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 총량의 법칙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일자리는 우리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을 공급해주는 삶의 기반이다. 그리고 누군가에는 일자리는 삶의 목표이자 자부심이기도 하다. 일자리를 잃어버린 사람들은 대부분 극심한 불안감을 겪게 된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일자리를 잃게 되는 사람들은 사회에서 더 이상 효용성이 떨어졌다고 스스로를 비하하면서 깊은 상실감에 빠져들기도 한다. 사회는 다양한 형태의 일자리들이 모여서 서로 협력하고 경쟁하고 거래를 하면서 형성된다. 이렇듯 일자리는 사람이 살아가고 생존해 있으며, 사회와 경제가 돌아가고 있다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일자리는 산업환경의 변화와 경제 상황에 따라 언제나 논란의 중심에 서 있어 왔다. 2016년 언급되기 시작한 ‘4차 산업혁명’은 일자리에 대한 심각한 변화를 예고했다. 그리고 불과 2~3년 사이에 예고는 현실로 가시화되기 시작했다. 2020년 팬데믹은 일자리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부여하기 시작했다. 우리 삶에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면서 그동안 등한시 해왔던 부분들에 대해서 가치를 새롭게 부여하기 시작했다. 일자리에 대한 뉴노멀이 형성되기 시작한 것이다.
4차 산업혁명에 있어서 일자리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는 이유는 그동안 많은 사회학자, 경제학자들이 주장해 왔던 ‘일자리 총량의 법칙’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을 것이란 사실 때문이다. 그동안 3차례의 산업혁명은 사람들이 잃어버린 일자리만큼 새로운 일자리가 만들어지고 일자리에 대한 사람들의 이동을 통해 일자리 변화에 대한 균형을 맞추어 왔다. 그리고 이는 제조업 중심 산업구조에서 서비스업의 확대를 통해 전체적인 경제규모를 성장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러한 경험적 사실들이 디지털 혁명으로 불리는 4차 산업혁명의 변화 속에서도 유효하다고 할 수 있을까? 4차 산업혁명을 통해 사라지는 일자리가 있는 반면에 물론 새롭게 생겨나는 일자리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염두해야 할 사실이 있다. 새로 생겨나는 일자리가 사라진 일자리로부터 배출되는 인력들을 수용할 수 있느냐와 그들이 새로 생성되는 일자리로의 이동이 가능하느냐에 대한 문제이다. 옥스퍼드 대학의 대니얼 서스킨드는 그의 저서인 ‘노동의 시대는 끝났다.’에서 “앞으로 시대에는 일자리는 생겨나지만 그 일자리를 차지하는 사람들은 소수에 불과할 것이다”라는 의견을 제시했고 이를 ‘마찰적 기술 실업’이라고 정의했다. 새로운 일자리는 단순한 이직을 통한 일자리나 간단한 교육을 통해 기능을 숙지할 수 있는 일자리가 아니라 고도의 전문화된 기술과 기능이 필요로 하는 일자리가 될 것이다. 인공지능을 훈련시키기 위한 ‘A.I 트레이너’란 직업은 많은 수요가 생겨날 것이다. 그러나 자율주행 자동차로 인해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가 이러한 일자리로 이동하기에는 불가능할 것이다. 이러한 ‘마찰적 기술 실업’은 단순히 새로운 일자리로의 기회라는 단순한 낙관적 상식을 무참하게 파괴시킬 것이다. 대니얼 서스킨드는 ‘구조적 기술 실업’이란 개념도 제시했다. ‘구조적 기술 실업’이란 새롭게 생겨나는 일자리 또한 사람의 몫이 아니라 기계의 몫으로 돌아가게 될 부분이 상당수가 될 것이라는 개념이다. 궁극적으로 사람을 일자리에서 몰아내고 있는 기계들이 새롭게 생겨나는 일자리조차도 잠식하게 됨으로 사람들의 입지는 지극히 위축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 주위를 돌아보면 이러한 주장들이 결코 헛된 주장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또 한 가지... 팬데믹은 우리의 산업 및 경제구조에 대한 기존의 고정관념을 무너뜨렸다. 쉽게 이야기하자면 일하는 형태에 대한 통념적 사고를 무너뜨렸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사람중심이 아니라 시스템과 인프라 중심으로 얼마든지 조직, 나아가 기업이 운영되는 데 그다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업의 경영진이나 직원들 모두가 깨닫게 되었다. 문제가 있다고 생각되는 부분들은 디지털 기술로 이를 충분히 대처가 가능했다. 이는 도덕적, 윤리적 나아가 상생의 관점이 아니라 경제적 논리로만 따지고 든다면 기존의 일자리에 대한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충분한 동기가 될 수 있다. ‘생명경제로의 전환’을 저술한 이탈리아의 저명한 사회학자인 ‘자크 아탈리’ 교수는 팬데믹은 적어도 20억 명의 인류들에게 경제적 변화를 일으키게 될 것임을 예측하고 있는 부분이 바로 이러한 변화를 예측하고 있는 주장이라고 볼 수 있다. 앞서 언급한 이러한 상황들은 짧으면 3년, 늦어도 5년 이내에는 상당한 사람들이 피부로 느끼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일자리 총량의 법칙’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사실에 대해 수긍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상황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팬데믹은 우리에게 절망감을 안겨주기도 했지만 새로운 길을 제시해 주기도 했다. 자크 아탈리 교수는 그의 저서 “생명경제로의 전환”에서 인류는 앞으로도 팬데믹과 같은 재앙적 상황에 수시로 직면하게 될 것임을 경고하면서 누군가의 건강은 다른 누군가의 건강에 치명적 영향을 미치게 될 수 있으므로 모두가 건강한 삶을 유지하기 위한 환경을 구축하고 이를 유지함에 상당한 노력이 필요함을 주장한다. 화성에 인류를 보내기 위한 노력을 하고 100세 시대를 열어간다고 호들갑을 떨어왔지만 바이러스 앞에서는 모두가 무기력했다. 그리고 아직도 여전히 바이러스에 대해서는 사람들의 노력과 희생에 의해서 이를 극복해 나갈 수 없는 상황이다.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는 과학, 의학기술의 발전으로도 인류가 아직도 감기 바이러스 조차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이 현상은 앞으로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물론 과학과 의학기술 역시 발전해 갈 것이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사람을 돌보는 일들은 사람이 몫이 될 것이다. 여기서 사람을 돌본다는 것은 단지 아픈 사람을 돌본다는 것에 국한 두는 것이 아니다. 건강한 사람도 돌봄이 필요하다. 이러한 영역은 사람의 영역이 되어야 한다. 이러한 영역까지 기계의 몫으로 돌려버린다면 영화 “매트릭스”에서 보여주는 세상과 다를 바가 무엇이겠는가?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국가의 역할이 중요하다. 기업들은 사람을 대체한 기계의 도입을 통해 엄청난 생산성을 통한 부를 창출하게 될 것이고 국가는 이에 대한 분배에 주력해야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국가가 주도하는 “기본소득”은 국가의 당연한 책임으로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단순한 기본소득은 오히려 국민을 무기력하게 만들어 버리고 만다. 이에 대한 대책으로 국가는 국민에게 일자리를 제공해야 한다. 이 일자리는 소위 먹고, 살기 위한 일자리가 아니라 사회적 가치 나아가 국가적 가치 측면에서 개인이 국민으로서 기여할 수 있는 일자리이다. 국가는 사회적 기업의 설립을 통해 이러한 정책을 추진해 나갈 수 있는 큰 정부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이렇게 생성되는 일자리는 이전에 우리가 접해왔던 일자리와는 다른 형태의 모습가 의미를 갖게 될 것이다. 물론 과학과 산업을 지속적으로 발전시키고 다양한 경제적, 사회적 혜택을 사람들이 누리기 위한 일자리 또한 다양한 형태로 창출되어야 함은 말할 나위도 없다. 그러나 이러한 일자리가 차지하는 비중은 점진적으로 줄어들게 될 것이다. 결국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살아가기 위한 이유와 동기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 사회, 국가의 구성원으로 무엇인가 기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음을 느낄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앞으로 일자리에 대한 뉴노멀의 관점으로 생각해야 할 부분이 될 것이다.
사람들은 일자리를 생계를 꾸려가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할 때 살아간다는 생각보다 바틴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현재의 상황은 생계로서의 일자리에서 사람들이 기계에 의해 대체되어가고 있음에 대해 모두가 우려하고 있으며,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에 불안해하고 있다. 그리고 앞서 언급한 국가 주도의 사회적 기업을 통해 새로운 개념의 일자리로의 전환까지는 아직 시간이 필요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시간적 갭을 어떻게 극복하느냐 이다. 단순히 “일자리 총량의 법칙”을 두고 새로운 일자리를 통해 사라진 일자리가 충복될 것이란 비현실적인 낙관주의에서 벗어나 현실적 문제에 대해 국가와 기업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을 해야 한다. 그리고 그 전제에는 윤리와 상생의 논리가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