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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은우 Feb 27. 2016

헤엄

작문 스터디 #2015년 6월 6일 주제 : 배달

"풍덩!"
내 시야엔 온통 푸른 물빛이 가득했다. 물미역이 흔들흔들 춤을 추는 모양, 작은 물고기 떼가 커튼처럼 팔랑이는 움직임, 돌덩이에 납작하게 붙어있는 조개들이 익숙하면서도 항상 새롭다. 몸을 일렁이며 더 짙은 푸름으로 더 깊이 헤엄쳐갔다. 날 기다리고 있을 그녀를 떠올리니 미소가 절로 나오며 헤엄이 거세졌다. 한시라도 빨리 이 물건을 배달해 주고 싶어 안달이 났다.




  나는 제주도에서 나고 자랐다. 어린 시절부터 집 앞바다에서 헤엄을 줄곧 쳐왔기 때문에 바다는 내게 아주 익숙한 놀이터다. 이 바다에서 나는 나만의 비밀을 깨달았다. 아직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내 비밀은 학교에 들어가기 전, 친구들과 잠수시합을 하면서 알게 되었다. 나는 아무리 잠수를 해도 숨이 차지 않았다. 다른 친구들은 숨을 참지 못하고 금세 올라오는 반면, 나는 바다 밖과 속에서 그 어떤 차이도 느끼지 못할 만큼 여유로웠다.
비밀을 깨달았을 때, 나는 문득 우리 반 반장이 생각이 났다. 그 아이는 반에서 인기가 많고 사람들과 두루 잘 어울리는 평범한 친구였다. 반장은 어느 날 아버지 선박의 프로펠러에 팔이 끼는 사고로 왼팔을 잃었다. 그 이후의 반장은 이름보다는 '팔 없는 애'로 불렸다. 어딜 가나 사람들의 시선을 받았다. 전교생 아이들이 다 팔 없는 애가 몇 반인지 알고 있었다.


  나는 그때 배웠다. 남들과 다르다는 것은 괴상한 것이라는 것을. 친구들에게 괴상한 별종으로 보이기는 싫어서 두 번째로 잘 참은 친구가 물 밖으로 머리를 내밀고 친구들이 웅성대며 죽은 게 아니냐고 걱정할 때쯤 물 밖으로 나왔다. 만약 내가 물 속에서 오래 있었다면 곧 남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는 꼴이기에 나는 남들과 다른 내 특징을 나만의 비밀로 삼고 숨기기로 결심했다.
 
  그 날 이후, 바닷속을 마음껏 헤엄치다 나오는 것은 내 또 다른 취미가 되었다. 얼마큼 깊이 들어갔는지 매일 기록을 경신하는 것이 나만의 성취감을 만끽하는 일이 되었다. 어느 날, 나는 깊이 바닷속을 내려가다가 유난히 검푸르렀던 구간에 다다랐다.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짙은 물빛은 나를 공포에 사로잡히게 했다. 다시 올라가야겠다고 마음먹은 순간, 어렴풋이 무엇인가가 아래에서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는 듯했다. 그것은 내가 익숙하게 마주쳤던 물고기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덩치는 꼭 나만큼 컸고, 제자리에서 헤엄을 유지하면서 나를 응시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 물체의 정체가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혹시 나처럼 오랫동안 헤엄을 칠 수 있는 또 다른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물체를 향해 더 가까이 헤엄쳤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마법같이 물빛이 에메랄드빛으로 환해졌다. 그리고 그 물체의 정체를 뚜렷이 볼 수 있었다. 다름 아닌 '인어'였다. 분명 상반신은 인간과 닮았는데, 허리 아래는 물고기와 같았다. 동화 속 내용이 실제였다니! 나는 그 인어가 겁을 먹지 않게 천천히 다가갔다. 그 인어도 내가 신기한 듯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내게 다가왔다. 내 눈앞의 인어는 동화 속처럼 아름다운 피부와 머릿결을 가진 예쁜 여인의 상과는 사뭇 달랐다. 머리는 각 종 해초와 엉켜서 틀어 올려진 모양이었고, 매끄러운 하반신과는 달리 상반신은 조개껍데기가 다닥다닥 빈틈없이 붙어있어서 거친 인상이었다. 인어는 내 매끄럽고 보드라운 살갗이 신기한 듯 내 팔을 살금살금 쓸어내렸다.

  종종 이 인어를 찾아가는 일은 또 다른 비밀이 되었다. 인어와 나는 꽤 친해졌다. 인어는 멀리서부터 내가 오는 것이 보이면 기뻐서 원을 크게 그리는 헤엄을 쳤고 나를 보면 반짝이는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바라봐 주었다. 나는 인어에게 동화 '인어공주'의 한 장면을 코팅해서 가져다주었다. 물 밖의 세상에서는 너를 이렇게 바라보고 있다고 손짓으로 가르쳐 주었다. 이를 시작으로 매일 바닷속 인어를 찾아갈 때마다 인어가 신기 해할만한 물건들을 하나씩 배달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아무도 모르는 나만의 '배달'이 계속되었다.

  인어는 내가 준 '인어공주' 그림을 보던 이후, 자기 몸에 붙어있는 조개껍데기를 다 뜯어냈다. 내가 어느 날 가져다준 '빗'으로 머리도 빗었다. 반짝이는 큐빅이 달린 목걸이도, 원피스도, 거울도, 향수도, 코팅된 물 밖의 사진 여러 장도. 내가 배달해 준 여러 물건이 인어의 보물창고에 쌓여갔고 인어는 점차 나와 닮은 모습으로 바뀌어 갔다. 처음에는 나는 인어에게 물 밖을 물건들을 배달해 주는 일이 즐거웠다. 아무도 모르는 신비로운 친구가 생긴 듯한 느낌도 좋았고, 인어가 신이 나는 모습과 호기심 어린 모습을 보는 것이 좋았다. 

  3년 즈음의 시간이 흘렀을까. 인어는 어느 날, 내가 가져다준 사진 한 장을 가리켰다. 휠체어에 앉은 노인의 사진이었다. 무엇을 말하는 가했더니, 인어는 휠체어를 원하고 있었다. 인어는 물 밖으로 나가고 싶어 했다. 물 밖의 사람들이 깊은 물 속을 두려워하는 것처럼 나를 만나기 전, 인어도 물 밖의 세상을 가서는 안 되는 곳이라고 여기고 있었지만, 나로 인해 변해버렸다. 다음번에 올 때는 휠체어를 배달해주겠다고 약속하고 물 밖으로 돌아왔다.

  나는 겁이 났다. 인어가 물 밖에 나온다는 것은 내가 감당하지 못하는 책임이 따르는 것이었다. 나는 물 밖에서 인어를 돌봐줄 책임을 질 자신이 없었다. 사람들의 이목도 두려웠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당연했던 평범함'이 어려운 일이 돼버리곤 하는 것을 줄곧 봐왔다. 나는 인어 곁에서 사람들의 그 시선을 받는 것이 싫었다. 물속으로 내가 인어를 찾아가는 것은 내겐 놀이었고, 재미였고, 왠지 모를 뿌듯함이었다. 그러나 인어가 물 밖으로 나오는 일은 또 다른 것이었다. 내가 먼저 인어에게 손을 내밀었지만, 인어가 내게 손을 내미는 것은 또 다른 의미였다.

  나는 그 뒤로 다시 인어를 찾아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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