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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릴라 Feb 12. 2020

우리는 바다빛으로 번져간다.

<사소한 일상영감일지 feat.인간의 무한성>  

순간의 작은 떨림.

그 작은 파장이 파도를 타고 또 다른 파도를 만나 무한한 바다를 이룬다. 한 순간도 멈추지 않은 채 부서지고 일렁이는 파도는 바다에 내려앉은 눈부신 볕을 만나 순식간에 아름다운 바다빛으로 번져간다. 코발트블루였다가, 에메랄드빛이었다가, 깊은 심연의 빛이었다가… 바다의 파장은 끊임없이 또 다른 파장을 만나 새로운 빛을 품어낸다.  


우리의 하루와 닮았다. 

이른 아침, 우리는 잠의 무게를 털어내며 이 세상에 처음 태어난 아기처럼 눈꺼풀을 깜빡인다. 아늑한 방 공기, 이불의 감촉, 그리고 따뜻한 햇살을 마주하며 안도감을 느낀다. 아침에 맞이한 안온한 기분은 가뿐하게 이불을 젖히고 세수를 할 수 있는 기동력을 안겨준다. 아침의 첫 감정은 하루의 기분을 장악하기도 한다. 차가운 물로 세수를 하고, 처음 마주친 누군가와 대화를 한다. 상대가 공기 중에 뱉은 나를 향한 언어와 몸짓은, 순간, 오늘의 새로운 파장으로 이루어진 나를 만나 또 다른 나를 만들어낸다. 하루가 삶의 파장을 타고 파도처럼 일렁인다.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내가 아니듯, 어제, 오늘, 내일이라는 피상적인 언어를 걷어내고 보면 단 한순간도 나를 이룬 파장은 시간의 연속성에서 같았던 적이 없다. 나 그리고 당신의 삶의 파장은 어떤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을까?   


우리는 인간의 존재만으로 서로를 향한 작은 떨림과 진동을 느낄 수 있다. 말의 울림, 그리고 몸짓 하나하나가 서로에게 자연스레 뻗어나가 새로운 파장을 일으킨다. 또 다른 파장이 되어 지구의 대기권을 가득 채우고 세상의 에너지를 초단위로 바꿔나가는 중이다. 그런 인간을 품고 있는 지구는 우주에서 무한한 파장을 뿜어내며 살아가는 별. 마치 동적인 생명체와 같다. 어쩌면 우주적인 파장의 관점에서 생을 들여다보면, 우리가 어떻게 살아나가야 할지 조금은 알 수 있을 것만 같다. 생의 방향성, 파장을 이루는 선택, 나의 일상을 이루는 언어와 몸짓 등. 우리의 일상으로 돌아와 보면, 우리는 그 속에서 다양한 스펙트럼을 뿜어내며 세상을 미세하고도 섬세하게 그리고 아주 조금씩 변화시키는 중이다.    

Photo by Sasha Freemind on Unsplash


순간순간 어떤 파장과 섞일 것인가는 찰나의 선택이다. 그 선택의 집합은 '지금의 나'이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이토록 다르며, 단 한 사람조차 같지 않은 삶을 살아낸다. 순간순간 무엇을 보고, 듣고, 말할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느끼고 생각할 것인가. 어찌 보면 우리는 각자의 하루를 만들어가는 창조자이다. 오늘 만난 누군가와의 대화로 인해, 어떤 우연하고 사소한 경험으로 인해 우리는 생각이 깨어나고 확장되어 가며,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고 살아간다. 지금의 내가 좋은 이유는 그것을 온몸으로 파장 그 자체로 삶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오랜 직장 생활에서는 크게 빗겨나갈 것 없는 제한된 파장들과 교류하며 살아왔다. 매일 보는 지루한 표정, 자기 살길에 앞서 비난하기 바쁜 사람들, 우울한 감정을 숨긴 채 잘 지내는 척하는 우리들의 파장은 점차 짙은 회색 빛으로 서로를 부정하고 있었다. 10년간 지속한 선택에서 더 이상 깊은 우울에 빠지지 않기 위해 회사를 그만두는 선택을 했다. 겉은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번지르르함이 묻어나지만, 내면의 보이지 않는 파장은 짙은 회색으로 번져가고 있었다. 


어느 순간,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다. 


우리는 감각적으로 어떤 선택을 하면 되는지 안다. 내면을 세밀하게 들여다보지 못하면 나쁜 파장이 왔을 때 함께 휩쓸려간다. 하지만 우리는 직감적으로 자신에게 해로운 파장을 구별해낼 수 있는 탁월한 능력이 있다. 어떤 순간에도 매몰되지 않고 자신의 내면을 향하고 있으면, 어떤 파장을 선택할지, 그 진동이 어디로 향하길 원하는지 본능적으로 알 수 있다. 하지만 늘 직감대로 살 수 없는 법. 그래서 자신만의 삶의 가치와 기준점을 스스로 세워나가야 한다. 직감에 더해져 자신의 가치 기준으로 선택해야 무엇이든 후회가 없다. 어떤 파장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우리 인생의 흐름은 기가 막히게 달라진다. 새로운 선택에 발을 들이는 것은 누구에게나 두려움이라는 파장을 일으킨다. 떨리는 마음으로 한 발을 뻗으면 완전히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세상을 맛볼 수 있다는 것은 진리와 같다. 새로운 세상에 발을 내디딘 순간, 어떤 무지갯빛으로 물들어갈지 아무도 모른다. 우리는 저마다 다른 자아로 이루어진 자신만의 파장의 빛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어떤 파장과 만나 다음 세상을 펼쳐나갈까?


두 번째 세상에서 나의 업은 선한 파장을 일으키는 일이었으면 한다. 

조금은 서툴고, 조금은 모자라도, 서로에게 선한 영향을 매일 신선하게 공급해줄 수 있는 그런 마음가짐 말이다. 조금씩 그러한 길로 발자국을 내는 것이 나의 생을 잘 살아내는 것이라고 느낀다. 나의 발자국은 길에서 벗어난 것이 아니라 길을 잇고 또 이어서 새로운 길을 만들어내고 있다. 내가 내디딘 발자국을 따라 누군가 그 파장을 느끼고 따라올 수도 있음을 인지하고 내 선택의 파장에 책임을 지고자 한다. 또 그 길이 닦이고 닦여 선명해질 즈음에는 내 말과 행동의 파장은 더욱 작게 하고, 다양한 세상의 파장에 귀 기울여 또 새롭게 새롭게 섞이고 싶다. 넓고 깊은 나의 삶을 향해서..


정돈되고 광내 놓은 빛나는 길이 항상 누구에게나 빛나는 길은 아니다. 

같은 직업을 갖고 있더라도 모두가 자신의 업을 다르게 바라본다. 자신이 담근 업에서 자신만의 색깔을 찾아가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여기서 색깔이라 함은 능력일 수도 있지만 그 업을 바라보는 '가치'와 '태도'이다. 이 두 가지가 있다면 언제 어디서 어떤 다양한 파장과 섞이더라도 자신만의 색깔을 만들어 그 가치에 가까워진 나를 만들 수 있다. 지금 나는 조금씩 나만의 색으로 물들어 가는 중이다. 무언가를 이루려 정답지를 만들어 놓고 싶지 않다. 큰 방향을 생각하며 걸어가되, 그 안에서 만나게 될 다양성과 우연성의 파장을 유영하며 새로운 나를 재미있게 만들어갈 수 있을 것만 같다.  


빛의 스펙트럼은 빨주노초파남보가 아니다.
빛의 파장은 무한하고, 무한하다.  

봄날의 햇살에 비친 여린 연둣빛 잎사귀의 빛깔은 어느 잎사귀 하나 같은 빛깔이 없듯, 어느 날 바라본 바다빛이 단 한 번도 같았던 적이 없듯, 세상의 빛은 무한하고, 무한하다. 서로 다른 우리는 끊임없이 삶의 파장에 섞여가며, 무한한 빛깔을 만들어내며 자신의 우주를 확장시켜나간다. 우리는 무엇에 비춰보고, 담가보고, 섞이느냐에 따라 모두가 다른 자신만의 바다빛으로 물들어갈 것이다. 


그런 우리로 이루어진 지구는 아름답고, 그 지구를 품은 우주는 마음껏 경이롭다.
    

#일상영감일지 #삶의태도 #인간의무한성 #확장 #경이로움 #살아가는일 #인생태도

Image source: Photo by Sean O. on Unsplash / Photo by Chris lawton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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