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컨텐츠 마케팅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나와 동업자 두 사람이 모두 대표이자 실장이며 대리이고 또 사원이다.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학교 가까이에 있는 극장에 종종 영화를 보러 다니면서 어쩌다 영화 일을 꿈꾸게 됐다. 사실은 <글래디에이터>를 극장에서 보고서는 '아니 저 바다건너 서양 사람들 얘기에 나까지 이렇게 감동 받을 일인가?'란 생각을 하면서부터였다. 하지만 영화 현장에 풍덩 뛰어들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왠지 너무 힘들 것 같아서. 그래서 영화 관련 수업이 있는 미디어학과로 진학하길 원했고, 결국 가고 싶은 과가 있는 대학의 인문학부에 점수 맞춰 들어갔다. 미디어학과는 사실 내 점수로는 택도 없었지.
입학 후에는 복수전공을 하며 언저리를 맴돌았다. 영화 관련 수업은 생각보다 몇 개 없었고, 얼마 없는 그 수업들을 듣기 위해 수학, 물리, 프로그래밍 등등의 기초, 필수 과목들을 수강해야했다. 전공수업으로는 시나리오 한 편 쓰고, 영화 분석, 곁가지로 게임 시나리오 수업들도 재밌게 들었었다. 하지만 정작 내가 어떤 영화일을 하고 싶은지는 전혀 알지 못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뭔지 감이 오지 않았다. 영화 감독 한 분이 대학원에 특강을 오신 적이 있는데 부탁부탁해서 학부생으로는 유일하게 슬쩍 그 특강을 듣고서는 학교 건물이 있던 언덕을 내려오며 눈물 찔끔 흘렸던 기억이 난다. "아, 내 길이 아니구나~"라고 생각했던 듯.
선배로부터 한겨레문화센터의 영화마케팅 수업을 제안받은 후, 그 수업을 들으면서 '아, 이건 내가 할 수 있겠다'라는 확신이 들었다. 간헐적으로 올라오는 마케터 신입 구인 공고를 보며 여기저기 이력서를 내고, 면접도 보는 시간들이 있었다. 결국 나는 처음 면접을 보고 떨어진 마케팅 대행사를 재수해서 들어가게 됐다. 그 회사는 천만영화부터 내가 가장 좋아하는 판타지 대작까지 다양한 영화들의 마케팅을 해온 회사였고, 당시 나는 대행사가 뭔지, 갑을이 뭔지도 전혀 모른 채 처음 면접을 봤다가 그 회사의 필모에 반해버렸었다. 면접에서 내가 떨어진 이유는 약해보여서였다고...
그렇게 첫 회사에 입사할 땐 3년만 일해야지, 라고 생각했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영화를 하고 싶다했지만, 늘 내게 '영화일=힘든 일'이라는 인식이 있었어서 내가 좋아하고 하고 싶어서 하는 이 일은 딱 3년만이다, 그 뒤론 안정적이고 돈 되는 일을 해야지-라고 생각했었다. 입사해서 마주한 선배들은 늘 날을 세우고 자기 생활도 없이 일하는 듯 보였고 당시만해도 서른 초중반의 실장님들이 결혼도 못하고 일하는 것 같아서 걱정도 됐었다.(지금 나 서른후반 껄껄)
그렇게 영화 마케팅을 시작하게 된 나는 '꿈을 이룬 사람'이었다. 한국영화, 외국영화 가릴 것 없이, 천만영화부터 예술영화까지 다양한 작품들의 마케팅에 참여했다. 하지만 원하던 일을 하게 되니 꿈을 이룸과 동시에 꿈이 소멸된 느낌이 들었다. '내 꿈은 뭐지?'라는 질문이 머리 속에 둥둥 떠다녔다. 그 놈의 꿈. 꿈을 가져야 된다고 강요 받아 온 결과인 것이다. 어쨌든 확실했다. 밤낮없이 일하는 실장님들처럼 되고 싶진 않았다. 너무 멋있고 카리스마 넘치시지만 대표님처럼 치열하게 살고 싶지도 않았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나는 마케팅 대행사의 실무형 대표가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