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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은우 Feb 27. 2016

시간의 단위

작문 스터디 #2015년 5월 10일 주제 : 시간



여기 이곳은 지구의 가장 깊은 곳. 지구의 중심이다. 여기에 있는 작은 방이 내 일터다. 가장 무료한 곳이기도 한 이곳에서 내게 주어진 업무는 단 하나, '시간의 페달'이 잘 굴러가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내가 이 일을 시작한 이래로 단 한 번도 이상이 있던 적은 없었다. 시간의 페달은 시간이 앞으로 흘러가도록 하는 장치인데, 이 장치 덕분에 시간은 거꾸로 가지도, 멈추지도 않는다. 내게는 그것이 멈추든 말든 아무런 상관은 없었다. 


  방 한 편에는 작은 창이 나 있는데, 이 창으로 인간 세상을 둘러볼 수 있다. 그들 세상에는 시간을 측정하는 '시계'란 것이 있다. 시, 분, 초로 이루어진, 누구나 똑같이 적용되는 시간을 측정하는 기계였다. 나는 코웃음이 났다. 시간의 단위를 정하는 노력은 가상하지만, 정답이 아닌 것을 굳게 믿는 꼴이 우스웠다. 어떤 사람은 그 단위에 집착해 '이 나이에는 이걸 해야 하는데......', '남들보다 뒤처졌어.'라며 좌절하는 모습을 보니 안타깝기도 했다.


  일을 시작하기 전, 신은 내게 '시간'에 대해 가르쳐 주겠다며 들려준 말이 있다. 

"모든 인간에게 각각 '시간'이란 것을 선물할 것이다. 이것은 저마다 다른 속도로 흘러가며, 곧 끝에 다다르는 시기도 저마다 다르다."

내가 물었다. 

"그것이 왜 '선물'인가요?" 

그러자 신은,

"시간이 흐르는 속도를 관장하는 것을 인간의 몸 안에 두었는데, 이것은 곧 가장 아름답고 고결한 것이기 때문이지."


내가 배운 대로라면 인간은 저마다 다른 시간의 단위를 가지고 있는데 저들은 까맣게 모르는 듯하다. 그렇다면 신이 말한 가장 아름답고 고결한 시간의 단위란 무얼 말하는 걸까?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무척이나 무료한 이곳에서 나는 단 하나의 생각으로 지루함을 견뎠다. '그 시간의 단위란 대체 무엇일까?'란 질문은 아무리 작은 창을 들여다봐도 답을 내릴 수 없었다. 영겁의 시간이 흘렀다. 내 무료함도 영겁으로 쌓여갔다. 페달 곁에 수북이 내려앉은 먼지를 치우던 어느 날, 나는 그 페달에 빗자루를 순간 내리 꽂았다. 


  "끼익-" 귀를 찌르는 소리가 몇 초간 울려 퍼지고선 더 깊은 정적이 방 안을 채웠다. '작은 창 너머는 어떻게 됐을까?' 나는 평소보다 빠른 걸음으로, 더 가까이 얼굴을 들이밀며 작은 창 넘어 인간들을 보았다. 모든 것이 멈춘 그 곳은 고요하고 적막했고 그 어떤 기쁨도, 슬픔도, 공포도, 환희도 존재하지 않았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작은 창은 내 사무실 안에 놓인 그림 액자와 조화를 꽂은 화병과 다를 바 없었다.


  무료함은 여전히 내 안에 가득했다. 아니, 이전보다 더 깊은 무료함이 방안 전체를 메운  듯했다. 숨이 턱 막혀왔다. '시간의 페달'에 꽂힌 빗자루를 빼버리고 기름칠도 해주었지만 나는 이 곳이 견딜 수 없어졌다. 아무 일이 없던 듯 다시 복닥복닥 돌아가는 작은 창 너머를 잠시 들여다보다가 빗자루를 들어 이번엔 그 창에 꽂아버렸다. "와장창창-" 깨져버린 작은 창에 몸을 욱여넣었다.


  인간 세상에 첫 발을 내디뎠다. 세상은 '콩닥'거리는 크고 작은 소리들로 가득했다. 신기한 진풍경이 시선을 두는 곳곳에 펼쳐졌다. 작은 창으로 보던 것과는 사뭇 달랐다. 일터에선 들을 수 없던 그 소리들이 시선 곳곳의 풍경에 리듬감을 주는 듯했다. 두리번 거리다 한 여자가 아이를 품에 안고선 한가로이 벤치에 앉아 있는 것을 발견했다. 여자의 가슴에 머리를 대고 곤히 잠든 아이의 입꼬리가 살랑였다. 그녀가 숨을 쉬는 것인지, 아이가 숨을 쉬는 것인지 아지랑이처럼 작은 리듬으로 아이와 여자의 몸이 움직였다. 그 곁에 가서 여자에게 물었다.

"당신이 지니고 있는 시간의 단위가 무엇이오?"

"쉿!! 우리의 평온한 시간을 방해하지 마세요. 막 아이가 잠들었어요." 여자는 귀찮은 듯 내 평생의 질문을 막아버렸다. 다시 물어도 답은 찾을 수 없을 것 같아 다른 길로 향했다. 그 길에는 한 여자와 남자가 다정하게 걸어가고 있었다. 서로 마주 보는 표정이 사뭇 애틋했다. 어느 대문 앞, 여자는 들어가고 그 길에 돌아나오는 남자에게 다가가서 물었다. 

"시간의 단위에 대해 아시오?"

"네?? 시, 분, 초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게 무슨 질문이죠? 그것 말고는 몰라요. 시간에 대해 내가 아는 것이라곤 방금 데려다 주고 온 사랑하는 여인과 함께 보낸 시간이 너무 빠르게 흘러갔다는 것뿐이에요."

나는 또 물었다. "시간이 빨리 흘렀단 것을 어찌 아셨소?"

그러자 남자는 내 손을 가져가 자신의 가슴에 대었다.

"두근거리는 게 느껴지세요? 그녀 앞에선 이게 터질 듯 빨라져요."그의 가슴에선 끊이지 않는 미동이 느껴졌다. 시계의 초침이 흘러가는 것보다 생동감 있는 리듬이었다. 

  아! 신이 말한 것이 바로 이것이구나. 인간에게 준 선물은 다름 아닌 '살아있음' 그 자체였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두근거리는 일을 하며, 누군가의 품에 기대어 느껴지는 심장박동이 그들 각각의 시간이 흐르는 단위였다. 나는 내 가슴에 손을 올려보았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전의 내 일터에서 느낀 무료함만이 가득했다. 


  지나가다 본 상점에서 작은 시계를 하나 샀다. 손바닥에 올려 가만히 시계의 바늘이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째깍째깍"   손에 올린 시계를 순간 '꿀꺽-'하고 삼켰다.


"두근두근"   내 가슴에 다시 손을 얹었다.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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