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 5년1% 하락의법칙, 모래로 쌓은 성이 무너지고 있다.
김세직 / 브라이트
한국경제는 전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경제성정을 이루어 왔다. 1960년 대부터 1990년대 이르는 30년간의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경제학적으로 설명이 어렵다고 한다. 그래서 많은 경제학자들은 한국의 상식을 초월한 경제성장의 비결은 경제적 논리가 아닌 한국의 우수한 인적자원에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책의 저자인 서울대학교 김세직 교수도 같은 맥락에서 이 책의 내용을 풀어가고 있다. 저자는 한국 경제를 큰 두 축으로 구분하고 있다. 한 축은 연 8% 이상의 고도성장을 하던 1960년 이후 30년간의 ‘성장 황금시대’와 다른 한 축은 1990년 이후 성장률이 지속적으로 하락한 30년 간의 ‘성장 추락 시대’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한국경제의 성장 원동력인 인적자원이 이 두시기에 한국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가게 될 것인지에 대해 저자는 창조적 인재와 모방적 인재 관점에서 한국경제 이야기를 하고 있다.
5년 1% 하락의 법칙 …
저자는 경제학 관점에서 유토피아를 “현재 삶에 큰 불편을 느끼지 않을 만큼 인간생활에 필수적인 재화를 소비할 수 있는 수준의 높은 소득이 제공될 수 있으며, 소득이 빠르게 증가될 수 있는 좋은 일자리가 충분히 공급되는 세상”으로 정의하고 있다. 이러한 유토피아적 국가는 현실적으로 존재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여기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국가가 국민들에게 소득의 안정적 증가를 위해서는 안정적인 일자리를 제공한다는 부분이다. 아울러 국민 소득이 증가되려면 ‘국가 경제의 성장’이 기본 조건이 되어야 한다. 이러한 국가 경제 성장을 측정하는 가장 일반적인 지표가 ‘경제성장률’이다. 그러나 경제 성장률은 국가 또는 글로벌 경제상황 등에 의한 단기적 변동 요인들에 의해 지표의 변동성이 있을 수 있다. 이러한 단기적 변동요인들을 제거하고 성장률을 산정한 것이 ‘장기 경제성장률’이다. 일반적으로 장기 성장률이 높으면 국민소득 및 일자리는 증가하고 반대로 낮으면 국민소득 및 일자리는 감소한다.
한국의 장기 경제성장률은 1990년대 이래 5년에 1% 포인트씩 감속도 가속도 없이 매우 규칙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이 강력한 법칙은 현재 한국의 모든 경제 문제들의 근본적인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청년들이 원하는 좋은 일자리의 감소이며, 이는 세대 간의 갈등, 계층 간의 갈등의 사회적 문제로 확대되어가고 있다. 한국경제의 ‘5년 1% 하락의 법칙’이 지속된다면 머지않아 제로성장의 시대에 접어들게 될 것이다. 이는 기업의 경제활동이 한계에 이르고 이로 인해 금융위기, 실물경제 한계 등이 복합적 위기를 일으킬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현상이 단기간이 아니라 장기간 지속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정부가 제로성장 시기를 반전시키기 위해 강력한 경기부양책을 추진하겠지만 이는 제로성장의 시기를 지연시킬 뿐이며, 이를 무한정으로 지연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정부의 경기부양책 등으로 인해 보이는 현상은 진정한 국가경제의 성장능력과는 상관없이 주가와 집값의 상승을 부채질할 수 있다. 그리고 결국 제로성장시대에 돌입하게 되면 기업의 과도한 투자와 고평가 된 부동산과 주가는 버블로 이어지게 될 것이며 이는 기약 없는 장기적 경제 불황으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이러한 모든 현상은 바로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의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다. 일본은 잃어버린 시기의 터널을 아직 빠져나오질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고이즈미 정부를 제외하고는 성장능력을 증가시키기 위한 구조개혁보다는 단기 경기부양책을 최우선 경제정책으로 사용해 왔기 때문이다. 일시적인 경기회복의 착시를 일으키게 만들었을 뿐이다. 경기 부양책은 경제가 정상적 성장 상태로 돌아오지 못한다면 결국 정부와 국민의 부담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경제가 성장하면 소득이 늘어나는 좋은 일자리가 증가한다고 언급했다. 1990년 이후 한국 상황을 보면 상대적으로 임금이 높은 제조업이나 기업에서 근무하는 근로자는 감소하고 상대적으로 임금이 낮은 요식업과 도소매업 근로자의 비중은 증가하고 있다. 즉 지난 30년간 많은 근로자들이 소득이 낮은 일자리로 지속적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러한 이동은 자발적 이동이 아니라 할 수 없이 이동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앞으로 더욱 심화될 것이다. ‘5년 1% 하락의 법칙’을 반전시키지 않고 방치한 채 제로성장 시대에 돌입하게 된다면 우리는 상당기간 빠져나오기 힘든 경기 침체의 터널에 갇히게 될 수 있다.
경제성장의 논리 …
많은 경제학자들은 경제성장과 하락의 주된 원인에 대해 많은 연구를 거듭해 왔다. 인구의 변동성, 생산 지본의 증가, 기술의 발전 및 축적 등을 주된 요인으로 하여 여러 경제성장의 원리를 제시하였으나, 경제사적인 측면으로 볼 때 이러한 주장들은 설득력을 갖지 못했다. 특히 한국의 고도성장의 황금기를 30년 동안 지속해 온 사실은 상기에서 제시한 원인들로 설명하기에는 상당 부분 한계가 있다. 1980년대 중반 시카고대의 로버트 루카스(Robert Lucas) 교수는 경이적인 한국의 경제성장에 주목하고 그 원인에 대해 연구를 진행했다. 그리고 그가 도출한 결론은 ‘인적자본(Human Capital)’이었다. ‘인적자본’이란 지식이나 기술로 체화된 기업가와 근로자들을 의미한다. 생산은 자본(기계)과 노동의 결합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리고 그 둘을 연결시켜주는 것이 기술이다.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넘어가면서 노동의 개념은 단순 육체노동에서 정신노동 혹은 지적 노동으로 확대되었고, 지적 노동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을 얼마나 보유하고 활용하느냐가 경제성장의 원동력으로 제시된 것이다. 인적자본의 중요한 특징은 인구가 변하지 않아도 교육 등을 통해 그 나라의 인적자본의 크기는 지속적으로 증가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인적자본의 증가는 다른 생산요소인 기계(자본)와 기술의 축적을 유발하여 경제성장을 촉진한다.
고도성장기의 한국은 기업가와 근로자들을 중심으로 인적자본을 빠르게 축적함에 따라 고급화된 제품을 빠르게 생산하게 되었고, 그 결과 경제성장도 빠르게 향상되었다. 이것이 당대 최고의 경제학자들이 찾아낸 ‘인적자본이 경제성장의 주 엔진’이란 경제성장의 논리이다.
모방과 창조 …
저자는 인적자본을 ‘모방형 인적자본’과 ‘창조형 인적자본’의 두 부류로 구분했다. ‘모방형 인적자본’이란 기존 지식이나 기술의 모방을 통해 축적된 인적자본을 말하며, ‘창조형 인적자본’이란 새로운 지식이나 기술을 스스로 생각해내고 만들어내는 능력 혹은 그 능력을 축적한 인적자본을 의미한다. 한국이 고도성장을 이루던 시기는 기술과 지식에 대한 재산권이 그다지 높게 평가되지 못했던 시기였다. 또한 기 개발된 기술의 대부분은 그 정도가 그다지 높은 수준은 아니었다. 그래서 기 개발된 기술을 활용하여 가격 등의 비교우위적 모방형 제품을 생산하여 판매하는 것이 하나의 주된 산업 전략이었다. 이 시기에 한국은 이러한 산업 전략을 기반으로 하여 기존의 기술과 지식을 빠르게 습득하는 부분에 초점을 맞춘 ‘모방형 인적자본’ 육성에 주력했고 이를 동력원으로 한국은 고도성장을 달성할 수 있었다. 그러나 1990년 대 이후부터 전 세계적으로 기술과 지식에 대한 특허권과 재산권에 대한 보호가 강화가 되기 시작했고, 기술의 수준 또한 모방이 쉽지 않은 수준에 이르게 되었다. 이로 인해 무분별한 기술과 지식의 모방은 이제 한계에 이르게 되었다. 기술이나 지식의 발전이 정체된 기업들은 퇴출되기 시작했으며, 새로운 기술과 지식의 확보가 경제성장의 핵심 축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한국이 “5년 1% 하락의 법칙”이 적용되기 시작한 시기가 바로 이 시점이다. ‘모방형 인적자본’은 이제 더 이상 성장의 원동력으로 그 가치를 평가받을 수 없다. 그러나 한국은 2021년 현재까지도 ‘모방형 인적자본’을 양산하는 시스템을 국가는 물론이고 기업도 고수하고 있다. 한국에서 학교나 기업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단어 중의 하나가 ‘창의성’이다. 그 결과 학생들이나 직장인들은 창의성을 경험해보거나 제대로 배우지도 못했으면서 ‘창의성’에 대해 안다고 생각하고 본인들이 창의적 사고를 가지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다. 창의성은 스스로 창의적인 일을 시도하거나 경험해 보지 않으면 이를 제대로 알기 어렵다. 한국 GDP의 4~5%인 역 24조 원이나 되는 막대한 정부 R&D 예산이 투입됨에도 불구하고 경제 성장률 회복에 기여할 만큼 특별한 기술개발 성과를 만들어 내지 못하는 궁극적인 원인은 무엇일까? ‘창조형 인적자본’들이 이에 투입되고 있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방형 인작 자본 중심의 모방형 자본주의에서 창조형 인적자본 중심의 창조형 자본주의로 변화가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저자는 이를 위해서 세 가지의 방안을 제시한다. 첫째. 창의적 아이디어에 대한 재산권 보장 제도, 둘째, 창의적 아이디어에 대한 국가차원의 강력한 인센티브 제도, 셋째, 국민들의 창의적 아이디어를 생각해내는 능력인 창조형 인적자본을 효율적으로 키울 수 있는 교육제도의 혁신이다. 즉, 새로운 무엇인가를 만드는 것을 훈련하고 경험하게 하면서 이를 통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생각해 내는 ‘창조형 수업과 커리큘럼’을 통해 교육제도를 개선하자는 것이다.
창조형 인적자본이 기반이 된 창조형 자본주의는 하락 없는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보장한다. 한국 경제는 시대착오적 ‘모방형 인적자본’ 중심의 경제 구조를 탈피해야 한다. 앞으로의 세계에서 한국이 살아남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창조형 인적자본의 육성과 축적으로 시급해 전환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우려하는 인공지능의 대체 영역은 다름 아닌 ‘모방형 인적자본’ 영역이다. ‘모방형 인적자본’의 육성은 암기를 통해 정해진 정답에 도달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즉 인공지능의 학습법과 별반 차이가 없다. 이와 같은 학습능력만 놓고 보자면 사람은 인공지능을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교육 개혁 등의 이름으로 많은 학습 방법과 커리큘럼이 개발되고 있지만 궁극적으로 모든 것은 대학입시제도라는 벽에 무력해지고 마는 것이 현실이다. ‘창조형 인적자본’을 생산해내지 못한 상태로 10년, 20년의 시간을 허비해 버린다면 한국은 제로성장이 아닌 마이너스 성장이라는 상상조차 하기 싫은 암울한 현실에 직면할 수도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