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써본 퇴직 인사글

by 바이올렛

하나, 이만하면 퇴사할 준비가 된 걸까?

둘, 오늘이 며칠이지?


혼자 있을 때 스스로 자주 묻는 두 가지 질문입니다. 지금이 마음의 결정을 내려야 할 때인지 자주 점검하고 묻게 됩니다. 지금은 견딜만한지, 그렇다면 앞으로 얼마나 더 버틸 수 있겠는지도 늘 따라오는 질문이지요. 어떤 때엔 단 하루도 더 못 버티겠다 싶은 날도 있습니다. 하루 대부분을 회사에서 보내고 퇴근 후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와서는 가사와 자녀 양육에 열중하다 보면, 나를 위해서는 단 1분도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지 못하고 지나가는 날도 허다합니다. 피로에 짓눌려 옆으로 누운 채 핸드폰에 눈을 고정시킨 채 몇 시간을 흘려보낸 뒤 충혈된 눈을 겨우 감고 잠드는 마음은 행복과는 거리가 멀지요.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서도 겨우 이불밖으로 빠져나와 다시 의무감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건 인간 쳇바퀴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무력감을 느끼게 합니다. 좋은 수가 없을까, 이보다 나은 삶은 정말 없는 걸까? 생각하다 보면 현실이 더 비참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러니 무감각하게 집과 회사를 오가며 주어진 일을 하는 것에 만족하기로 타협하게 됩니다. 그래도 마음속에선 계속 글만 쓰면서 사는 삶의 장면이 자꾸만 그려집니다. 억누르려고 해도 사라지지 않는 그 풍경은 어느새 동경으로 자리 잡습니다. 언젠간 그날이 올 거야, 분명히 지금 겪고 있는 시간, 공간, 사람, 일, 이 모든 게 헛된 경험이 아니었다고 회상하게 될 고요하게 글 쓰는 삶이 분명히 올 거야,라고 희망해 봅니다.


지금도 글 쓰세요? 직장에 다니면서 언제 어떤 방식으로 글을 쓰는지 묻는 이들이 가끔 있습니다. 퇴근 후 밤이나 이른 새벽, 주말에 쓰고 있어요,라고 답합니다. 대단하다는 반응이 돌아오지만, 그건 저에게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에요,라고 대꾸하지는 않습니다. 그냥 말없이 웃기만 합니다. 속으로는 더 많이 쓰고 싶어요, 가끔은 직장에 있는 이 시간만큼을 온전히 글쓰기에만 쏟아붓고 싶답니다,라고 속삭여봅니다. 그리고 상상 속으로 빠집니다. 언젠가 그날, 사내 메일에 퇴직 인사글을 남기고 더 이상 출근하지 않을 그날을 말이지요. 마음속으로 정해둔 그날짜가 있습니다.


퇴직 인사글을 미리 한 번 써보려고 상상해 보았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지난 몇 년 동안 퇴직자들이 전 직원에게 쓰고 떠났던 퇴직 인사글 중 다시 읽어보고 싶은 것은 저장해 두었습니다. 그들의 것을 참고해서 너무 감상에 빠지지 않으면서 정중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글을 쓰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다가올 그날에 어떤 감정을 가질지 예측해 보았습니다. 후련함, 개운함, 아쉬움, 섭섭함, 자유로움, 기쁨, 고마움, 감격스러움? 복합적인 감정 사이에서 이성적인 자세로 퇴사할 수 있을까? 지금도 가만히 상상해 봅니다. 그리고 한 번 써보았습니다. 나의 퇴직 인사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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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동료 여러분

000입니다.


0000에서 근무했던 지난 20년은 회사의 성장과 함께

개인적인 도전과 성취를 위해 노력해 왔던 시간이었습니다.

협조와 응원을 아끼지 않으신 여러분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여러분에 대한 변치 않을 존경과 사랑을 담아

허림의 시 <마중>의 마지막 구절을 소개합니다.

그대여 내가 먼저 달려가

꽃으로 서 있을게


저는 용기를 갖고 새로운 걸음을 내딛습니다.

앞으로 각자의 자리에서 꽃 피울 여러분을 응원하겠습니다.

항상 건강하고 행복하십시오.

감사합니다.


20**년 *월 *일

000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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