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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wo Legged Creature Oct 07. 2020

내 선택은 나로 하여금 꿈에서 멀어지게 만들었다.

영화 홍보대행사를 시작으로 온라인광고를 거쳐 한 회사를 만났다. 당시 그 회사는 작품성있는 외화를 독특하고 세련된 방식으로 마케팅해 흥미를 불러 일으키는 회사였다. 내가 그 회사에 들어가게 됐을 때 주변의 후배들 몇몇이 굉장히 부러워했었다.

나는 한국 영화가 하고 싶었다. 홍보대행사를 그만둔 뒤 수입/ 투자를 하는 곳까지 오게 됐지만 이 회사도 궁극적으로는 한국 영화라는 새로운 꿈을 품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기대했다. 업계에는 외화부터 시작해 한국영화계 빅4로 안착한 회사 모델이 있었고, 새로 들어간 회사는 영화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겠다고 나선 곳이었기 때문에 어떻게든 성장해 나갈 거라 믿었다. 물론, 내 기대는 입사 3개월쯤부터 바스락거리기 시작했지. 

나는 누구 여긴 어디


그 회사를 다니면서 회사는 대표의 뜻을 따라 가는구나-라는 것을 배웠다. 아무리 직원들이 발버둥쳐도 회사는 우리에게 어떤 방향도 제시해주지 않았다. 내가 속했던 팀은 대표의 뜻과 맞춰보고자 사업부의 방향성을 A부터 E까지 유형화해서 ‘그래서 니가 원하는게 어떤 모델이냐’고 묻기까지 했지만 그는 결국 답이 없었다. 그저 소자본으로 영화의 단맛만 보려는 듯 보였다. 그 회사에서도 꼬박 3년을 보냈다. 첫 회사에서의 3년과는 전혀 다른 시간이었다. 첫 3년간 업계에서 제일 귀한 대리를 달기까지 수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교류했다면, 그 곳에서의 3년은 내가 업계에서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상업영화에도 예술영화에도 끼지 못한 어정쩡한 포지션으로 도태되는 느낌. 그렇게 사표를 냈고, 머지않아 이 회사의 영화사업부는 문을 닫았다. 

주변 사람들의 부러움을 받으며 입사했음에도 결과는... 그때부터 업계에 딱히 가고 싶은 회사가 없어졌다. 회사라면 다 똑같아 보였고 꿈에 그리는 회사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됐다. 적어도 영화판에서는. 적어도. 영화판에서는.

“적어도 영화판에서는.” 이 문장을 반복한 이유는 그 후 호기심으로 뛰어든 곳에서 또 한 번 단 꿈을 꾸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회사를 늘 지옥 or 불지옥 or 핵지옥으로 비유해왔던 내가 다음 행보로 선택한 곳은 내게 지옥, 불지옥을 넘어 핵지옥을 맛보게 했다. 물론, 이 회사도 어떤 이들에게는 지옥과 천국 사이 어디쯤일 수도 있겠지만.


지옥, 불지옥, 핵지옥 이야기를 들은 김그래 작가님은 이렇게 귀여운 웹툰을 그리시기도 했다. Y팀장 is me.
출처) Gim Gre 페이스북


제주도에 새로 생기는 복합문화공간. 젊고 힙한 사람들을 위한 새로운 개념의 숙박시설이자 제주에 머물면서 공연부터 영화감상, 클래스 등을 즐길 수 있는 문화기반을 다지는 젊은 기업. 당시 지인의 페이스북에서 그 회사의 임원이 펍에서 다양한 행사를 운영할 인력을 뽑는다는 공고를 보게됐고, 정말 거짓말 1도 안 보태고 “제주도...? 재밌겠는데...?” 이 생각으로 30분만에 이력서를 제출했다. 알고보니 그 포지션은 펍 업장을 운영할 인력을 뽑는 것이었고 나는 면접을 통해 컨텐츠&커뮤니케이션 팀장으로 입사하게 됐다.

자,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내 꿈은 한국 영화였다, 한국 영화. 한국 영화가 하고 싶어서 외화 수입투자사에 입사해 함께 성장하는데 실패했고, 제주까지 날아가버렸으니 결국 모든 것은 내 선택에 기인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모든 선택이 나쁜 선택이었냐하면 그것은 아니다. 좋은 선택이란 결국 내가 노력해서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야만 얻을 수 있는 것인데 나는 영화사의 경험에서도, 제주에서의 경험에서도 크고 작은 깨달음을 얻었고, 어떤 것은 나를 드라마틱하게 성장시켰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제주에서 핵지옥을 맛본 나는컨텐츠 마케팅 대행사를 차리는 것으로 리턴했다. 늘 기술이라곤 없는 마케터라는 점이 스스로 원망스러웠는데, 10년 넘게 한 영화마케팅이야말로 내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회사를 하면서 다시 영화쪽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했고, 지금 내가 있는 이 자리와 내가 꿈꿨던 것, 그것을 핸들링한 나의 선택들을 짚어보면서 감정적이고 즉흥적인 나란 인간의 인생이 참 재밌게 흘러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택을 하고 그 선택을 '좋은 선택'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 그것이 힘들다면 짧게 후회하고 다시 나아가는 것... 그리고 돌아보면서 웃는 것... 어쩌면 그 모든 것이 참 즐거운 과정인건가. 하하하.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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