴직기간동안 해보고 싶었던 작가와 강연가 활동을 원 없이 펼치며 회사 말고 내 이름으로 먹고살 수 있는지 실험을 했다. 그 실험의 대가는 혹독하다. 다시 돌아온 회사는 싸늘하고 냉랭하며, 그런 인생실험을 한 자에게는 타인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는 교훈을 알려주고 있다. 배우고 있다. 때로는 무관심하게 무신경하게 내 길을 열고 살아가야 한다고. 휘둘리기엔 하고 싶은 일, 갈 길이 아직 넓고 광활하다고.
지금은 울면서 쓰고 있는 글을, 언젠가는 웃으면서 보는 날이 오기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이 길도 언젠가는 끝나기를. 자식을 키우고 가정을 꾸리며 살아가는 일, 직장인으로서 근로소득을 받는 일, 사회적 동물로서 동료들과 의미 있게 근무하는 일 가운데에서 한 인간으로서 내 삶의 방향, 가치관, 소신과 평생토록 하고 싶은 일에 대한 고민도 이어가는 중이다. 그 양쪽 생각 꾸러미의 무게가 너무 달라 늘 어깨 한쪽이 기울어진 채 절뚝거리며 살고 있지만 균형과 보람을 언젠간 만날 것이다. 지금은 하루의 충실함 속에서 얻을 수 있는 일의 보람과 일상의 소중함에 기대어 한번 더 회사에 충실한 한 해, 후회 없는 365일을 보내려고 한다. 그게 지금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일이라고 본다.
* 내 사직서를 반려해야 된다고 인사팀에 대신 전화했던 A
* 퇴사를 하더라도 근속 20년은 채워야 한다고 말했던 B
그들에게 빚진채 오늘도 출근 준비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