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늘은 J Oct 22. 2015

근무일기_ 접시에 코박고 찌그러져야지

내 관문은 내가 닫아야겠지요

Oct. 2015.

[영국워킹홀리데이: 런던]

근무일기_ 

접시에 코박고 찌그러져야지



사장님 없이 마감하는 첫째 날이었다.


손님이 없어서 한가하면, 가게 하나하나가 다 꼴도 보기 싫고, 작은 것에도 자꾸 울컥 울컥 눈물이 나려고 한다. 도대체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저녁으로 올라온 전골을 보면서도 자꾸 목이 메여서 밥도 못 먹었다. 그 날도.. 저녁이 전골이었어서 그런가. 오늘은 밥 세 숟가락 먹었나. 애들이  왜 이렇게 입이 짧냐고 하는데, 나 입 안 짧은데. 요새 왜 이러냐. 배가 고프다가도 금세 속이 울렁거려서 뭘 먹을 수가 없다. 답답하고 뭔가 콱 막힌 게 더 먹으면 체하겠다 싶어서 수저를 내려놓는다.

그런데.. 손님이 많아지고  정신없이 일이 몰아치면, 기분이 좋다. 정확히 말하면 바쁜 게  좋다기보다 손님들이랑 이야기를 하는 그 시간이 참 좋다. 어떤 음식이 맛있냐고 물어보는 손님에게 이것저것 추천해준다. 그리고, 혹시나 입맛에 안 맞으면 어쩌나 걱정돼서 음식이 나온 후에 어떠냐고 물어본다. 그 손님에게서 '너무 맛있다.'다며 추천해줘서 고맙다는 대답을 들을 때 느끼는 기분 좋은 쾌감은 어떻게 설명할 수가 없다. 그 맛에 나는 이 일을 재미있다고 느끼는 거니까. 손님의 needs를 먼저 캐치해서 다가가는 타이밍이 생겼을 때도 나 혼자만의 작은 뿌듯함을 느낀다. 내가 좋아하는 나라에서 온 사람들에게는 그 나라 언어로 기초인사를 건네기도 하고, 한국에 방문한 적 있다는 사람들과는 한국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손님과 직원이 아니라, 한국에 온 외국인을 대접하는 느낌이랄까. 확실히 재밌다. 

오늘은 식사를 끝내고 나갈 때, 굳이 나를 찾아와 손을 꼭 잡으며 고맙다고 해주는 외국인 덕분에도 기분이 참 좋았다.


하하하하하하..



저녁에 30명 단체 테이블이 있었다.

그들이 술을 한껏 먹고 난 후 결제할 때, 할인이 가능한지를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내가 난감해 하자, 자기들이 학생이고 어떻고 저떻고.. 이야기를 펼쳐놨다. 순간 사장님이 '당장 돈 쪼금 덜 받아도, 기분 좋게 먹고 가면 또 찾아오지  않겠냐.'라고 했던 말이 생각났다. 그래서... 난...  할인을 해주겠다고 했다.

같이 일하는 친구가 계산서를 보고는 할인금액이 너무 큰 거 아니냐며, 이건 좀.. 너무 많이 해준 것 같다고 했다. 총 결제 금액이 크니까 10프로 할인금액도 클  수밖에...


이미 한번 뱉은 말 주워담을 수도 없고..

내가 사장이라도 된냥... 왜 그랬지...

ㅡ ㅜ 사장님이 기분 좋게  할인해주는걸 옆에서 너무 많이 봐서 그랬나. 난 왜 그랬을까..


사장님께 사죄의 메시지를 보내 놨다.

여차하면 내 시급에서 까도 된다는 말과 함께..


근무도 얼마 안 남은 마당에..

내 무덤을 파고 그 안에 들어가서 흙을 덮고 있는 꼴이구나.

그래.. 내 관문 내가 닫으마.....


접시에 코박고 찌그러져 있어야지...




참... 수고한 하루네..













네이버 블로그와 함께 작성됩니다. . . . . . . (C) 2006 twinkling_j [http://blog.naver.com/twinkling_j]

매거진의 이전글 일상_ 런던에서 버스를 탄다는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