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없는 그 책]<이혼 숙려 캠프>에 출연한다면?

2022년에 출간된 중국의 중편 소설 <我本芬芳(그럼에도 피어나리)>

by 번역가 차라



*원제는 <我本芬芳(아본분방)>, 직역하면 ‘나는 본래 향기롭다’ 정도의 의미다. 그러나 이 책을 쓴 저자의 집필 의도를 참고해 <그럼에도 피어나리>로 의역해 보았다.







소설 속 부부가 <이혼 숙려 캠프>에 출연한다면?




여기 한 남자가 있다.


결혼 생활 내내 남편의 역할보다 직업인으로서의 역할이 중요한 남자. 신혼 기간에도 낡고 어둡고 낯선 공간에 아내를 홀로 두고 굳이 자신의 사무실로 돌아가서 자는 남자. 심지어 아내가 아이를 낳은 다음 날에도 아내와 아이를 두고 사무실로 나가는 남자. 내 가족보다 바깥 사람에게 더 잘해야 한다고 믿는, 체면이 밥 먹여주는 남자. 아내가 서운한 말을 쏟아내면 입을 꾹 닫고 피해버리는 남자. 눈 뜨면 일터부터 나가야 하는, 미혼 시절의 습관을 결코 버리지 않는 남자. 집안일은 오로지 여자의 일이라고 믿는 남자. 아내의 요구를 전부 들어주면 응석받이로 길들이는 것이라고 믿는 남자. 육아 참여도는 극히 낮으면서 아내가 아이 셋을 낳은 후 피임 수술을 하고 오자 화를 내는 남자.



JTBC <이혼 숙려 캠프>에 출연한다면 메인 MC인 서장훈에게 호통 깨나 들었을 것 같은 남자다. 남자의 아내는 그런 남편을 참고 또 참는다. 물론, 애초에 두 사람이 결혼하게 된 것은 지식인을 농촌으로 보내 일정기간 동안 노동을 하게 했던 중국의 ‘하방’ 정책 때문이었다. 노동이 아닌 공부를 하고 싶었던 여자는 하방 대신 결혼을 택한다. 마음에서 우러난 결혼도, 사랑에 의한 만남도 아니었지만, 그래도 여자는 남자에게 호감이 있었고 이 결혼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삶이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현실은 여자의 염원과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 버리지만.


‘제일 처음 내가 알던 그 남자가 맞을까’, 하루에도 몇 번씩 자신에게 되물을 만큼 남편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인다. 참고 참다가 서운하다 이야기도 해보고 눈물도 쏟지만, 그럴 때마다 남편은 입을 꾹 닫고 자리를 뜬다. 회피다. 더 이상의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쯤, 여자는 이 삶과 이별하기로 마음 먹고 끈을 매달지만 끈 안으로 얼굴을 들이밀어 넣으려던 찰나, 발그레한 얼굴로 곤히 자고 있는 딸의 모습에 멈추고 만다. 그렇게 딸을 인생의 희망으로 여기며, ‘이것이 운명’이려니 체념하며 여자는 다시 살아간다.


수많은 고비와 역경을 거치는 와중에 60년이 흐른다. 그 남자와의 결혼 생활을 60년이나 이어온 셈이다. 60년의 결혼 생활 끝에 여자는 깨닫는다. 누군가의 눈에는 다이아몬드처럼 반짝일 60년의 결혼 생활이 이 두 사람에게는 결코 행복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아내는 아내대로, 남편은 남편대로 상처와 아픔이 있었다는 것을. 그런 서로를 더 보듬었어야 했지만, 이제는 늦어버렸다는 것을.





출처 : Gemini를 활용한 AI 이미지




이 책은 저자의 반 자전적 소설로 알려져 있다. 소설이라기 보다는 작가가 ‘구술한 역사’에 가깝다고 이야기할 만큼 작가가 평범한 한 여성으로서 겪은 60여 년의 역사를 담고 있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상처와 혼란으로 가득한 결혼 생활이었지만, 자신의 이야기로 수많은 여성들에게 공감과 용기를 선사하고자 했다. 한 여성으로, 아내로 인정받지 못하더라도 온 힘을 다해 아름답게 피어나고자 했던, 보이지 않는 모든 여성들에게 이 책을 바친다는 것이 작가의 말이다. (제목의 ‘芬芳/분방’은 ‘향기’ ‘내음’ ‘향기롭다’의 의미를 갖는 단어다.)


그러나, 한 가지 아쉽고도 궁금한 것은 이 책이 오로지 여성의 시선과 심리를 바탕으로 그려졌다는 사실이다. <이혼 숙려 캠프>에 접목해 본다면 아내 측이 제공한 영상을 본 것에 불과하다. 즉, 남편의 마음은 어떠했는지, 남편에게는 어떤 사정과 이유가 있었는지 내밀하게 볼 수 없어 아쉽다. 그러니 무턱대고 남자만을 비난할 수도 없을 것이다. 남편 측이 제공한 영상에는 또 다른 이야기와 사정이 숨어 있지 않을까? 결혼 생활은 두 사람이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니 말이다.












*소설 미리보기 (1부의 첫 챕터 / 번역:차라)





제1부


-1-


장시성에서 공부를 하던 천후이차이가 고향 친구인 류원즈를 만난 건 우연이었다.

원즈는 가족들과 함께 1958년에 장시성 A현(縣)으로 이사를 했고, 후이차이는 그 해에 마침 창사에 있는 중등 전문학교에 합격했지만 두 사람은 3년 넘게 만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니 이 뜻밖의 만남이 후이차이에게는 더 없이 기쁜 일이었다.

원즈는 후이차이보다 두 살이 더 많았다. 두 사람 모두 초등학교를 졸업했으니 어느 정도는 배운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었다. 고향에 살던 시절, 두 사람은 낮에는 함께 일하고 밤에는 문맹 퇴치반에서 함께 수업을 했으며 잠도 함께 자면서 그야말로 친자매처럼 지냈다.

원즈는 적당히 균형 잡힌 체형에 발그레한 피부는 윤기가 돌았다. 둥근 얼굴 위로 커다랗고 반짝이는 두 눈과 함께 버들잎 같은 눈썹은 관자놀이로 뻗어 있었다. 가운데로 가르마를 탄 머리는 두 갈래로 길게 땋았는데, 온몸에서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이 풍겨 나왔다.

원즈는 A현에 이미 정착한 지 오래였다. 두 살 된 딸 링링을 키우며 현급 병원의 식당에서 조리사로 일했고, 남편은 목기 공장에서 일하면서 끼니 조차 제대로 먹을 수 없었던 고향에서와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고 있었다.


어느 날, 학교가 교실을 수리한다는 이유로 며칠 간 방학을 했다. 후이차이는 매일 같이 원즈네 집을 찾아가 원즈와 수다를 떨기도 하고 꼬마 링링을 돌봐주기도 했다.

방학 첫 날 정오 11시쯤, 후이차이가 원즈와 머리를 맞대고 여자 아이들 사진을 한참 구경하던 중이었다. 또각또각 나무 슬리퍼 소리가 나더니 한 젊은 남자가 들어섰다.

마른 체격에 키가 보통인 남자는 베이지색의 체크무늬가 새겨진 실크 소재의 셔츠에다가 도톰한 모직 재질의 남색 바지 차림이었다. 옷자락이 발걸음을 따라 펄럭이는 모습이 무척이나 멋스러워보였다. 그때, 인사를 하는 원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뤼 의사님, 얼른 오세요. 여기 사진 엄청 많으니까 배우자감으로 괜찮은 사람 있나 한 번 보세요.”

뤼 의사라고 불리는 청년은 사진을 받아들더니 눈으로 대충 훑었다.

“다 예쁘시죠, 뭐. 그저 제가 복이 없어 그렇지.”

청년은 사진을 다시 원즈에게 돌려주며 말을 이었다.

“이번 주는 제가 주간 근무라서 11시쯤 점심 먹으러 올 거예요.”

뤼 의사는 대화가 이어지는 내내 옆에 있는 후이차이를 단 한 번도 바라보지 않았다. 원즈는 후이차이가 어색해할까 싶어 소개를 해주기로 했다.

“여긴 제 고향 친구예요. 같은 동네에서 맞은 편 집에 살았어요. 원래는 후난에서 중등 전문학교를 다니면서 6학기까지 마쳤는데, 갑자기 학교가 일방적으로 문을 닫아 버렸대요. 그래서 공부를 할 수 없게 됐는데 고향으로 다시 돌아가는 건 싫어서 혼자 장시로 왔대요. 지금은 공대(장시성에 있던 ‘공산주의 노동대학’) 분교 사범반에서 공부 중이에요.”

청년은 그제야 고개를 돌려 후이차이를 바라보더니 순박한 웃음을 지었다. 후이차이도 웃어보였다. 서로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뤼 의사가 돌아간 뒤, 원즈가 후이차이에게 말했다.

“뤼 의사님 말이야. 현 병원에서 의사로 계신데, 부대에서 전역하고 A현으로 오셨대.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셔서 혼자 벌어 혼자 쓴다고 하니 조건이 꽤 괜찮지, 사람도 좋고. 다만 출신은 좀 안 좋은 듯 하지만…”

후이차이는 순간 무언가에 찔린 듯 동병상련의 감정을 느꼈다. 아직 말 한 마디 나누어보지 않은 사이였지만, 출신이 좋지 않다는 단 하나의 이유로 후이차이는 뤼 의사와 한층 가까워진 느낌이었다.


다음 날, 후이차이는 아침 식사를 마치고 원즈의 집으로 향했다. 정오 11시가 되자 나무 슬리퍼 소리가 또다시 들려왔다. 후이차이는 괜스레 긴장이 되어 고개를 푹 숙인 채 링링과 놀아주는 일에 신경을 쏟았다. 나무 슬리퍼 소리가 자신에게로 가까워오는 찰나, 후이차이는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 둘의 시선이 마주쳤다. 후이차이는 자기도 모르게 얼굴이 화끈거려 얼른 고개를 숙였다.

뤼 의사가 말을 걸었다.

“온 지 한참 됐어요?”

후이차이는 다시 고개를 들었다.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뤼 의사의 모습에 당황하며 입을 열었다.

“얼마 안 됐어요. 식사하러 오셨어요?”

뤼 의사는 “네.”라고 대답하더니 원즈에게 점심 밥을 받으러 곧장 주방으로 향했다.


셋째 날, 뤼 의사는 후이차이를 보자 익숙한 지인을 보듯 친근한 얼굴을 했다. 두 눈에는 기쁨의 빛이 반짝이고 있었다. 본래 활발한 성격이었던 후이차이 역시 이제는 크게 어색해지 않은 터였다.

뤼 의사가 후이차이에게 말했다.

“밥 먹고 나서 잠깐 내 사무실에 앉았다 가요.”

식사를 마친 뤼 의사는 후이차이를 데리러 왔다. 후이차이는 호기심에 뤼 의사를 따라 나섰다. 사무실 문에 ‘내과’라는 팻말이 걸려 있는 것을 보고 후이차이는 그가 내과 의사라는 것을 알았다. 사무실로 들어서자 책상 위에 놓인 의학 잡지 한 권이 눈에 들어왔다. 표지에 ‘뤼’자가 쓰여 있었다.

“성이 뤼 씨였어요? 저는 리 씨인 줄 알았어요.”

“네, 뤼 씨예요. 앞으로는 라오뤼(연장자에게 ‘라오’를 성 앞에 붙여 친근하게 부른다)라고 불러요.”

“그래도 그건 좀.”

“괜찮아요. 그렇게 불러줘야 편해요.”

뤼 의사는 잠시 멈칫하다가 물었다.

“내일도 오는 거죠?”

“네, 올 거예요. 내일이 방학 마지막 날이거든요. 모레부터 수업이에요.”

“그럼 내일 같이 산책해요, 할 말이 있어요.”

“지금 이야기하셔도 돼요.”

“너무 길어서 금방 안 끝날 거예요. 조금 있으면 다른 사람들도 출근할 텐데, 그러면 이야기하기가 곤란하기도 하고.”

뤼 의사가 열정적이고 진지한 눈빛으로 후이차이를 바라보았다. 후이차이는 다소 부끄러웠지만, 그가 조금은 마음에 들었다.

“좋아요.”

“내일 저녁 6시, 병원 입구에서 기다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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