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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나 Oct 20. 2021

불행한 사람이 더 많은 줄 알았다.

아름다운 것들을 내 눈에 더 많이 담을 수 있기를


내 인생이 불쌍했을 때는

세상에 불쌍한 사람들이 왜 이렇게 많은지

애들 키우는게 다 힘든 사람만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돌아보니

그저 아이가 예쁜 사람

그저 아이랑 있는게 행복한 사람들도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충격이였다.

어떻게 그럴수가 있지..



내 인생이 무기력할 때는

모든 사람들이 방향성 없이

그저 살아가야하니 살아간다고 생각했다.

사는 방법도, 살아야 하는 이유도 잘 몰랐을 뿐더라,

잘난 사람은 정해져있다고 

강하게 믿고 있던 나였다.


그런데 내가 

나 스스로 삶의 방향을 '선택'하면서 

알게된 진실은

평범한 사람도 자신만의 방향성을 잡고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였다.


행복한 사람보다 

불행하게 사는 사람들이 더 많은 줄 알았다.

물론 누가 더 많은지 

누가 더 적은지는 여전히 알 수 없지만,

(사실은 중요하지도 않다)


중요한건 내 마음이, 내 마음 상태

결국 세상을 바라보는 

내 마음의 눈이라는 사실이였다.


내가 내 인생을'선택' 하고

그.럼.에.도

나아가기 시작하면서 알았다.


불쌍한 사람 천지같았던 이 세상에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의 인생을 가꾸어 나가는 사람들이

참 많다는 사실을.


완벽주의자처럼

내 내면의 상처와 어둠이 완벽하게 걷혀야지만

무엇이든 도전해 볼 수 있는

자격이 생길거라고 믿었다.


그런데 어짜피 

'나'라는 사람의 큰 틀은 바뀌지 않는다.

어쩌면 그 상처와 어둠은 

평생 내가 안고가야하는 삶의 흔적일지도.

다만 나는 그것이 내 안에 있음을 알아차리고

선택해서 나아갈 뿐이다.


내가 그러한 사람임을 수용하고

내가 원하는 것을 '선택'하며 나아가기 시작하니,

그저 그랬던 별볼일 없다 여겼던 내 삶에서

참 많은 것들이 바뀌기 시작한다.


'선택'하지 않았으면 보이지 않았을 것들.


내 눈앞에 있는 어두운 터널을

죽으러간다는 생각으로 들어간다면

결국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죽음' 뿐이겠지만,


끝까지 가보겠다는 마음으로 

그 길을 선택한다면

결국 나는 세상 밖으로 이어지는 문을

만나게 될 수 밖에 없다.


혹여나 막다른길에 다다른다면

다시 돌아오는 '선택'을 하면 그 뿐.

'선택'을 하고 길을 나선 사람에게는

앞으로 나아갈 힘도 있지만,

다시 돌아갈 힘도 있기에

겁낼 것이 없다.


'애쓴다'는 것이 억지로 무엇인가 해내는 느낌이라

한동안 그 감정에 머무르지 않으려고 애썼는데

(나에게는 '머물러 있었던' 그 시간이 

지금의 내가 나아는 추친력이 되었다)


이제는 내면의 상처가 많이 걷히고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어느정도의 '애씀'이 필요하다는 사실이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중이다.

(이 때의 고통의 '애씀'과는 다르다)


노력하지 않고 그저 '꽁'으로만

얻고 싶었던 애기의 마음.

그 아이의 마음에서 벗어나

선택하고 책임지고 노력해야 함을

받아들여본다.


엄마의 사랑을 기다리는 아기처럼

그저 엄마의 사랑이, 

우주의 사랑이, 

신의 사랑이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그저 내게 다가와주길 바랬는데

사실 그것은 여전히 

내 인생을 '책임'지고 싶지 않은 

마음일 뿐이였음을.


아이를 키우는 것이 행복하면서도 

괴로웠던 이유 역시도 '책임', 

'내 탓'이 될까봐 두려웠기 때문이였음을.


책임지지 않는 삶은 

내 인생이 아니기에 

불행 할 수 밖에 없고, 

무기력 할 수 밖에 없다.


내 삶을 소중히 여기며 

좀 더 적극적으로 가꾸어 나아갈 때

세상의 아름다운 것들을

내 눈에 더 많이 담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는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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