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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나 Dec 12. 2021

편견이라는 '틀', 판단 멈추기


대학원 2학차가 마무리 되어가고 있다.

딱 한주만을 남겨놓고있는데

이번 2학차, 지치기도 많이 지쳤지만 더 없이 소중한 학차인 것 같다.


2학차를 통틀어 내가 가장 많이 느끼고, 성찰했던 부분은


내안의 '틀'이 너무 강하다


라는 것이였다.


옳고 그름.

좋은 사람 나쁜사람에 대한 판단.

당사자도 모르는 무의식을 마치 다 내가 아는 것 처럼 말하던 누군가의 그 오만한 태도가

내게 스며들어 너무 뿌리 박혀있었다.


사실 어떤 분위기에 젖여 있을때는

그것이 판단이 아니라 '사랑'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시간이 지날 수록 그것은 본인의 우월로 누군가를

자신의 틀안에 가두는 행동이였음이 더 명확하게 보인다.


나는 두려움이 너무 큰 사람이였다.

그리고 그 두려움에서 살아내기 위해서

내게는 나만의 울타리, 보호막이 필요했다.


때로는 나 스스로 그 보호막을 치기도 했고,

또 때로는 누군가의 울타리 안에 들어가서 내가 안전하다고 믿으며 착각하기도 했다.

그 울타리가 무엇이었든 울타리 안으로 스스로 걸어들어간 나는

마치 울타리안의 세상이 전부인양

울타리안에만 세상을 바라 보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울타리 밖의 세상이 궁금하지 않은 것은 아니였다.

그러나 울타리 밖의 세상은 내게는 미지의 세상이였고,

가끔은 울타리 너머의 세상을 모르는 내가 부끄럽기도 했다.

그래서 마치 그 너머의 세상을 내가 가본 것 처럼

어느순간 착각하기 시작했다.


그 근거는 그 세계를 가본 타인의 말과 경험.

그 말과 경험을 들으며 나는 마치 내가 아는 세계인 것처럼

울타리 너머의 세계를 느끼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진짜 말, 체험, 느낌이 아니였기에

결정적인 순간에 그 생각이 맞는지 틀렸는지 판단할 수가 없었다.

나의 사유가 아니라 타인의 사유였기에.

내 경험이 아니라 타인의 경험이였기에.

내것이 아니라 남의 것이였기에 어느순간 스스로 혼란속에 빠져버렸다.


나는 내가 만들어 놓은 울타리 안에서,

때론 타인이 만들어놓은 울타리 안에서

이도 저도 아닌 편협한 시각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 '편협한 시각'을 가지고 '아는척' 하는 나를 들키고 싶지 않았기에

끊임없이 '옳고 그름'으로 잣대를 가지고

누군가를 판단했던 것 같다.


나와 똑닮은 상처가 있는 사람을 내가 앞장서서 비난하고,

흠 있는 사람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고 믿었던 나.


그런데 돌아보니 그것은 그들의 약함을 받아들이는 순간 나의 약함이 드러날 거라고 믿었던,

(결국 타인에게서 드는 부정적인 마음은 내가 보고싶지않은 그림자이기에)

나의 흠, 나의 초라함을 들키고 싶지 않은 마음이 아니였을까 싶다.

타인의 티끌을 공격하며 나의 티끌은 보고 싶지 않은 마음이였을지도.


또 때론 나는 내 욕구보다 타인의 욕구, 타인의 말들을 미리 신경쓰고 행동했었는데,

그렇지 않은 사람이 너무 미웠다.

'배려없는 사람', '생각없는 사람'들이라는 꼬리표를 달아

상대를 비난하곤 했다.


'당연히 해야하는 것들'을 하지 않는 사람들을 보며 화가 올라왔다.

그런데 그 '당연히 해야한다'는 것조차 나의 틀이였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나의 욕구를 챙기지 않고,

타인의 욕구에 미리 기어버린 '억울함'이

끊임없이 자신의 욕구에 충실한 누군가,

사정이 있을 누군가를 '이해'하기도 전에

평가 판단했구나.


결국 '편견'이라는 것은

누군가를 '이해'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

한쪽에 치우친 마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장중에 다른 텐트를 보면서 지나가는 인도까지 줄을 쳐놓은 사람들을 보면서

'저 사람은 배려가 없는 사람이야'

'나라면 저렇게 하지 않았을텐데'

고급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을 보며

'좋은차 다녀서 배려가 없어'라는 따위의 마음 역시

나의 깊은 편견의 마음 중 하나인 것 같다.


그리고 지나와보면 결국 타인에 대한 '편견'은

내가 나에 대해서 좋고 나쁨으로 바라보는 시선의 연장선이였음을 자각하게 된다.

내가 나를 온전히 받아들일 수 없었던 부분을 타인이라는 거울을 통해서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게 된다.


'나는 부족해'

'나는 배려가 없어 '

'나는 ~해야만 해'

'나는 변할 수 없어' 라는

나에 대한 부정적인 마음이

결국 온전한 나의 분리를 일으켜

내가 바라보는 세상도 흑과 백으로 바라보는 것은 아닐까?


결국 내가 가장 깨고 나아가할 편견은

나조차도 내가 변할 수 없다고 바라보는 마음

나 조차도 내가 초라하다고 바라보는 마음

내가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는 마음을 인정하고,

내안에 있는 것이 그저 나를 구성하는 재료일 뿐

좋고 나쁜 것은 없다는 것을 받아들여야하지 않나 싶다.


부족한게 아니라 아직 서툴 뿐이라고.

변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과정중이라고.

끊임없이 내 마음에 대해서 궁금해 하고 궁금해 하고 궁금해하면서

내 안의 답을 찾아갈 때

나의 행동에 대해서 마음으로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나에 대한 이해가 결국 타인에 대한 이해로 이어지지 않을까 싶다.


이제 편견과 판단으로 나의 시야를 가려버릴 때,

타인을 덮어놓고 비난하고 평가하고 싶은 마음이 올라올 때



'이유가 있을거야'




라는 말로 누군가를 판단하려는 말을 멈춰볼 생각이다.

그 사람이 그렇게 한 행동에 대해서 궁금해하기.

내가 그렇게 느끼는 마음에 대해서 궁금해하기.


한주 남은 대학원 2학차.

편견이라는 시선과 마주하며,

좀 더 유연하고 성숙한 사람이 되어야지.


좋고 나쁨은 없다는 그 말을,

나는 계속 체험속에서 연습하며 받아들이는 중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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