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쇠팔 최동원 투수 이야기...
1984년 프로야구 전기리그 우승팀 삼성 라이온즈와 후기리그 우승팀 롯데 자이언츠의 한국 시리즈… 1차전 선발 등판 완봉승, 3차전 선발 등판 완투승(12 탈삼진),5차전 선발 등판 완투패, 6차전 구원등판 구원승, 7차전 선발 등판 완투승… 한국 시리즈 7 게임 중 5 게임 등판, 4승 1패, 40이닝 투구… 어느 한 팀의 투수 성적이 아니다. 불멸의 기록으로 남아 있는 1984년 한국 시리즈의 롯데 자이언츠 투수인 최동원 투수의 성적이다. 국내 프로야구 최고의 투수를 꼽으라고 하면 무등산 폭격기 선동열 투수, 코리아 특급 박찬호 투수, 괴물 류현진 투수 등을 이야기 하지만 필자는 주저 없이 강철 어깨 무쇠팔 최동원 투수를 꼽는다. 경남고, 연세대를 거쳐 프로야구가 시작되기 전인 1981년에 실업팀인 롯데 자이언츠에 입단하여 에이스로 활약을 해왔다. 또한 국가대표로서 각 종 국제대회에서도 두각을 나타내며, 미국의 메이저 리그와 일본의 제팬 리그에서도 최동원 투수를 영입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한다. 연세대 시절에는 메이저 리그의 토론토 블루제이스와 나쁘지 않은 조건으로 4년 계약까지 체결하였으나, 병역법 등의 여러 사항들로 인해 계약이 무효가 되어 메이저 리그의 꿈을 접기도 하였다. 후문으로는 당시 프로야구 개막을 준비하고 있던 실세들이 최동원이 해외로 진출할 경우 프로야구의 흥행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이유로 해외진출을 꺼려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다.
최동원 선수가 프로에서 가지고 있는 기록들이 있다. 1984년 최동원 투수가 기록한 한 시즌 최다 투구 이닝 284.2 이닝과 시즌 탈삼진 221개의 기록은 3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깨어지지 않는 기록으로 남아있다. 84년 당시에는 팀 당 경기수가 100 게임에 불과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놀라운 기록이 아닐 수 없다. 필자가 최동원 투수를 최고의 투수로 꼽는 이유는 최동원 투수는 고교야구와 대학야구, 실업야구뿐 아니라 국가대표 에이스로서 수많은 국제대회에 참가하는 등 상상할 수 없는 혹사를 당한 상태에서 프로야구에 데뷔를 했다는 사실이다. 대개 아마 선수 시절에 혹사를 당하게 되면 프로야구에 와서 어깨 등의 문제로 인해 제대로 된 성적을 거두지 못한 채 선수생활을 마감하는 선수가 적지 않았다. 그러나 최동원 투수는 달랐다. 그는 180센티가 채 되지 않은 비교적 작은 체구에도 불구하고 하루에 약 1000개 이상의 공을 뿌리면서 스스로의 강철 사나이로 담금질을 해왔다. 그런 노력이 그 혹사를 당한 상태에서도 최고의 기량을 뽐내면서 최고의 투수로 자리매김을 한 것이다. 최동원 투수 이야기를 하자면 끝이 없다. 후에 최고의 라이벌이었던 선동열 투수와의 이야기로 다시 한번 이야기하도록 하겠다.
1984년 한국시리즈는 여러모로 많은 뒷이야기가 있는 한국시리즈였다. 당시에는 전기리그와 후기리그로 나누어 시즌을 진행하고 전기리그 우승팀과 후기리그 우승팀이 한국 시리즈를 치르는 운영방식이었다. 당시 전기리그 우승팀이었던 삼성 라이온즈는 후기리그에 들어서 전력을 다하지 않은 상태에서 한국 시리즈에서 상대할 팀을 고르는 팀 운영을 진행함으로 인해 많은 비난을 받게 된다. 당시 삼성 라이온즈로서는 부담스러운 OB베어즈(현 두산 베어즈)보다는 좀 더 손쉽게 생각했던 롯데 자이언츠를 한국 시리즈 상태로 맞이하기 위해 져주기 게임 등으로 오해받을 수 있는 경기 운영을 하게 된다. 결국 한국 시리즈는 삼성 라이온즈의 희망(?) 대로 삼성 라이온즈와 롯데 자이언츠의 대결로 진행되게 되었다. 대부분 삼성 라이온즈의 절대 우세를 점치는 상황이었다. 당시 삼성 라이온즈에서는 나란히 시즌 25승을 기록한 김시진 투수와 재일동포 출신 김일융 투수가 버티고 있었고, 이만수, 장효조 등 내로라하는 타자들이 포진해 있는 절대 강자의 위치였다. 반면 롯데 자이언츠는 최동원 투수 이외에는 믿을 만한 구석이 없는 매우 열세인 전력을 가지고 있었다. 대다수의 전문가들은 삼성 라이온즈가 4승 1패 또는 4승 2패로 무난히 우승을 할 것으로 예측을 했었다고 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롯데는 필승의 의지를 다지게 되고 당시 롯데 자이언츠 감독인 강병철 감독은 최동원 투수를 불러 유명한 대화를 나누게 된다.
강병철 감독은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최동원 투수에게 1,3,5,7차전의 선발투수로 준비할 것을 지시하게 된다. 그때 최동원 투수는 “너무 한 거 아입니꺼?”라고 이야기를 했고 강병철 감독은 무안한 웃음을 지으며 “동원아. 우짜겠노.. 예까지 왔는데..”라고 이랴기를 했다고 한다. 결국 최동원 투수는 작심한 듯 결의에 찬 표정을 지으며 “ 예. 감독님. 알겠심더… 함 해 보입시더.” 84년 한국시리즈는 최동원을 위한 최동원에 의한 시리즈로 마무리되었고 아직까지도 회자되고 있는 불멸의 기록인 한국시리즈 4승으로 롯데 자이언츠에게 우승으로 막을 내리게 되었다.
우승의 기회는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모든 선수들이 최선을 다해 노력을 한다고 하더라도 우승은 단 한 팀에게만 주어지는 것이다. 우승의 기회가 왔을 때 모든 것을 쏟아부을 수 있는 준비와 마음가짐이 되어 있는가? 물론 우승이라는 것 은단 한 사람의 의지와 기량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모든 선수들이 한 마음, 한 뜻으로 젖 먹던 힘을 쏟아야 가능한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와우승을 다투는 경쟁팀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승을 하는 팀을 보면 공통점이 있다. 바로 구심점이 있다는 점이다. 혹은 누군가 미쳐야 한다는 이야기도 한다. 그 이야기는 그 한 사람이 우승을 이끈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로 인해 팀에 미치는 영향력이 중요한 것이다. 최동원 투수가 거의 전 경기에서 마운드에 올라와 자신의 어깨의 상태는 아랑곳하지 않고 한구 한구 혼을 담은 투구를 이어나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다른 선수들에게는 과연 어떠한 마음을 들게 했을까… 우승은 개인의 것이 아니다. 팀의 것이고 나아가 부산 야구팬들의 것이다. 그것을 위해 혼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 준 것이다. 최동원 투수를 “롯데의 혼”으로 불리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우리들의 모습은 어떠한가? 우리에게 일생일대의 중요한 기회가 닥쳐왔을 때, 당연히 그 기회는 호락호락 우리에게 그 결실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 기회는 우리 단독에게만 주어지는 것 아니라 우리의 경쟁자들에게도 동시에 주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때마다 우리는 기 기회를 우리의 것으로 만들기 위한 이유를 찾는가? 아니면 우리의 것이 되기 어려운 이유를 찾는가?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는가? 한투수가 9일 동안 7 게임이 진행되는 시리즈에서 5차례를 등판해서 63이닝 동안 40이닝을 혼자서 투구를 진행한다는 것이 과연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인가? 그러나 그는 알고 있었다. 이번 기회가 아니면 이 기회는 언제 다시 올지 모른다는 것을… 우리들도 알아야 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기회는 어쩌면 다시는 오지 않을지 모르는 기회일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그 기회 앞에서 나 자신과 그리고 함께 할 동료들 앞에서 이렇게 외칠 수 있어야 한다. “ 한 번 해 보입시더.”라고..
최동원 투수는 2011년 9월 14일 53세의 비교적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그가 84년 한국시리즈에서 7차전에서 마지막 타자인 삼성 라이온즈의 장태수 선수를 삼진으로 잡은 후 마운드에서 기뻐서 펄쩍펄쩍 뛰는 모습은 한 번 해 보자라고 의지를 다졌던 한 위대한 투수에게 스스로 안겨준 큰 보상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가지… 84년 한국시리즈의 MVP는 4승을 올린 최동원 투수가 아니라 7차전에서 스리런 홈런을 쳐냈던 류두열 선수였다는 것을…
다음 이야기 : Perfect는 조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