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허락해 준 결혼
난 일단 대출받아 살 집을 3군데 검토해 보고 한 군데를 정했다. 그리고 그 한 군데를 아현동에서 점을 봤던 점집에 집을 살 운이 있는지 물어보기로 했다. 난 점집을 예약했고 그날 점집에 가기 전 부동산에 들려 집값 상황을 물어보고 갈 계획이었다 물론 점집은 내 친한 동네 친구와 가려고 마음을 먹고 당일 부동산에 가기 전 연락을 했다. 평소대로라면 같이 움직였다 집에 오면서 술 한잔하고 헤어지는 게 뻔한 루트였다. 하지만 의외의 친구 대답이 돌아왔다. "가기 귀찮다. 그냥 너 갔다가 와서 집 근처에서 연락해 근처에서 술 한잔 하자"
난 당황했다. 왜냐하면 나의 요청대로 항상 움직여주던 친구였기 때문이다. 더구나 내가 큰맘 먹고 가려고 했는데 시작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하지만 뭔가 달랐다. 그냥 부딪혀보고 싶었다 시간에 맞춰 부동산에 들러 호가등을 체크하고 난 굳은 마음을 먹고 아현동으로 향했다. 혼자 점집을 가본 적은 없기에 가서 쭈그리처럼 있을 것만 같아 그냥 안 갈까도 생각했지만 갔다. 정말 그 당시에는 굳은 결심이 작용했다. 평소였으면 그냥 안 가고 친구와 술약속을 잡았을 것이다
그렇게 굳은 결심으로 간 아현동 점집에서는 평범한 얘기가 오고 갔다. 내가 집을 사도 되냐는 물음에 문서운이 들어와 있으니 사도 좋을 거 같다는 말과 함께 점쟁이 분이 떠오르는 집 근처 환경을 그려줬는데 나름 내가 사려고 하는 집의 주변환경과 비슷했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대화 말미에 점쟁이 분이 물었다 "결혼은 안 해요?".
난 ctrl c ctrl v 하듯 무미 건조하게 얘기했다 " 누가 있어야 하죠.."라는 말고 함께 냉소를 지었다...ㅎ 그렇게 대화가 마무리되고 난 집에 왔다.
점집을 다녀온 저녁 문자가 왔다. 저장이 안 되어 있는 번호, 하지만 문자가 오간 흔적은 있었다. 난 문자를 열어보고 약간 놀랬다 점쟁이 아주머니께서 통화가 가능하냐고 문자를 보내신 것이다. 난 무슨 일이시냐는 간단한 답에.. 빠른 답이 왔다. "소개팅해보실래요"..
사실 난 순간 멈칫했다. 상대방의 사진을 확인하지 않은 소개팅은 지양하기 때문이다.^^ 물론 나의 사진을 보내줘도 괜찮은 입장이었다. 나와 상대방의 시간, 나와 상대방의 마음을 지켜주기 위한 나만의 기준이었다.
하지만 무슨 일이었을까.. 난 전화를 드렸고 한다고 했다. 누가 나오든 난 하기로 순간 마음먹은 것이었다. 지금생각해 보면 뭐에 홀린 듯 히 소개팅을 한다고 했다.
그렇게 받은 전화번호 정보를 받고 난 다음날 연락을 했다. 연락과 함께 카톡으로 서로를 파악했다. 그녀는 6살 어린 유치원 교사였다. 정말 마른 장작에 불붙는다는 게 이런 것이었을까? 정말 모든 것이 통했고 그녀의 반응은 내가 꿈꿔왔던 이성의 모습이었다.
배려 깊은 워딩들, 귀여운 목소리, 활기찬 웃음 무엇 하나 빠지는 것이 없었고 우린 빠른 약속을 잡았다.
그렇게 서울의 한 역에서 2020년 2월 만났고 우린 불같은 연애를 시작했다.
우린 거의 매일 만났다 고양 쪽에서 직장 생활했던 현 와이프이자 전 여자 친구와 안양에 살고 당산동에서 직장생활을 했던 나는 일주일에 최소 4번 이상 만났다. 뭐가 그리 좋았는지.. 아니다 다 좋았다. 난 혹시라도 차이면 차라리 혼자 살겠다고 마음먹을 정도로 굳은 마음을 먹고 마음을 표현했고 와이프도 적극적으로 표현해 줬다.
가치관, 식성, 자라온 환경 모든 게 비슷했다. 난 결혼에 대한 중압감은 잠시 잊은 채 현실 연애를 즐기고 있었다. 그러다 결혼이라는 단어와 함께, 이어지는 현실적인 걱정이 가슴 한편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 이유는 난 내가 벌어서 결혼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결핍 없이 키워주신 부모님 덕분에 잘 자랐지만 현실적으로 집안의 여유는 없었다. 나도 그 상황을 알았기에 적게 벌어도 많이 저축하려고 했다. 하지만 부족했다. 매년 기사에 오르내리는 평균 혼인비용에 턱없이 부족했고.. 최소한 요구되는 신부의 평균 요구 사항을 당연히 충족시킬 수 없었다. 이러한 걱정을 품고 있다가 5월 함께 여행 간 곳에서 나도 모르게 말을 했다
"결혼하고 싶네"
2월에 만나고 5월에 나도 모르게 결혼하고 싶다고 한 후에도 우리는 불같이 연애를 했다. 지금생각해 보면 내일은 없다는 마음으로 연애를 한 것 같다. 나를 아는 지인은 당시 나의 모습에 결혼할 것 같은 모습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렇게 맞이한 7월에 우린 큰 결정을 했다. 지금의 장인 장모님, 당시 여자친구의 아버님 어머님께 인사를 드리는 것이었다. 물론 결혼을 하겠다고 인사드리는 것이 아니라 여자친구 입장에서는 남자친구 소개를, 내 입장에서는 만나는 사람이라는 인사를 드리기로 한 것이었다. 난 속으로 설령 좋은 인상으로 인사드려도 결혼까지 쉽지는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현실이 그렇게 때문이었다.
무거운 마음으로 뵙게 된 장인어른 장모님, 우린 중국음식점에서 만나 뵙고 인사를 드렸다. 무엇을 하는지 어떻게 만났는지는 정도 물어보신 것 같고 부모님에 대한 것, 가족사항 등 의례 오고 갈 이야기들이 무겁지 않게 오고 갔던 것 같다. 나나 와이프나 긴장은 했지만 분위기가 무겁지 않았기에 무난히 인사드렸다는 마음이 들 찰나였고 식사가 끝나던 참이었다.
아버님께서 말을 건네셨다..."올해 결혼해야지" 난 처음에 잘못 들었나 했다. 오늘 그냥 인사드리는 것이라고 와이프가 말씀드렸을 텐데.. 결혼이라니.. 아니나 다를까 장모님도 멈칫하시는 것 같았다.
하지만 아버님은 부드럽지만 단호하신 어투였다. "올해 넘기지 말고 했으면 좋겠다"
7월이었다. 당장 결혼한다고 하더라도 남은 5개월까지는 무리였다 더욱이.. 난 여건도 충분치 않았다.
'폭삭 속았어요'에서 나온 "살면 살아진다"처럼 하면 된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우리 부모님께도 올해 결혼할 거 같다는 말을 전해드렸고 반응은 이렇게 빨리? 였다. 어찌 보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물론 내가 알아서 알 테니 일체 걱정하지 마시라고 했다. 하지만 현실이 녹록지 않았기에 속으론 마음이 무거웠다. 하지만 장인어른 장모님은 나의 무거운 마음을 가볍게 할 정도로 행동력이 강하시고 꼼꼼하셨다. 나와 와이프가 모아둔 돈, 대출, 장인어른 장모님의 도움으로 모든 것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더욱이 신기 한건 모든 것이 다 풀렸다는 것이었다.
준비기간이 짧았기에 예식장 잡기가 어려웠고 아니나 다를까 웨딩플래너가 소개해준 3곳은 아주 고가이거나 가성비가 좋았으나 우리의 기준에 못 미쳤거나 비용, 환경 둘 다 마음에 안 드는 곳이었다. 우리는 비가 아주 많이 오는 날 3곳을 돌았고 마음에 드는 곳을 찾지 못할 때쯤 목동의 한 곳을 추천받았다. 한 시간대의 자리가 빠져서 한번 가보라는 것이었다. 우린 별 기대를 하지 않고 갔지만 아니었다. 기대 이상이었다
넓은 홀, 와이프가 꼭 원했던 긴 버진로드와 높은 천장, 그리고 북적거리는 뷔페가 아닌 한상차림 더욱이 맛과 비용까지 우리의 마음을 흡족하게 했다. 우리는 한상차림 샘플을 시식한 후에 계약을 하고 후일담이지만 정말 하객 모두가 만족한 식장이었다. 또 하나의 놀라운 점은 우리가 결혼하고 일정기간 후에 폐업했다는 것이다. (코로나를 견뎠음에도..)
식장뿐만 아니라 집도 잘 풀렸다. 급하게 전셋집을 구하느라 발품을 팔았지만 가을이 끝나가는 시점이었고 비수기가 시작되는 시점이라 물량도 없었다. 하지만 오랫동안 노부부가 살았던 집을 당시 투자붐 때문에 젊은 부부가 사서 올수리를 해서 부동산에 올린 매물이 등장했다. 우린 직접 방문하고 보자마자 바로 계약을 했다. 식장에 이어 또 놀라운 점은 젊은 부부가 얼마 안 있다가 집을 매도한 것이었다. 집값이 많이 오르지도 않았음에도...(워낙 살기 좋아 5년째 살고 있다)
결혼식이 다가오면서도 와이프와 내가 걱정했던 것은 결혼사진의 마스크를 쓰는 것이었다. 당시 예외사항으로 마스크를 일부 벗는 조건은 소규모 가족모임정도였고 서울은 웬만하면 모든 장소에서 마스크를 쓰는 것이 원칙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와이프는 사진을 찍고 싶지 않아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무슨 운이 작용했는지. 우리 결혼식이 있던 전주에 코로나 감염자수가 눈에 띄게 감소세를 띄었다. 이에 관리기관은 백신의 효과가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마스크 착용 조건을 완화시켰다. 예외적으로 결혼식장이나 지정된 장소에서는 마스크를 풀고 있어도 된다는 것이었다. 결국 우리는 마스크를 벗고 결혼식을 올렸다.
난 운이 80%에 노력이 20%인 것 같다. 와이프의 마음을 얻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결혼하기까지는 정말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힘이 많이 작용했다.
점쟁이가 소개팅을 해주었고, 6살 어린 여자분이 나왔으며, 만난 지 5개월 만에 장인어른이 나를 보자마자 결혼하라고 하셨고, 완벽한 식장에서 양가 부모님은 물론 많은 사람의 축하를 받으며 행복한 결혼을 했다. 여기에 추가하여 결혼 생활 중에 점쟁이가 소개팅해서 결혼한 사연으로 박소현의 '러브레터'에 사연신청을 하여 방송까지 탔다
운칠기삼이라는 말처럼 인생에 말로는 설명하지 못하는 힘이 작용하는 거 같다. 이 글을 미혼남녀들이 보면 노력보다는 운에 기대는 경우가 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내가 경험한 바로는 결혼운은 누구나에게 있지만 좋은 배우자와 결혼할 운은 노력으로 키울 수 있는 것 같다. 배우자를 보는 안목, 배우자에게 어필되는 자기 계발, 좋은 인성, 배우자의 마음을 얻기 위한 노력이 병행되어야 결혼이라는 퍼즐이 완성되는 것 같다.
이혼 관련 자극적인 프로그램들이 인기를 얻는 요즘에도 많은 사람들이 사랑을 나누며 결혼을 꿈꾸고 있을 것이다. 내가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다들 결혼운은 있으니 본인을 믿고 노력하라고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